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정말 돼지국밥이 싫었다. 돼지고기를 끓이는 냄새가 역했다. 끈끈한 테이블에 팔을 올리면 살갗이 들러붙을 것만 같았다. 숟가락과 젓가락마저 찝찝했다. 깍두기의 위생 역시 의심스러웠다. 그럼에도 우리는 돼지국밥집에 갔다. 탑골공원의 할아버지들 사이에서, 벌어진 이 사이로 떨어지는 오래된 욕설을 들으며 밥을 먹었다. 선배 형은 다 먹었고, 나는 반만 먹었다. 우리는 현금 1만원으로 계산을 하고, 다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낙원상가를 도서관처럼 여기던 시절이었다.
시네마테크는 낙원상가 4층에 있다. 낙원상가는 오래되고, 낡았다. 아파트는 누렇고, 상가 건물은 빛바랜 푸른색이다. 낙원이 이런 모습이라면 아무도 교회에 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이곳을 낙원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시네마테크 앞의 공터 때문이었다. 4층은 상가 옥상으로 콘크리트 바닥을 드러낸 넓은 공터가 있었다. 앉을 곳은 없다. 사람들은 난간에 기대 서서 북한산을 넘어가는 노을을 바라보거나, 인사동을 걷는 사람들을 보며 담배를 태웠다. 우리도 영화가 끝나면 자판기 커피를 들고 난간으로 향했다. 영화의 신에 대한 질문을 했다. 내가 질문하면, 형은 반문했다. 우리는 답을 내놓은 적이 없었다. 정답을 모르니 매일 시네마테크로 향했다.
언젠가는 영화를 찍고 말 것이다. 영사기가 내가 쓴 시나리오와 연출한 영상을 스크린에 읽어 내리는 날이 오리라. 창피한 마음으로 관객석을 돌아보고,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며 의자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 끝내는 스크린 속으로 녹아 들어간다 해도, 영화를 찍고 싶었다. 나의 언어와 삶은 영화 제작을 위한 장비와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7년이 지나자 가을이 왔다. 시네마테크에서 마지막으로 영화를 본 게 몇 년 되었다. 상영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봤던 영화라 또 보고 싶지 않았다. 첫 번째 핑계다. 두 번째 핑계는 주차할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시네마테크는 지하철을 타고 종로3가역 5번 출구로 나와서 걸어가는 게 가장 짧고, 효율적인 동선이다. 하지만 몇 년 전 중고차를 구입한 이후로는 더 이상 시네마테크를 찾지 않았다. 시간도 없다. 매주 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되는데 굳이 옛날 영화를 봐야 할 이유가 없다. 좁은 극장의 작은 스크린에서는 압도적인 경험을 할 수 없다. 시네마테크와 연을 끊은 이유는 매해 늘어갔다. 하지만 아직도 종로2가를 지날 때면 미안해진다. 7년 전 내게 카톡을 보낼 수만 있다면, '낙원을 잃고, 다른 낙원을 찾고 있는데 쉽지 않다. ㅋㅋ'라고 보낼 것이다.
나와 달리 선배 형은 여전히 영화판에 있다. 입봉작을 준비하고 있다. 처음 입봉을 준비한 게 재작년 가을이었는데, 형은 아직 신인조차 되지 못했다. 가끔씩 홀로 시네마테크를 가고, 낮에는 영화사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도서관을 매일 간다고 모두 시험에 합격하는 건 아니다. 탈락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우리가 증명해냈다.
가을에 시네마테크를 찾으면 은행 냄새부터 맡게 된다. 구린 냄새를 맡다가, 비릿한 돼지국밥 냄새도 맡아야 한다. 낙원에 이르는 길이니 난관은 당연히 있다. 국밥집 할머니가 돼지 머리를 썰고 있었다. 원형을 알 수 없는 형태로 잘려나가는 돼지를 보자 형이 생각났다. 형은 오리털 파카를 입고 다녔는데, 파카에서는 누린내가 났다. 형의 뒷모습은 돼지의 등처럼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파카를 벗고 극장에 앉아 있던 형은 말랐었다. 아무리 돼지를 먹어도 마르기만 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긴장됐다. 내가 왜 시네마테크에 와야 하나? 흥미로운 클래식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지만, 시대와 동떨어진 과거를 상기하는 곳이기도 하다. 유행을 좇기에도 버거운 내게 과거를 탐험한다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처럼 느껴졌다. 티켓 부스에서 3시 영화표를 구입했다. 마스무라 야스조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다. 공터는 변해 있었다. 바닥에는 나무 데크를 설치했고, 인공 잔디와 나무도 심었다. 가끔 공연이 열리는지 무대도 있었다. 나보다 먼저 인공 낙원을 꾸몄다. 실버극장의 노인들이 시네마테크 관객들보다 더 많았다. 시네마테크 아카이브에서 팸플릿을 집어 들었다. 시네마테크 팸플릿에는 작가론과 작품론이 대부분이다. 누가 이런 걸 읽겠느냐만은 시네마테크 관객은 모두 읽는다. 3시 영화 제목은 <남편은 보았다>다. 예쁜 유부녀가 젊은 부자를 꾀어서 그의 재산을 가로채는 이야기다. 1964년의 스릴러라고 팸플릿에 소개되어 있었다. 복도 쪽에 앉았다.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광고가 없기에 영화는 금방 상영된다. 불이 꺼지고 어두운 화면에 필름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가느다란 한숨을 쉬었다.
영화를 보고 난간에 갔다. 황혼이 북한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인사동에는 가로등이 켜졌고, 사람들은 바쁘게 지나다녔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고 나면 말을 잃는다. 어떤 영화들은 여운이 길어서 극장 밖을 나서도 스크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가 있다. 마스무라 야스조의 영화가 그랬다. 예쁜 유부녀의 목소리를 떠올렸고, 젊은 부자의 유부녀를 만나기 전 삶을 생각했다. 캐릭터의 입체감, 사건의 개연성, 플롯의 전개 속도 등을 따져봤다. 습관이었다. 버릇은 자판기 커피를 뽑게 했다. 풍경과 커피 맛은 그대로였고, 나는 7년 전보다 더 작아졌다. 울지는 않았지만 형의 마른 등을 보게 된다면 울 것 같았다. 고향에 왔지만 떳떳하지 못했다. 형을 버리고, 홀로 온 고향은 변한 게 없었다. 고향은 늘 그대로다. 변하는 건 떠난 사람이다.
왜 옛날 영화를 다시 봐야 할까? 지난해 시네마테크 프로젝트 기사를 진행하며, 영화인들에게 물었다. 빤한 대답을 들었다. 이야기의 원형을 탐구해야 한다고, 고전 소설을 읽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그런 말은 교과서에 쓰일 답변이다. 우리가 옛날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는 고향이기 때문이다. 고전 영화는 과거의 공기를 담고 있다. 다시는 맡을 수 없는 그 시대를 담고 있다. 과거는 기억의 재해석을 여러 번 거쳐 현실에 도달한다. 좋은 것만 기억하려 한다. 싫은 기억은 제거된다. 과거는 왜곡된 기억이므로 행복하다. 우리는 현실에서 도피할 공간으로 과거의 일정 부분을 선정한다. 그리고 그 기억으로 회피한다. 많은 사람들의 습관이다. 고전 영화는 왜곡된 기억을 불러낸다. 오래된 영화를 보면 그 안에 머물 수 있다. 그래서 형은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는 걸까? 그래서 새로운 사람이 되지 못한 걸까?
형이 보고 싶었다. 형에게 나는 실패한 영화인쯤으로 여겨질 것이다. 형에게 돼지국밥이 아니라, 쇠고기국밥을 사줘도 형의 시선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왜 변했을까? 지난 몇 년간 열심히 살았지만 목적이 없었다. 목적 없는 행동들은 일종의 반항이었다. 그러니 지난 7년은 적의로 가득한 세월이었다. 과거의 나에게서 카톡이 온다면 무슨 말이 쓰여 있을까? '내 그럴 줄 알았다. ㅋㅋㅋ' 낙원동의 밤이 되자 커트 보네거트의 묘비명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