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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닭비둘 Sep 19. 2023

육아휴직

“퉁”


정확히 정강이었다. 너무나 아파서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가는 지각이기 때문이다. 애먼 탁자를 쏘아보며 머리끈을 찾았다.


 ‘어디에 뒀더라...’ 


하필 이럴 때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눈앞에 보이는 노란색 고무줄을 대신 집어 든다.


 ‘오늘 쓰고 버리지 뭐’     


 파우치를 손에 들고 택시를 잡는다. 뒷문을 열면서 내지른다.


“회현역 사거리요.” 


흔들리는 차안에서 아이라인을 그려 넣고 있을 때쯤, 기사가 먼저 입을 연다. 


“OO은행 다니시나봐요?” 


아마 내 목에 걸린 사원증을 봤으리라. 화장으로 바쁜 손을 잠시 멈춘 채,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 그 사이 어디쯤의 목소리로 대답한다.


 “네.”     


2년 전 쯤, 백수생활을 끝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은 딸이 서울에 있는 유명한 은행에 다니게 됐다며 돼지를 잡았단다. 엄마는 전화기 너머로


 “소희 그것이 어릴때부터 여간 잔망스럽지 않은 게, 내 꼭 성공할 줄 알았다”던 세탁소 백씨아저씨의 대사를 몇 번이고 읊어댔다. 


하지만 딸이 다니는 회사라며, 적금과 예금을 모두 OO은행으로 옮겨버린 그들에게 모든 사실을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소희씨, 밥 먹으러 가요!” 


계장님이었다. 그나마 회사 내에서 가장 친절한 분이다. 여자 넷의 점심식사는 돈부리. 식사가 나오기 전까지 모두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다. 누군가 입을 먼저 연다.


 “어머! 최주임님이 단톡방에 사진 올리셨어요!”

 탄성이 이어진다. 


“벌써 이렇게 컸네”부터, “다음 주면 돌이라고 다들 오라셔요.”를 지나 “부장님도 오시려나?”까지. 대화가 이어진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 단톡방에는 내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어색해보였는지 박선배가 말을 먼저 건넸다. 


“소희씨도 사진 봤어요? 진짜 귀엽지 않아?” 


그녀가 말을 마치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계장님은 그녀의 옆구리를 찔렀다. 


“돈부리 나왔습니다.”


 음식을 든 종업원으로 어색함은 종결됐다. 태어나 식당 종업원에게 가장 고마워한 순간이었다.     


며칠 째 야근이다. 지친 몸으로 세평 남짓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쇼파에 기대 캔맥주를 땄다. TV에선 뻔하디 뻔한 일일드라마 방영중이다. 


여주인공은 지긋지긋한 가난을 끝냈다. 출생의 비밀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윽고 내린 시한부 선고. 삼개월 밖에 살지 못한단다. 


그녀가 운다. 가슴을 펑펑치며 운다. 단 한 번도 이런 막장드라마를 보며 동조해본 적이 없다. 


‘저게 말이 돼?’라며 코웃음을 치던 나였다. 


그런데 오늘은 눈물이 난다.   

  

다음날 아침, 오랜만에 여유롭게 잠에서 깼다.


 택시가 아닌 버스를 타도 출근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근 석 달간 가장 여유롭고도 멋진 아침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등장했다. 여자의 귀환은 화려했다. 지점장을 거쳐, 부장과 계장을 지나 마지막으로 그녀는 내게 다가왔다.


 “잘 지냈어요?” 


정확히 2년 전 내게 업무를 처음 알려줄 때처럼 웃으며 손을 건넸다. 단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산만했던 배가 언제 그랬냐는 듯 홀쭉하게 들어가 있을 뿐이었다.  

   

내일이면 이 자리는 원래 주인을 찾는다. 그리고 나는 잊혀진다. 부푼 맘으로 샀던 노트북 키커버와 책상 한켠을 자리잡았던 아기자기한 팬시용품을 상자에 집어넣는다. 


마지막으로 목에 걸린 사원증을 벗을 때 꼭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를 빼곤 모두에게 멋진 이 날을 망치고 싶진 않았다. 한 아름 상자를 든 채, 지하철 출구를 나왔다. 내 방을 향해 터덜터덜 걸었다.


“툭”


그때 머리가 풀렸다. 손을 들어 머리를 만지자 무언가 잡혔다. 며칠 전, 정강이를 탁자에 세 게 부딪친 날, 급하게 집어들었던 노란 고무줄이 효용가치를 다한 채 맥없이 끊어져있었다. 


고무줄을 집어 들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눈물이 났다. 운다. 


가슴을 치며, 사람들의 시선따윈 아랑곳않고 그 자리에서 소리 내 울었다. 


그러나 하늘은 어느 육아휴직 대체인력의 퇴사보다 새 생명의 탄생에 더 어울릴 만큼 맑았고, 좌절한 소녀보다 행복한 엄마에게 더 어울릴만큼 햇살은 따사로웠다. 


객관적으로는 너무나 멋진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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