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습니다.”
발단은 거기부터였다. 너무 억울했기 때문이었다. 보통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울고 불거나, 체념하던 사람들을 주로 만나와선지 저승사자는 적당히 당황한 눈치였다. 난 다시 한 번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죽지 않겠습니다.”
단 한 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살면서 누군가를 괴롭힌 적도, 부당한 이익을 편취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불쑥 나타나서는 이승에서의 성과가 없으니 때가 되었다는 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억울했다.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두 주먹에 힘을 불끈 쥐고 말했다.
“저는 못 가겠습니다.”
저승사자는 내 단호함에 인상을 찌푸리더니 말없이 나를 강가로 끌고 왔다.
“어차피 3일 남았소. 3일 후면 싫어도 저 강을 건너야 할 겁니다.”
이 말을 끝으로 사자는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레테의 강. 강을 건너야 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다양했다.
대게 체념하거나 저승에서의 인생 2막을 설계하고 있었다. 분노하는 사람들은 적었다.
운이 좋아 몇 명은 이승으로의 복귀가 허락됐다. 복귀판결을 내리는 판관에게 잘 보이려고 탬버린을 흔들며 춤을 추거나 주머니에 뇌물을 찔러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한 부질없는 줄서기가 끝없이 이어졌다. 그들 옆으로, 높은 첨탑 위엔 '어디에 있건 여러분은 모두의 희망입니다.'라는 이승의 광고판이 걸려있었다.
하루가 지났다. 여전히 죽음을 피하려는 사람들의 몸부림과 죽음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억울해 하고있었다. 부당함을 느끼고 있었다.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이 있다. 이유도 설명도 없는 죽음 통보가 싫었다. 고민 끝에 나는 첨탑을 올랐다. 가장 높은 곳에서 소리쳤다.
“부당죽음 철회하라! 생존권을 보장하라!”
모두가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농성이 계속될수록 누군가는 빵을 위로 던져줬고 박수를 보냈다. 당황한 저승사자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고생이 많으시다며 곧 염라대왕님과 대화 자리를 알선할 테니 일단 내려오시라며 부탁했다. 처음 그날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난 말없이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자신을 저승TV 기자라고 소개한 누군가는 나에게 마이크를 들이밀며, 요즘 부쩍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이 잦아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다. 그러나 반나절이 지나자 사람들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밑에 있던 누군가가 외쳤다.
“귀족영혼이다. 저 사람의 육체는 지금 대학병원 VIP에 누워있다!”
실체를 확인할 수 없기에, 괴담은 널리 퍼졌다. 사람들은 빵과 물대신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여론 탓일까... 밑에 전투저승사자들이 깔렸다.
한때 나를 취재했던 기자는 내가 첫사랑을 얼마나 지독하게 찼던가를 보도하고 있다.
마지막 날이 밝았다. 이제는 비난도 사그라드렀다. 어느 누구도 내가 있는 첨탑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그저 한때 내편이 되었던 몇 명만이 조금씩 내게 씻을 물과 먹을거리를 가져다 줄 따름이었다.
저승사자가 이야기했던 3일이 거의 다다랐을 때쯤, 나는 첨탑에서 아래로 뛰어내렸다.
사건이 되기 위해 첨탑을 올랐던 내가, 다시 사건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