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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보사노바

외로워도 슬퍼도 살랑살랑 춤을 추게 만드는...

by radioholic

Astrud Gilberto가 부르는 'Tristeza'를 듣고 있으면, 가수는 한없이 처연한 목소리로 '라라라~'라는 가사를 읊조리고 있는데 내 마음은 내적인 어깨춤을 추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포르투갈어로 슬픔이나 비탄을 뜻하는 제목과 어울리게, 노래 내용은 지금 이 슬픔이 제발 떠나가고 다시 기뻤던 시절로 돌아가 노래 부르고 싶다는 서글픈 내용임에도(그래서 영어 부제가 'Goodbye Sadness'다) 결코 어둡거나 절망이 느껴지지가 않는 것은 전적으로 보사노바라는 장르의 힘 때문이리라.


https://youtu.be/XqgIkH-CuqI?si=y-GX_tdvjMRrFzF-

제목과 가사를 모르고 들으면 둠칫둠칫 몸이 흔들리는...


보사노바만큼 여름과 잘 어울리는 장르가 있을까. 댄스곡처럼 bpm이 미친 듯이 높지도 않고, 결코 목청 높여 부르는 노래가 아님에도 보사노바를 들으면 마음속 텐션이 나도 모르게 한껏 올라간다. 뜨거운 해변의 나무 그늘에 한량처럼 누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노래를 듣는 기분이랄까. 보사노바 노래를 들으면 한여름 어느 한적한 바닷가에서 하늘하늘 춤을 추는 여인의 모습이 떠오르는 건 우리가 익히 아는 노래인 'The girl from Ipanema' 탓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 보사노바란 키워드가 슬금슬금 자리를 차지하면서, 요즘은 출퇴근길이나 단순 업무를 할 때 보사노바 곡들을 BGM처럼 재생을 해놓곤 한다. 봄에는 분명 재즈 플레이리스트가 주된 알고리즘이었는데, 내 의식의 흐름이 계절을 타고 흘러가면서 여름에 어울리는 장르로 옮겨간 것이 분명하다. 분명 네박자의 리듬인데 그 속에서 밀고 당겨지는 리듬의 묘한 변주가 내적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보사노바라는 장르는 나에게 큰 힘을 주는 존재가 되고 있다. 요즘의 나는 꽤나 시큰둥한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정은 늘 일정할 수 없고, 일정한 주기로 감정의 기복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요즘이 나에겐 딱 감정의 하향세가 찾아온 시기다. 아무리 좋아하려 해도 아직은 쉽지 않은 여름이 찾아왔고, 특별히 나쁜 일이 없어서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좋은 일도 딱히 없는 그런 시기랄까. 얼마 전 검도 시합에 나갔다가 깊은 자괴감에 빠져버리기도 했고(이건 나중에 따로 글을 써보려 한다), 뭔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살짝 침체된 상황인 것 같다. 이런 시큰둥한 중년 아저씨의 모습이란 정말 최악이 아닌가. 그래도 참 다행인 것은 내가 음악을 들으며 참 쉽게 위로를 받는 타입의 단순한 인간이란 점이다.




요즘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기타 수업이 즐거운 이유는, 늘 나에게 분발할 소재를 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정말 연주하고 싶었던 곡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정미조 님의 '7번 국도'는 내가 예전에 소개했던 곡이기도 하지만, 이 노래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보사노바 곡이다. 얼마 전부터 보사노바의 다양한 리듬을 배우고 대표적인 곡들에 적용하는 연습을 해보다가, 혹시 연주하고 싶은 곡이 있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이 곡을 조심스레 추천을 했다. 주법에 변주도 많고 무엇보다 텐션 코드가 많아 무척 까다로운 곡인데, 시중에 기타용 악보가 없어 선생님이 직접 코드를 따고 악보를 만들어 주셔서 너무나 감동했다. 요즘 느끼는 건 어느 분야든 전공생, 혹은 특기생의 위엄이라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이다.(감사합니다 선생님ㅠ)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ㅠ


이 노래를 연주하다 보면 어느샌가 리듬을 타고 고개와 어깨로 박자를 맞추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아직 더듬더듬 손에 익히는 수준이라 몸으로 박자를 맞출 단계가 아님에도, 보사노바의 이 참을 수 없는 흥겨운 리듬은 몸치인 내 몸마저 흔들게 만든다. 그래서 이 곡을 연습하는 동안만큼은 요즘의 시큰둥한 감정은 잊고 오로지 노래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한 곡의 노래에 빠져 연주를 한다는 것은 뭐랄까... 현실과 동떨어진 또 다른 세계로 나를 오롯이 옮겨놓는 마법과 같은 시간이라고 표현하면 너무 과장이려나.


여름엔 보사노바가 맞는 것 같다. 오죽하면 챗GPT에게 '보사노바와 어울리는 이미지를 만들어 줘'라고 부탁했더니, 제목에 있는 것과 같이 해변에서 기타 치는 여인의 그림을 그려줬을까. 그래서 이번 여름은 아마 '7번 국도'를 비롯한 좋은 보사노바 곡들과 함께 흥겹게 보내보려 한다. 더위에 짜증스러울 때마다, 요즘처럼 도통 풀리는 일이 없다고 느껴질 때마다, 문득 쓸쓸하다고 생각이 들 때마다... 과장되지 않게 신이 나는 그 노래들이 내 마음을 풀어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https://youtu.be/v5DZ5clg-bg?si=k84c1XNwT38yU2kb

명곡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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