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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닭비둘 Sep 19. 2023

지구인 외계노동자

찰리 채플린이 말했던가. 영화는 허구다. 기실 그렇다. 성공적인 귀환과 전 세계인들의 아리따운 꽃다발 속에 울려 퍼지는 팡파레. 그딴 건 없었다. 


NASA에서 나를 데리러 온 팀원들은 결국 도킹에 실패했다. 정부에서는 더 이상 한 명의 목숨을 위해 수많은 연구비를 지불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공식적으로, 지구에서 나는 사망자가 됐다. 



아마 위대한 성조기에 쌓인 관이 군인들의 예포와 함께 운구됐겠지. 설상가상으로 통신마저 완전히 두절됐다. 나는 화성에서 살고 있는 유일한 지구인, Mart-ion. 내 이름은 마크 와트니다. 그리고 난 지금 심각하게 좆됐다.     


나란들 말도 잘 안 통하는 화성인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싶었겠나? 당장 식량을 구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35년을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내가 그들과 쉽게 어울리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팔이 네 개나 있는 그들은 더럽게 빠르다. 느리다고 구박받는 건 일상이었다.


 ‘슈발 슈발(역자 주: 빨리 빨리 라는 뜻의 화성어)’은 내가 화성인 사장으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이었다. 욕만 먹었으면 이해 할만도 하지. 손 네 개로 때리는 뺨을 맞아 봤는가? 내가 하버드에서 식물학 박사학위를 딸 때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미래였다. 


하지만 화성에서는 지구에서 내가 무슨 대학을 나왔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나는 외계인 노동자니까.     


이 하찮은 외계인 노동자가 갑자기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 건 어느 날 불어 닥친 모래폭풍우 때문이었다. 농지는 황폐화됐고 기계는 먹통이 됐다. 수많은 공장이 파산했고, 거리에 나앉는 화성인들이 속출했다. 


언론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끔찍한 디플레이션을 다뤘다. 그래도 그게 나에게 피해를 미치리라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내 집 앞에 죽은 벌레 시체와 “돌아가라”는 말이 쓰인 팻말이 놓여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정도는 심해져갔다. 누군가는 협박 전화를, 누군가는 돌을 던졌다. 유력한 총통후보라는 자는 TV에 나와서 우리의 일자리를 가져가는 팔 두 개짜리 쓰레기들을 몰아내겠다고 밝혔다. 대중은 열광했다. 매일같이 내 집 앞에서 화성인들의 시위가 빗발쳤고, 나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욕설과 난동에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집안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책을 읽는 것 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다 식물학 책이다. 젠장 NASA는 왜 우주비행사들에게 협상의 기술, 화성인개론 같은 책이라도 주지 않았을까.


 왜 저들은 나를 저렇게 미워하는 가. 배가 너무 고프다. 허기를 잊어야겠다. 손닿는 대로 책을 집었다. 펼쳤다. 삼투압 현상. 학부때 배웠던 내용이다. 양쪽 끝이 막힌 상황에서 짙은 농도의 물은 옅은 농도의 물로 옮겨가기 마련이다. 


화성인들도 똑같다. 갑갑한 세상에서 탈출구가 없을 때 분노는 약자에게 향한다.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로 빽빽한 상황에서, 짙은 농도의 분자가 옅은 농도로 향하는 것처럼, 그들의 팍팍함은 소수인 내게로 향한다. 

그러나 그들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삼투압현상으로 물체의 질량이 변하지 않듯,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다는 걸. 그저 당장의 분노를 해결하기 위함인 희생양이 필요한 셈이었다.          


4일을 굶었다. 이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딩동! 그때 드론이 창문으로 날아왔다. 오 회사로부터 이번 달 식량이 지급되었나보다. 


살았다! 지금 내게 최고의 선물이다. 


허겁지겁 상자를 열었다. 헐! 사장새끼가 식량대신 동전을 잔뜩 보냈다. 


억울하다. 미치겠다. 


그러나 표현할 방법이 없다. 억울함을 대신 호소해 줄 시스템도 없다. 


좆됐다. 입속에서 어색한 화성어만 맴돌 뿐이다. 


“시버알 젇구앗네”(역자 주: 사장님 나빠요 라는 뜻의 화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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