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덜터덜이든 사뿐사뿐이든... 어쨌든 가자
우리 집에 가자 맛있는 과자 양손에 무겁게 사 가자
맥주도 사자 아끼지 말자 다 들고서 집으로 가자
집에 가자 누워만 있자 열 번은 본 영화를 또 보자
울다가 웃자 네 말이 맞아 그러다가 스륵 잠들자
(스텔라장, '집에 가자' 中)
생각해보면 난 한시도 집에 진득하게 있는 걸 견디지 못했다. 오죽하면 내 유년시절의 모습이 걱정되었던 어머니께서 날 집에 붙들어두고 싶어서 당신은 그토록 싫어하셨던 강아지를 키울까 고민하셨을까. 언제나 밖에 나가서 놀 궁리만 했고, 비가 와서 바깥에 나가지 못하는 날은 정말 미칠 것만 같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내 성격은 30대까지도 이어졌다. 집에서 읽어도 될 책을 굳이 굳이 카페에 가서 읽어야 직성이 풀렸고, 휴일 낮에 집에 있는 것은 내 젊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양 무작정 카메라를 들쳐메고 뛰쳐나갔던 날들이었다.
그랬던 내가 이젠 집에서 빈둥대는 집돌이가 되어 있었다. 카페에서 마시던 커피는 내가 주방에서 직접 내려마시고, 책은 거실 창문 앞 의자에 앉아 볕을 쬐면서 읽는 게 너무나 편해졌다. 어딘가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 자체가 조금은 피곤하게 느껴지는 건 내가 나이를 먹고 안일해졌다는 증거일까. 하지만 어쩌겠는가. 정말로 이젠 바깥보단 집이라 이름 붙여진 공간이 좋아져 버린 것을. 어떤 날은 출근하는 순간부터 퇴근하고 집에 돌아올 생각에 힘이 솟을 때가 있다. 나가서 9시간만 버티면 돌아올 곳이 있다는 그 든든함이란 것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커져가는 감정이다.
나는 언제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집이기를 바랐다. 명의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2년을 살지 20년을 살지 그런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의 고양이들과 함께 잠이 들고 아침을 시작하는 곳,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샤워를 하고 화장을 하는 곳. 하루의 끝에 내가 돌아가야 하는 곳.
- 최고요,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中
공간디렉터 최고요 작가가 책에 쓴 이 구절을 난 정말 좋아한다. 내가 어느 순간부터 갖게 된 '집'이란 존재에 대한 애정의 마음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비록 내 명의의 집은 아니지만, 내가 살기로 약속된 시간만큼은 내가 가장 편하고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곳. TV에 나오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 칼같이 각이 잡힌 그런 공간은 아니지만, 나와 내 가족의 마음속 질서에 따라 모든 것이 무난하게 놓인 곳. 그리고 바깥에서 전투 모드로 날이 서있던 나를, 늘 같은 자리에서 무심하면서도 따뜻하게 받아줄 수 있는 곳. 그게 집에 대한 나의 솔직한 마음이다. 집이 개인에게 주는 진정한 의미를 늦게나마 느끼게 된 셈이다.
나의 아버지는 생전에 활발히 사회생활을 하실 때나, 사업에 실패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셨을 때나 한결같이 베란다에 있는 화분들을 참 열심히 가꾸셨다. 그래서 비록 가세가 기울고 집안의 분위기가 어두워졌을 때도 우리 집 베란다엔 늘 초록의 생기가 돌았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께서 그토록 화분들에 정성을 쏟으셨던 것도 아마 당신이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우리 가족이 몸을 누이고 쉬어야 할 삶의 터전인 집에 대한 애정의 의미였으리라. 나와 내 소중한 가족들이 함께 해야 할 최후의 공간인 그곳만은 포기할 수 없으셨을 테니까. 당신의 그 마음을 중년이 된 이제서야 헤아리게 된 것 같아 문득 부끄러워졌다.
"바쁜 날에도 종류가 있다. 미친 듯이 바쁜 날도 있고, 정신없이 바쁜 날도 있으며, 심지어는 그냥 이유 없이 바쁜 날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짜증나게 바쁜 날은 일을 마쳐도 찝찝하고 괜히 화가 치밀어 올라서 최악이다. 내적 침 뱉기 한번 세게 하고, 어서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퉤."
지난달 딱 이맘때쯤 퇴근하는 길에 내 인스타그램에 토하듯 마구 써갈긴 글이다. 딱 한 달밖에 안 됐음에도 저 날의 기억이 흐릿해졌지만, 아마도 쉴 새 없이 날 찾는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해주고, 그러다 보니 정작 내가 할 일은 계속 쌓이고, 그 모든 걸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하루 종일 뛰어다녔음에도 결국 아무것도 끝맺음된 것이 없이 혼자 너덜너덜해진 그런 날이었던 것 같다. 그나마 퇴근길의 나를 위로해 줬던 것은 황국영 작가의 책 「퉤퉤퉤」를 사면서 받은 귀여운 키링 속 그림과, 헤드폰에서 울리고 있던 스텔라장의 '집에 가자'였다.
그렇게 지치고 화가 치미는 날에는, 돌아가서 편하게 쉴 수 있는 집이 있다는 사실만큼 위안이 되는 게 없다. 바깥에서 묻은 분노와 오욕의 찌꺼기들을 씻어낼 수 있도록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온갖 사람들과 마주하고 이상한 소리를 들으며 잔뜩 허기진 몸과 마음을 채워줄 밥과 그것을 함께 먹을 가족이 있다는 것. 그렇게 충만하고 나른한 기분으로 꾸벅꾸벅 졸다가 노래 가사처럼 스륵 잠이 들 소파와 침대가 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 이토록 소중한 집의 의미를 '집에 가자'라는 네 글자만큼 잘 표현한 노래가 또 있을까.
하루 종일 열심히 일했으니까 나는 쉬러 간다
넌 어땠니 분명히 고단할 테니까 너도 쉬러 가자
고생한 날 안아주자
(스텔라장, '집에 가자' 中)
오늘도 난 다행히도 아무 일 없이 집에 들어왔고, 와이프가 끓여준 김치찌개와 함께 밥을 한 공기 반이나 먹은 뒤, 소파에서 TV를 보며 띵가띵가 기타를 치다가, 잠자기 전 이렇게 스텔라장의 노래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그저 집에서 평범하게 보내는 이 보통의 밤이 먼 훗날 언젠가엔 사무치게 그리워질 것을 안다. 그래서 이 밤을 조금만 더 안온하게 즐기다 잠들어야겠다. 정말 아무런 일이 없었음에도, 오늘은 그냥 좋은 밤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 모두 집에서 편안한 밤 보내시길.
https://youtu.be/b--HUGYCcVo?si=Ff4tP95KmuZ-MBW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