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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by 이소라)

어쩌면 여름은 괜찮은 계절일지도 몰라

by radioholic
왜 이렇게도 해는 나를 자꾸 따라오는지
오늘 하루는 더 더울 것 같아
심한 담배연기 속에 문득 숨을 멈추며
오늘 하루는 구겨질 것 같아
(이소라, '더위' 中)


작년에 테일러 스위프트의 'Cruel Summer'를 들으며 이건 날 위한 노래라고 생각했다. 잔인한 여름이라니. 더위 앞에선 한없이 약해지는 나와 같은 사람에겐, 여름은 그야말로 가혹하기 짝이 없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몸에 열도 많고, 땀을 비 오듯 흘리는 나는 여름 내내 좀비처럼 비척대며 다닌다.


https://youtu.be/ic8j13piAhQ?si=MF5UH3cA_xFsI084

제목과는 달리 꽤나 청량한 노래


사실 이번 여름엔 검도를 좀 쉴까 생각 중이었다. 겨울에도 호구를 쓰면 땀이 나는데, 여름의 뜨겁고 습한 공기 속에서 검도를 하는 건 내 극한을 시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큰 이유는 도장 에어컨이 낡아서 냉기가 약하다 보니, 작년엔 정말 현기증이 날 정도로 힘이 들어서 올해는 여름에 검도 대신 요가를 배울까 고민을 했다. 다행히도 도장 에어컨이 교체되면서 없는 일이 되었지만.(하지만 중년 아저씨의 요가에 대한 고민은 진행 중이다)




난 입버릇처럼 여름이란 계절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 물놀이를 그리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야외 액티비티를 즐기지도 않는 나에게 여름은 그저 덥고 습기가 높아서 불쾌지수만 높이는 그런 시기였으니까. 일 년에 약 2개월을 없는 시간 취급하며 살던 나였는데, 언젠가부터 묘하게 여름이 꽤 괜찮은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마음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너무 더워서 온몸의 혈관이 터져버릴 것 같은 순간에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실내에 들어가며 느끼는 쾌감을 어느 계절에 느껴볼까. 습기를 잔뜩 머금은 구름과 노을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도시의 석양도 여름의 공기가 아니면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그리고 운동을 마치고 호면을 벗을 때 '후아~'하는 탄식과 함께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닦아내는 그 개운함 역시 오직 여름만이 주는 선물 같은 순간이다. 이러고 보면 여름이란 녀석에게도 매력을 느낄만하지 않은가.


작년 여름이 선물한 저녁 풍경(@합정)




이소라 1집에 있는 '더위'는 여름이 오면 반드시 찾아 듣는 시즌송이다. 제목에 이미 묻어있는 언짢은 느낌만큼, 가사 역시 짜증스러운 내용으로 가득하다. 뜨거운 햇볕이 내려쬐는데 불쾌한 담배연기를 맡아야 하고, 오래된 연인과도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 이 모든 상황들이 이소라의 짜증과 피로감이 녹아있는 목소리와 스캣에 잔뜩 묻어 나오는 게 너무 좋았다. 이건 오직 여름을 싫어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바이브니까.


'난 행복해', '처음 느낌 그대로''와 같은 명곡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1집 앨범 속에 숨겨져 있는 이 노래를 난 여전히 좋아하고 앞으로 즐겨 듣겠지만, 이젠 여름과 더위라는 존재에도 조금씩 마음을 열어보려 노력한다. 어차피 매년 함께 해야 한다면, 싫다고 자꾸 마음에서 밀어내지만 말고 내가 좋아할 만한 구석을 찾는 게 내 정신 건강에도 좋을 테니까.


고작 7월 초인데 벌써 폭염주의보가 떨어질 정도로 힘겨운 여름이 예상되지만,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아무 탈 없이 무사히 넘길 수 있길 바라며. 그리고... 비록 조금씩 마음을 열고는 있지만 그래도 난 여름 니가 빨리 지나가 줬으면 좋겠다.


https://youtu.be/6qbxUaXAuUo?si=uBzNZUvmMgqqjhp3

이소라의 숨어있는 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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