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옳았었고 무엇이 틀렸었는지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까 모두 지난 후에는 누구나 말하긴 쉽지만 그때는 그렇게 쉽지는 않았지 (신해철, '70년대에 바침' 中)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린 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자가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고, 약 2년의 시간 동안 규범과 질서, 우리가 상식이라 여겼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계속해서 목도해 오며, 우리는 무기력해졌고 우울에 빠져왔다.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는 경희대 시국선언문 속 첫 문장은 바로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다.
얼마전 학교에서 직접 본 이 글은 마음을 더 참담하게 만들었다
퇴근 후 평화로운 밤을 보내고 있던 어제, TV 속보로 뜬 내용을 난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입을 통해서만 듣던, 현대사 책에서만 보았던 '계엄'이란 글자를 현실에서 볼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이른바 '서울의 봄' 직후에 태어난 세대지만, 그것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역사 속 야만이라고만 생각해 왔는데 그게 실제로 일어날 줄은 정말 몰랐다.내가 사는 아파트 상공으로 헬기가 지나가는 것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이게 불과 9시간 전에 일어난 상황이다
계엄사령관이 정치와 언론의 자유를 금지를 선포하고, 군인들이 헬기와 장갑차를 타고 도심에 진입하는 야만이 불과 몇 시간 전에 일어났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고, 무서웠다. 40대 중반 아저씨가 무섭다는 감정을 느끼고 말하게 될 줄은 몰랐다. 대통령이라 불리는 인간 백정 같은 자가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고,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국회의원들이 경찰 병력을 뚫고 국회에 모여 계엄령 해제 요구안을 가결하기까지의 약 155분의 시간을 난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가장 야만적인 침탈을 가장 민주적인 절차로 저지하는 역사적 사건이 약 2시간 반동안 벌어지고 끝이 났기 때문이다. 영화라고 해도 믿지 못할 이야기다.
어젯밤... 야당 대변인의 가슴에 계엄군의 총이 겨누어졌다
오늘 아침에 분노의 감정으로 눈을 뜨면서 문득 故 신해철의 이 노래가 떠올랐다. 군인들이 세상을 장악하고, 사람들을 폭력으로 제압하고 심지어 목숨을 앗아가던 야만의 시절을 노래했던 이 노래가 2024년에도 유효할 것을 신해철은 알고 있었을까.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총과 칼로 시민들을 겨누는 자들이 나타나리라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어젯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벌어진 일들을 기억하고 남겨야 한다. 우리의 목을 조르려던 야만이 간밤에 코 앞을 스치고 지나갔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