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사실 개소리고 그지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회사에 다닌다. 이유는 제각각이다. 보통 돈, 명예, 자아 이 세가지 이유중 하나일 것이다. 누군가는 돈때문에 일을 하고 명예를 좇거나 자아를 찾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하나만 가지고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돈만 보고 갔던 회사가 너무 나랑 안맞아서, 혹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그지 같아서 택하게 되는 길이 이직이다. 그렇게 이직을 몇번 돌고나면 정말 좋은 회사를 찾게되었더라.는 사실 거짓말이다. 그냥 40대 중반이 되어있을 뿐이다.
천성이 게으르다. 사실 광고를 하겠다고 신방과 대신 광고를 선택했지만, 해보니 게으른 놈이 하기에는 힘들다. 경쟁 피티 하나를 따기 위해 몇날 며칠 비딩을 준비하고, 광고주와의 술약속에 (물론 술마시는건 좋아하지만 비위도 맞춰드리고 돈도 내가 내야하는 건 싫다. 둘중 하나만 하면 좋겠다.) 치어 사는게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도 사실 거짓말이고 당시 과CC를 했는데 차이고 나니까 광고회사보다 좀 더 있어보이는데를 가고 싶었다.
언론사 입사준비반을 들어갔다. 말은 고시반이다만 솔직히 위층에 있는 사법고시준비반이나 옆에 있는 공인회계사 준비반 아이들이 하는 양에 비해 언론고시반이 하는 일은 노는 일이다. 아침에 출석해서 책상에 앉아 신문을 뒤적이다가, 쓸만한 글감을 찾아보고, 대충 농구공을 던지다가 저녁에 술먹으러가는 삶이 언론고시반의 일상이다. 물론 그렇게 노는 놈들은 정해져있다. 나도 그렇다.
예능PD, 기자, 라디오PD, 교양PD, 아나운서. 이 중 하나를 해야겠다. 기자를 해봤다. 인턴이었다. 존나 메이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취재원을 찾아다니거나 정보를 모아 추리고 보고하는 일도 보람있었다. 선배들이 매일같이 돌아가며 술을 사주는 문화도 매우 좋았다. 밥값으로 돈 들일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라디오가 계속 하고 싶었다.
라디오PD는 잘 안뽑는다. 전 사를 합쳐 많아야 1년에 2~3명? 별수 있나. 기자나 TVPD도 써야지.. 그러다 한 일간지에 붙었다. 밤새 고민했다. 이거 그냥 할까?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난 분명 거대한 기업가나 정치인에게 매수되어서 기사를 써주거나, 엄청난 비리를 홍보성 기사로 포장해주는 그런 기자가 될 것이 뻔하니까. 거물급 정치인에게 거액의 돈봉투를 받는 나의 미래를 상상하며 미소지었다. 자연히 수갑을 찬 내 모습이 그려졌다. 그래서 신문사로 전화를 걸었다.
"저... 입사를 포기해야할 것 같습니다."
"왜요..?"
"아... 제가 로스쿨을 갈려고요."
(역시 나는 거짓말을 참 잘한다. 기자를 안하길 잘했다.)
1년만 더 준비해보자. 세상에서 가장 고고한 라디오PD가 되리라. 음악에 대한 깊은 조예와 품위가 넘치는 그런 직업. 하루종일 노래를 선곡하다가, 저녁이면 LP바에 앉아서 잭콕을 홀짝이며 들려오는 노래의 발매 연도까지 떠올리는 그런 라디오PD. 혹여 혼자오신 여성분이
"음악을 좀 아시나봐요."라고 했을때
"아 제가 사실은.."
뭐 이럴 수 있는 그런 사람.
1년 후 기적처럼 붙었다. 신기했다. 행복하기 보단 분명히 떨어질 줄 알았던 면접이기에 기이했다. 입사 첫날이었다. 워너원이 방송에 출연하는 날이었다. 1층 오픈스튜디오에 팬들이 벌떼같이 몰렸다. 라디오국 부장이 날 보며 말했다.
"야 쟤 누구냐."
"신입이래요"
"야 너 전공이 뭐냐"
"광고홍보했습니다."
"그래? 너 할일이 있어. 저기 회사 광고판 보이지. 팬들이 거길 넘어오지 못하게 막아."
입사 첫 날. 나는 앞니가 부러졌다.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