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다섯. 40대의 중간을 관통하는 내 나이를 떠올리면 가끔 흠칫 놀라곤 한다. 도저히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마흔이란 나이를 5년이나 지났다고? 혹자는 나라에서 만 나이를 쓰라며 나이를 한 살 줄여줬는데 왜 굳이 예전의 나이 계산법을 쓰냐고 하지만, 괜히 헷갈리기만 하고 한 살이라도 어려 보이기 위한 발버둥인 것 같아 그냥 한국식 나이로 얘기하곤 한다. 이젠 정말 부정할 수 없는 중년의 나이. 살짝 우울하기도 했고 위축된 감정을 갖기도 했지만 이젠 그런 감정도 희미해지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가 나에겐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그런 와중에 정미조 님이 엊그제 발매한 '75' 앨범을 듣고 아주 많은 생각과 감정이 내 머리와 마음을 채웠다.
정말 '어어...' 하는 사이에 30대가 지나갔고 또 '어어...' 하는 사이에 40대 중반에 이르렀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시간의 가속도에 당황하며 허둥대는 과정인 것 같다. 흔히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20~30대라고 하지만 그건 다시 말하면 40대 이후의 삶을 아름답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는 것 아닐까. 어린 친구들이 '꼰대', '틀딱' 이라 치부하는 그 나이가 사실은 꽤나 살만한 시기라는 것을 보여주는 어른들이 계셔서 참 다행이란 안도를 하곤 한다. 바로 정미조 님의 이 앨범이 나에게 그런 안도를 안겨주었던 것 같다. 일흔다섯... 30년 후의 내 나이에도 저토록 품격있게 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을 하며 서로의 음악 세계를 공유하지만, 그렇다고 젊어 보이기 위해 자신의 색깔을 버리지는 않는 꼿꼿함. 내가 앨범 속 12곡을 들으면서 느낀 건 거장의 유연함과 자존감이었다. 젊은 세대를 품어주면서도 어른의 품격을 지키는 것. 어린 친구들이 듣기엔 다소 올드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그 음악 세계 안에 젊은 가수들의 생기를 불어넣으며 변화를 도모하는 모습은 요즘 핫하다는 그 어떤 뮤지션들보다 열려있는 자세가 아니었나 싶다. 나이가 든다고 아집에 빠진다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정미조 님은 자신의 음악과 앨범을 통해 몸소 보여주었다.
이토록 고혹적인 자켓 사진이라니...
언제부턴가 나의 관심사는 현재의 성공보다는 나이 든 이후의 삶으로 바뀌고 있다. 잘 늙는 것.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나의 자존감을 지키며 무기력하지 않게 사는 그런 삶. 젊은 사람들의 나이를 부러워하기보단, 그들에게 무언가 줄 게 있는지를 고민하며 함께 공존하는 어른으로서의 삶. 그러기 위해선 지금부터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아 이것저것 마음 가는 것들을 해보고 있는 중이다. 정미조 선생님이나 배철수 형님처럼 나이가 들어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유연하면서 꼿꼿하게 사는 그런 사람들을 롤모델로 삼으면서. 나도 그런 어른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참 오랜만에 CD를 사서 비닐을 뜯고 천천히 자켓 사진과 속지를 살펴보며, 어느덧 아날로그 매체가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CD만이 가진 특유의 질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이번 앨범은 모든 곡이 정말 다 좋지만... 이효리와 함께 부른 7번 트랙의 '엄마의 봄' 은 내내 여운이 남는다. 한 때 화려한 디바였던 과거를 뒤로 하고 멋있게 나이 들어가는 공통점이 있는 두 사람이 '엄마' 라는 주제로 듀엣을 하는 모습을 보며, 과거와 현재가 서로 멋지게 스며드는 감동을 느꼈다고 할까. 특히 1절 말미에 '엄마'라는 두 글자를 읊조리는 이효리의 음성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제 인생이 뭔지 조금씩 알아가는 사람과, 그 모든 과정을 다 겪고 따뜻하게 지켜봐 주는 사람이 함께 만들어낸 이 노래는 두고두고 명작으로 남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