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팔을 벌리면 날개가 돋아날 걸 가슴을 연다면 쪽빛이 가득할 걸 오늘을 잊은 채 내일도 접어둔 채 지금은 우리가 행복해야 할 그 시간 (정미조, '7번국도' 中)
2001년 어느 봄날... 군에 입대했다. 지금은 없어진 춘천 102 보충대에서 3일가량 머무르다가, 자대 배치를 받아 꽤 먼 길을 흘러 흘러 도착한 곳이 강원도 삼척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서울 촌놈이 26개월이란 기간을 해안에서 일출을 보며 보내게 될 거라곤 생각을 못했다. 그리고 그때 난 7번 국도라는 길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해안 경비를 하며 7번 국도를 참 많이 걷고 뛰었다. 그 길은 나에겐 그저 작전 구역이었고, 근무지로 투입하는 이동 경로라는 것 외엔 다른 의미가 없었다. 그 길을 걸으며 고참에게 참 많은 욕을 먹기도 하고, 또 후임을 갈구기도 하면서 꾸역꾸역 시간을 보냈다. 대체 언제쯤 이 놈의 짠내 나는 바닷가에서, 이 짜증 나는 7번 국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그렇게 26개월을 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전역 후엔 그쪽으로 소변도 보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그 삼척을, 꽤 많은 시간이 지나 다시 찾고 나서야 알았다. 7번 국도가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었던가.
전역 후 9년만에 그 곳을 찾았던 날(삼척, 2012)
삼척에서의 2년 2개월 동안 정말 수백 번의 일출을 보았다. 초소에서 밤샘 근무 후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철수를 할 때 바라보던 일출은 참 예뻤던 느낌은 있지만, 솔직히 마음에 남아있는 장면은 없다. 일출은 그저 철수를 알리는 알람에 불과했으니까. 지금이야 어떻게든 해돋이를 보고 싶어 장시간 운전이란 수고를 마다않고 먼 길을 가지만, 그때 인적 없는 소초에서 바라보던 그 아름다웠을 일출들은 그저 그곳을 벗어나고 싶던 군인에게는 아무 감흥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같은 것을 바라보더라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냐에 따라 이렇게다른 의미로 남는다. 마치 원효대사의 해골물처럼.
정미조 님의 '7번 국도'를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23년 전 그때 이 노래가 있었더라면, 땀에 젖은 군복을 입고 어둠 속에서 7번 국도를 걷던 군생활이 그나마 버틸만했을까. 막막한 군생활만큼이나 아득하고 어둡게만 느껴졌던 그 바다의 색깔이 실은 예쁜 쪽빛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까. 이 노래 특유의 발랄한 보사노바 리듬에 발을 맞춰 걸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으려나.
비록 23년 전의 나는 그 길을 마음속으로 울면서 걷고 또 걸었지만, 다시 그곳을 찾는다면 탁 트인 바다 풍경은 물론 그땐 그토록 싫었던 바다 바람 속 짠내까지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물론그때 그 기억들을 추억으로 만들어 준 이 노래를 BGM 삼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