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는 왜 부동산을 닮아갈까

되팔이와 투기꾼들이 만드는 세상

by radioholic
그건 또 뭐야?


문 앞에 놓인 납작한 택배박스를 슬그머니 들고 집에 들어오는 나를 목격한 와이프가 던지는 저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마치 죄인처럼 어깨를 움츠리게 된다. 처음 LP의 세계에 발을 들이면서 나에게 했던 다짐은 한 달에 딱 한 장만 사서 닳도록 듣자는 것이었지만, 세상엔 왜 그토록 탐이 나는 음반이 많은 것일까. 평소에 관심 있던 LP가 할인을 한다거나,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반이 LP로 출시된다는 소식에 내 손가락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구매 버튼을 누르고 있으니 말이다.


주말 아침에 일어나 세탁기를 돌리고 커피를 내리며 내가 좋아하는 라디오 방송을 다 들은 뒤, 그동안 모은 LP를 턴테이블에 얹어 듣는 기분은 요즘 내가 즐길 수 있는 최고의 호사다. 특히나 그 LP가 수많은 고민과 기다림 끝에 내 손에 들어온 것일 경우엔 더더욱이나 그렇다. 한 장에 적어도 4~5만원을 호가하고, 예약앨범의 경우에는 주문을 하고 길게는 3개월 후에나 받을 수 있는 것이니 그럴법하지 않겠나. 그렇게 내 손에 들어온 LP를 턴테이블에 올리고 그 위에 바늘을 얹기 직전의 그 설렘은, 학창 시절 카세트테이프를 사서 데크에 꽂을 때의 두근거림을 다시 느끼게 해 줘서 애틋하기까지 하다.


오늘의 BGM은 보사노바입니다


이제 우린 유튜브나 멜론과 같은 음원 사이트의 스트리밍을 통해 곡 단위로 음악을 듣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앨범 전체를 천천히 즐기는 것이 어색해져 버렸다. 하나의 앨범을 구성하는 여러 곡이 다양한 분위기로 기승전결을 이루고, 다 듣고 나면 마치 영화 한 편을 본 것만 같은 여운을 느끼는 것은 오직 음반 하나를 온전히 다 들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지만 디지털 음원의 편리함에 밀려 잊힌 지 오래다. 그 감정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때 그 설렘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그 비싼 LP를 한 장씩 한 장씩 사서 모으는 게 아닐까.




이렇게 LP 듣기를 취미로 삼으면서 이따금씩 화가 날 때가 있다. 수요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수량을 '한정판'이란 명목하에 찔끔 발매해 놓고서는, 마치 팬들의 충성심을 테스트하듯 줄 세우기를 시켜 LP를 판매하는 일부 뮤지션과 기획사의 행태가 그렇다. 내가 정말 애정하고 응원했던 어떤 밴드는 자신들의 LP를 소량 발매하고는 오직 평일 오전에 오프라인에서만 살 수 있게 해서, 시간 많고 알바를 고용할 여유가 되는 되팔이들만 LP를 구입하고 정작 팬들은 그 되팔이들에게 울며 겨자 먹기로 웃돈을 주고 사게끔 만드는 촌극을 빚었다. 7만원을 훌쩍 넘는 정가도 가당치 않았지만, 지금 그 음반이 인터넷에서 40만원 가량에 팔리는 것을 보면 결국 되팔이들만 배 불리는 음반 발매였던 셈이다. 그들이 원하는 게 이런 모습이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자신들의 음반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엄청난 가치를 가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오만함도 싫지만, 더 싫은 건 자기 스스로 자신의 앨범을 작품이 아닌 '굿즈'로 취급하는 우스꽝스러움이다. 한번 들을 때 수십 원도 안 되는 음원이 아닌, 꽤나 고가의 금전적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물리적 음반의 형태를 통해 온전히 자신들의 음악을 감상하고자 하는 팬들의 성의를 무색하게 만드는 전형적인 자기 비하의 마케팅이란 것을 그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음반이 팔린다는 것이 자기 음악의 가치를 깎아먹는 것이 아니라 파편적인 음원과 달리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음에도, 오로지 한정된 사람들만 그것을 살 수 있게 만들려는 의도를 참 알 수가 없다. 이건 그저 발 빠르게 음반을 구하지 못한 나이 든 영포티의 넋두리일 뿐이라고 치부한다면 뭐 할 말은 없지만.


LP의 제작비가 많이 드는 탓에 대량 발매가 어렵다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문제는 예약 판매를 통해 수요를 파악하고 필요 수요가 충족이 되면 그 수량만큼만 찍어내면 된다는 것을 이미 여러 뮤지션들이 보여주고 있다. 자기 음악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음반을 구할 수 있도록 추가 발매를 통해 배려를 해주는 뮤지션들이 존재한다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명반이라 인정받았지만 품절되어 한동안 구할 수 없었던 박지윤의 7집 '꽃, 다시 첫 번째'와 20주년 기념 앨범이 이번에 추가 발매되면서 되팔이들의 장난질을 무색케 만든 게 그런 사례다. 얼마 전 무명 시절부터 내가 정말 좋아했던 어떤 뮤지션이(엄밀히 말하면 그 기획사가) 자신의 LP를 예약판매 한다며 홍보를 하고는 결국 오프라인에서 줄 세우기 식으로 팔고 남은 재고만 팔아치운 뒤 품절을 띄웠던 황당한 행태와는 질적으로 다른 행보다.




생각해 보면 예술문화 영역의 취미라 할 수 있는 LP 듣기가 공교롭게도 자본주의의 정점인 부동산 시장이 돌아가는 모양새와 너무나 닮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손에 넣기가 너무나 힘들고, 그게 딱히 필요는 없지만 오직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이들에 의해 점유되면서 경제적 폭리의 도구로 쓰인다는 것이 그렇다. 그들의 이름이 음반 시장에선 '되팔이'고, 부동산 시장에선 '투기꾼'이라는 것만 다를 뿐이지 않나. 돈 있는 사람이 재화를 독점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기본 논리일지 모르겠지만, 그게 문화의 영역에까지 통용되고 있다는 것은 참 서글픈 일이다. 사실 뭐 어느 시장이 안그렇겠냐마는.


내가 지금 전세살이를 하고 있는 아파트는 10년 전만 해도 5억이 채 안 됐지만, 어제 네이버 부동산에 올라온 가격은 16억을 넘어가고 있다. 물가 상승률 따위는 우습게 만들어버리는 부동산 시장의 행태는, 약육강식이란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복마전의 양상을 보여준다. 부동산 시장이 왜곡된 것에는 수많은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결국 돈을 가진 사람이 오직 투자의 목적으로 자기가 살지도 않을 집을 여러 채 갖도록 방치함으로써 실제 수요자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만든 이유가 크지 않을까. 내 집이 없는 나는 이런 미친 부동산 시장이 너무나 싫은데, 그나마 내가 즐길 수 있는 음악마저 저런 모습을 닮아가는 것 같아서 화가 난다.


요즘 와이프는 혼란스러운 부동산 시장의 상황과 더불어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내년을 걱정하며 이런저런 공부를 하고 있고, 나는 위에서 언급한... 내가 나름 덕질을 하고 있었던 밴드와 가수에 대한 애정을 거둬들였다.(장바구니에 담아놓고 있던 그 밴드의 CD들도 모두 삭제했다) 초기의 어려움을 딛고 어느덧 유명세를 타고 대세로 자리 잡은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난 앞으로도 LP를 조금씩 사서 듣는 재미를 포기하지 않겠지만, 자신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을 존중하지 않는 뮤지션들의 '굿즈'를 사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LP 시장과, 내 삶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부동산 시장이 지금의 미친 모습을 벗어나 부디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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