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young, I’d listen to the radio waiting for my favorite song..”
카펜터즈의 오래된 노래를 듣다 눈물이 났다. 이제 그 라디오는 죽었으니까.. 그때 미친 듯 싸이렌이 울려댔다.
“코드 제로. 코드제로. 응급상황 발생. 전 제작인원 뉴스룸으로 집결”
세월호 사건이 있었던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터진 끔찍한 일이었다. 상황은 비슷했다. 꽉 막힌 행정과 의전, 실패한 구조. 우리 회사를 비롯한 방송사에서는 끊임없이 관련 후속보도를 해댔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이라곤 그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CCTV너머로 관찰하는 것 뿐이다. 이미 내 역할은 사라졌으니깐.. 입사한 지 고작 2년 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다.
센터장님의 표정은 어두웠다. 큰 결심이라도 한 양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미 소문으로 다들 알고 있겠지만, 이사회에서 라디오 센터를 해체하기로 최종 결정했어요. 1CP와 2CP모두 차후 희망하는 부서를 적어서 오늘 중으로 제출하도록 해요.”
아무리 고민해도 라디오 말고는 가고 싶은 데가 없었다. 대부분의 선배들이 예능과 교양국으로 떠났고, 결국 희망부서를 정하지 못한 몇몇은 회사에서 갈 곳을 지정해줬다. 상암사옥 지하 1층 방재실. 그곳이 앞으로의 내 일터였다.
수많은 CCTV로 가득 찬 방. 끔찍하게 외로울 것 같았지만 의외로 CCTV를 하루 종일 뚫어져라 쳐다보는 일은 재미있었다. 서른 개의 화면 속에선 제각기 다른 군상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그 사건이 터져버린 것이다.
비슷한 사건 이어서일까?
관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사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평상심을 되찾았다. 지난번의 교훈이 있어서인지, 정부의 사과와 보상은 빨랐다.
유족들도 달랐다. 질질 끌어봤자 좋은 소리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배워서 일터다. 다시금 예능인들이 방송국을 들락거렸고, 보도국은 일상적 뉴스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두 발을 책상에 올리고 멍하니 CCTV를 쳐다볼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때 건물 외벽에 설치된 28번 카메라에 누군가 비쳤다. 한 여자였다. 중년의.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아니 어쩌면 가장 강한 의지가 서린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전단을 나눠주고 있었다. 홀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 그녀가 내 팔을 붙잡았다.
“선생님. 아무도 제 이야기를 안 들어줘요. 전 아직 너무 괴로운데...아직 왜 우리 애가 그렇게 됐는지 납득할 수 없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둘러댔다. 돌아와 다시금 다리를 올렸다. 업무에 복귀했다. 여전히 28번 카메라에선 여자가 사람들을 향해 슬픈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바로 옆 29번 카메라에 눈이 멈췄다.
불 꺼진 FM 주조정실. 이젠 아무도 찾지 않는 12층. 불현듯 생각났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아주머니를 모시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오랬동안 켜지지 않았던 전원을 켜고, 라디오를 아직 듣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만약 있다면. 자식을 억울하게 잃은 슬픈 어미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따뜻한 사람들이 남아 있다면..
하나 둘 셋. 큐!
“안녕하세요. 저는 6개월 전 남산터널 붕괴사고로 여섯 살 난 딸을 잃은 엄마입니다. 우리 딸은 정말 착했어요... 태명은 건강이에요. 그래서인지 감기 한번 안 걸리던 아이였어요. ”
아주머니의 담담한 말이 멈췄을 때, 아주 오랫동안 아무도 찾지 않았던 문자 시스템에 사람들의 입술이 닿기 시작했다.
“잊지 않고 있습니다.”
문자를 보고 마이크 앞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는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내 인생의 마지막이 될 노래를 띄웠다.
“신승훈이 부릅니다. 라디오를 켜봐요.”
‘지금 라디오를 켜봐요 이 세상 모든 노래가 그대를 향해 울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