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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se(by 이소라)

당신들의 앞길에 불행만이 가득하기를...

by radioholic
우울한 마음과 늘 불안함과
또 포기의 시간들이 네 운명이기를
사랑할 때마다 일할 때마다
저 파멸로 향한 길이 네 앞을 밝히기를
(이소라, 'curse' 中)


언제부터인가 SPC 그룹이 운영하는 빵집에 가지 않는다. 빵이 만들어지는 공정에서 발생한 노동자의 죽음마저 재료로 쓰인, 소위 '피 묻은 빵'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일터에서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참담한 일이지만, 내가 더 화가 났던 것은 수년동안 사망자 가족들의 절규와 항의를 외면했던 그 기업이 정권이 바뀌고 대통령의 질책이 있자마자 허리를 굽히는 그 저열함 때문이었다.


아침에 일하러 가겠다며 인사하고 출근한 가족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올 때의 그 충격과 처참한 심정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왜 생계를 위해 출근한 일터가 생명을 앗아가는 잔인한 현장이 되어야 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묻고 또 물었지만, 그저 공허한 울림으로 끝나버릴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들 중 누군가는 그렇게 만들어진 빵을 먹고 기운을 내어 생계를 이어나간다. 너무나 비극적인 장면이다.


알고나면 먹을 수 없는 것이 있다...(출처 : 이정헌 화백 SNS)




베이글 가게에서 한 청년이 죽었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MZ들의 핫플로 일컬어지며 엄청난 웨이팅을 해야만 겨우 베이글을 살 수 있는, 설립자의 특별한 철학에 기반하여 운영한다는 그런 곳에서 일하는 직원이 과로사를 한다는 것이 도통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가족에게 양심껏 행동하라며 윽박을 지르며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노동부에서 기획감독에 나서자마자 납작 엎드려 사과하는 행태 어디에서도 설립자가 여기저기에서 얘기하고 다닌 '자기다움'이나 공간에 대한 철학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어른이라 불릴 자격이 없는 나이 든 자들이,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따위의 레토릭으로 젊은이들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하는 행태는 왜 사라지지 않을까. 자기 직원을 보호해주긴 커녕 남의 집 귀한 자식을 죽음으로 몰아간 책임이 있는 자들이, 힘없는 유가족들에게 안하무인으로 대하다가 힘 있는 권력이 개입해야 고개를 숙이는 저 파렴치함을 도대체 언제까지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당신 자신이 되세요'라며 젊은이들의 멘토 행세를 했던 그 설립자는, 정작 자기가 만든 그 가게에서 일하던 청년이 자기 자신을 잃고 죽어가는 참극을 막지 못했다.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젊은 청년들을 착취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그들에게, 이소라의 'curse'는 너무나 사치스러운 노래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증오하는 감정을 이토록 우아하게 표현한 명곡을, 저따위 인간들에게 들려주는 것 자체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를 걸어주는 꼴일 테니까. 하지만 노래 가사 속에 담겨있는 그 저주의 말들이, 반드시 그들의 삶 속에서 구현되길 바란다. 늘 우울하고 불안하며 소중한 것을 포기해야 하고, 끝내 파멸로 향한 길을 걷게 되길 말이다.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면 그 정도 대가는 치러야 하는 법이다.


어떤 자들이 베이글 가게를 2천억에 팔았다며 기뻐하고 여기저기 홍보를 하고 다니던 그 시간에, 그 베이글을 만들기 위해 적은 임금을 받고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가 끝내 쓰러진 청년을 우린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것을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청년을 비롯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데 일조한 그 누군가들이 아주 철저히, 절대로 불행해지기를 정말 간절하게 기도해 본다.


https://youtu.be/s50R8bBNsd4?si=xd1v-dKDrrrz_uIq

저런 자들을 욕하는데 누나 노래를 써서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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