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을 할 줄은 몰랐으니까요...
모든 인간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어.
스윙을 하는 인간과 스윙을 하지 않는 인간이야.
(영화 '스윙걸즈' 中)
인생을 살면서 스윙을 할 일이 얼마나 될까. 아니 스윙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거나, 그 뜻을 명확히 알게 되는 날이 있을까. 재즈를 좋아하거나 관심이 많아서 스윙재즈 특유의 그루브를 듣고 즐길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리듬을 직접 악기나 노래로 구현할 일은 웬만해선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웬만해선 일어나지 않을 그것을 요즘 내가 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영화 '스윙걸즈'에 나오는 인간 분류법에 따르자면, 난 이제 스윙을 하는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셈이다.
학원 공연곡으로 Nat King Cole의 'L-O-V-E'를 보컬 없이 피아노와 기타 듀엣으로 연주하게 되었다. 고백하자면 난 참으로 부끄럽게도 이 곡을 스윙 리듬으로 연주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어차피 내 수준으로 편곡한 악보가 있고 멜로디도 크게 복잡하지 않으니 피아노와 합만 잘 맞추면 되겠다는 내 생각이 얼마나 안일했는지는, 선생님들 앞에서의 첫 합주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악기 간의 합은커녕 스윙 리듬에 맞춘 연주 진행이 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스윙 필은 그것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너무도 명확한 실제로 존재하지만, 말로 설명하려고 하면 끝없이 막연해진다...(중략) 스윙 필이란 하나의 느낌이 아니라 이 다양한 리듬감의 총합으로 존재한다고 해야 할까. 그러고 나면 선생의 입장으로 선 나로서는 조금 무기력해진다. 그저 몇 가지 외형적인 설명을 할 수 있을 뿐, 세밀한 영역에 대해서는 그저 느껴질 때까지 반복해서 들으라고 말하는 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최은창, <재즈가 나에게 말하는 것들> 中)
스윙 리듬이란 것이 이론상으로는 한 박을 2/3 박과 1/3 박으로 나누되, 박자를 아주 미묘하게 밀고 당겨서 리드미컬한 느낌을 내야 하는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울까. 심지어 재즈를 전공하고 대학에서 재즈 강의를 하는 현역 재즈 연주자마저도 스윙 필(feel)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하는데 말이다. 정말 최은창 작가의 말처럼 그 리듬이 느껴질 때까지 반복해서 들으면 체득이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정박도 제대로 소화 못하는 아마추어가 심지어 밀고 당기는 박자를 구현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한 초보에게 트리플악셀을 해보라는 것과 딱히 다를 게 없는 막막함이다. 합주 후 풀이 죽은 채로 집에 돌아온 후에도 합주 때 틀었던 메트로놈의 '또옥딱또옥딱'하는 스윙 박자 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대체 스윙이란 무엇일까 번민하다가, 무려 20년 전에 깔깔대며 봤던 영화 '스윙걸즈'가 문득 떠올랐다. 이걸 보면 스윙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스윙걸즈'는 밴드는커녕 악기를 다뤄본 적도 없는 고등학생들이 무려 빅밴드 재즈에 도전하는 과정을 깜찍하게 그린 예쁜 동화 같은 이야기다. 우연히 살짝 찍먹하듯 맛본 음악의 세계에 빠져, 그냥 밴드도 아닌 빅밴드를 꾸리겠다며 호기롭게 도전해 보지만 쉬울 리가 없다. 겁 없이 도전한 거리공연을 망친 뒤,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스윙 리듬에 괴로워하던 와중에 그 아이들을 각성시킨 것은 빼어난 지도자나 홀연히 나타나 밴드에 합류하는 천재도 아닌, 횡단보도를 건너다 우연히 듣게 된 신호등의 음악(Comin' through the rye) 소리였다.
평범한 신호음의 박자를 '짝, 짝, 짝, 짝'의 정박이 아닌, '읏짝읏짝읏짝읏짝'하며 밀고 당기는 스윙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며 '진짜 재즈같다'며 흥에 겨워 춤을 추는 장면은, 재즈나 스윙이란 것이 안드로메다처럼 멀고 닿기 어려운 존재가 아니라 생각의 전환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것임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명장면이다. 그 후로 아이들은 후진하는 버스를 유도하는 호루라기 소리에서도, 탁구대 위를 똑딱이며 오가는 탁구공 소리에서도 스윙 리듬을 찾아낸다. 그렇게 스윙을 즐기게 된 아이들이 끝내 경연대회에서 빅밴드 재즈 공연을 해내는 장면은 너무도 흐뭇해서 끝내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히고야 만다.(내 얘기다...)
중년의 아저씨가 혼자 방구석에 앉아 메트로놈을 스윙리듬 120 bpm에 맞춰놓고, '또옥딱 또옥딱'하는 미묘한 박자에 맞춰 입으로 '따읏따 따읏따' 소리를 내며 몸을 끄덕거리고 기타를 연습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스윙리듬 특유의 흥겨운 그루브를 따라가지 못하고 정박으로 뚝딱대는 한심한 몸뚱이와 엉키는 손가락에 화를 내다가 문득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싶어 실소가 터진다. 영화 속 우에노 주리와 그 친구들이 신호등 음악에 맞춰 스윙리듬으로 춤을 추는 그 청량함과 달리, 리듬을 타고자 안간힘을 쓰는 나의 어설픈 몸사위는 안타깝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해서 웃프다.
난 재즈 듣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Jazz it up' 같은 책들을 뒤적이며 재즈 뮤지션들의 일대기를 마치 무협지처럼 즐겨 보곤 한다. 얼마 전 국민학교 동창들과 오랜만에 들른 '천년동안도'에서 즐긴 공연의 여운에 며칠을 들뜬 마음으로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실제로 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고, 직접 재즈를 연주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런 내가 어쭙잖은 기타 실력으로 꾸역꾸역 스윙 리듬을 연습하는 게 조금은 한심스럽다가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두 부류 중 스윙하는 사람에 속하게 되었다는 은근한 뿌듯함을 즐겨보기로 했다.
잘 풀리지 않는 기타 연습에 질려 메트로놈을 끄고 난 뒤 컴퓨터 앞에 앉아 새삼스레 스윙의 의미를 사전에서 다시 찾아본다.
swing [swɪŋ] (전후·좌우로) 흔들리다 [흔들다]
무엇에도 미혹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을 훌쩍 지나 지천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에도 수없이 흔들리고 휘청이는 나에게, 어쩌면 스윙은 꽤나 잘 어울리는 장르일지도 모르겠다. 거칠고 엉망인 채로 대책 없이 흔들리지만 말고, 설령 불규칙해 보이더라도 그 속에 숨겨진 리듬을 찾아 흥겹게 흔들거리며 살 때가 되지 않았냐고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으니까. 이젠 굳이 정박자의 규칙적이고 관습적인 삶을 추구하는 대신, 다소 서툴더라도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 가는 대로 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이다.
이젠 꿈이나 장래희망이란 단어를 쓰는 게 너무 어색한 나이가 되었지만, 나중에 환갑쯤 되면 한 번쯤은 작은 재즈클럽에서 신나게 재즈 연주를 해보고 싶다는 꿈을 꿔본다. 그때까지 내가 계속 기타를 손에서 놓지 않고 배우고 연습한다면 좀 더 노련해지고 지금보다는 좋은 연주를 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보다 조금 떨고 덜 흔들리는 경지에 이르렀을 때, 그런 공연에 참여하고 싶다는 희망 하나쯤은 가져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언젠가 나이가 들면 데파페페의 곡을 연주하는 노인이 되고 싶다고 했더랬는데, 노년에 이 모든 희망을 이루려면 참 바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달 후의 내가 과연 공연장에서 'L-O-V-E'를 멋지게 스윙 리듬에 실어 연주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스윙걸즈를 보고 난 후의 지금의 마음가짐이라면 비록 잘하진 못하더라도 즐겁게 해 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40대 중반의 소심한 아저씨에게 힘을 불어넣어 준, 이젠 나와 함께 늙어가고 있을 20년 전의 스윙걸즈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