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너머 누군가에게...

악에 받친 사람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by radioholic
선생님~ 제 말씀 좀 들어보세요... 선생님!!!


내 옆 자리에서 저 말이 들려올 때면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하게 된다. '아... 오늘도 어김없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처음엔 나지막한 목소리로 시작된 통화에 점점 긴장감이 실리고, 대화를 주고받는 리듬이 불규칙하게 속도를 타다가 결국 저 멘트가 나온다는 것은, 상담이 결국 민원으로 바뀌는 순간임을 암시한다. 이후 수없이 반복되는 설명과 설득, 그리고 결국 한숨과 함께 더 이상은 도와드릴 게 없으니 통화를 종료하겠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의 시간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옆에서 듣는 나까지도 맥이 풀리게 만들고야 만다.


작년 말 인사발령 이후 난 회사의 민원담당 부서의 팀장으로 일을 하고 있다. 회사가 어느 정도 공공성 있는 업무를 하고 있다 보니, 우리 부서는 상담을 위해 방문하는 이들과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전화와 하루 종일 씨름을 한다. 방문객들 중엔 가끔씩 상담직원을 당황케 만드는 이들도 있지만, 크리스마스이브 아침에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로 우릴 웃게 만드는 분들도 있어 업무의 긴장도가 항상 높지는 않다. 문제는 흔히 콜센터라고 불리는 파트로 걸려오는 전화 상담이다.




며칠 전 콜센터에서 가장 연륜이 있는 베테랑 직원분이 조용히 내 자리로 다가왔다. 웬만하면 자리에서 잘 일어나지 않는 그분이 내 자리로 온다는 것은, 쉽게 다루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는 의미이기에 초임팀장인 나는 무의식적으로 자세를 고쳐 잡게 된다. 긴장되는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무슨 일이냐는 눈짓을 던지는 나에게 그분이 입을 연다.


팀장님... 또 그 사람인데 어떻게 할까요...


지난달부터 콜센터 직원들을 패닉으로 빠뜨리고 있는 그 민원인에 대한 이야기다. 일단 전화 상담 직원들에게는 그 전화는 받지 마시라고 공지를 한 뒤 불편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안그래도 며칠 전부터 그 민원인과 통화를 하던 상담 직원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고, 그 사람이 감독기관으로 던진 우리에 대한 민원들이 우리 쪽에 다시 이첩이 되어온 상황이라 골머리를 앓던 차였다. 이첩되어 온 서류에 적혀있는 막무가내의 비방과 형편없는 악담, 그리고 그것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토스하는 감독기관의 무심함들이 섞여 마치 숙취처럼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었다.


민원이 발생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그동안 그 민원인과 상담직원들이 나눈 상담 녹취파일들을 하나씩 열었다. 질문을 가장한 시비, 도무지 알 수 없는 얘기를 던져놓고는 자기 말을 알아먹지 못한다며 내지르는 고성, 불가능한 요구를 하고는 그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다는 상담직원에게 폭언을 가하며 책임자를 바꾸라는 막무가내, 욕을 하지 말라는 상담직원의 요구에 내가 이 정도는 욕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적반하장, 그리고 여기서 표현하지 못할 말들이 시궁창처럼 녹아있는 통화 내용을 수십 분 동안 듣고 나니 넋이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 목소리를 그저 듣는 나도 이 정도인데, 그와 대화를 해야 하는 직원들의 마음은 대체 어땠을지를 생각하니 고개를 들기가 어려웠다.


전화는 원래 안부를 묻는 용도가 아니었나요...


콜센터 직원들을 비롯한 감정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몇 해 전부터 감정노동자 보호법(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이 시행되는 등 여러 조치들이 마련되었지만 여전히 감정노동자들은 악성 민원의 공포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민원'이란 말이 언제부터인가 회사나 기관들을 통제하는 갑질의 효율적인 무기로 자리 잡으면서, 해당 업무를 하는 직원에 대한 터무니없는 요구와 모욕적인 발언마저 고객의 정당한 요구이자 서비스 받을 권리로 오용되는 것을 막기엔 법과 제도는 아직 많이 무력함을 고작 두 달 남짓한 민원 부서 근무를 통해 여실히 느끼고 있다.




그 민원인이 남긴, 고성과 폭언과 비아냥과 비난이 몽땅 녹아들어 있는 통화 내용을 듣는 내내 분노와 허탈함에 괴로워하다가 귀에서 이어폰을 빼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이 사람은 왜 이토록 악에 받쳐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악을 왜 하필 우리에게 저렇게 최선을 다해 풀고 있는 것일까. 들어줄 수 없는 요구를 하고 있음을 본인이 결코 모르지 않을 텐데, 그렇다고 우리에게서 그가 얻어낼 이득도 없는데도 그는 왜 전화기 건너편에서 얼굴도 모르는 우리에게 저토록 악다구니를 부리고 있는 것일까. 그 사람은 과연 우리와 마주 앉아 얼굴을 보고도 그렇게 괴성을 지르며 악랄한 비아냥을 던질 수 있을까.


그는 어쩌면 정신이 온전치 않은, 생활환경이 불우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이유들이 그로 인해 우리 직원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고통을 무마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수화기 너머로 던지는 그 독버섯 같은 말들이 그것을 듣는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그 고통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해질 때 어떤 비극적인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도 말이다. 그래서 난 그 민원인을 이해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월요일이면 난 감독기관과 그 민원인에게 보낼 회신문을 써야 할 테고, 어쩌면 감독기관에 민원이 발생한 상황을 해명해야 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엔 그 민원인과 직접 통화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모두 사적인 관계가 아닌, '업무'라는 이름으로 내 앞에 던져진 것이니까.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궁금할 것 같다. 왜 세상에는 그토록 험한 분노와 악에 받쳐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인지를. 그리고... 실제로는 속으로만 삭이며 결코 하지 못하겠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던져주고 싶은 말을 노래를 통해서나마 남겨본다.


https://youtu.be/XUDP0NSKVLs

제발 닥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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