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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진혁 Mar 18. 2024

있지, 예지

ITZY 예지 인터뷰

“세상에는 도망가도 된다는 사람과 도망가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후자에 가까워요.” 어느 때보다 선명한 있지(ITZY) 예지의 두 눈.



8개월 만의 복귀예요. 시간이 무척 빠르죠? 

시간이 너무 빨라요. 투어와 새 앨범 준비를 병행하며 바쁘게 지냈어요.스케줄도 소화하면서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 내다 보니 어느새 컴백 시기가 왔어요.


열심히 살았다는 뜻이겠죠. 새 앨범이 그 방증일 테고요. 트랙에 치열하게 고민한 시간 이 압축되어 있을 거라 봐요. <KILL MY DOUBT> 작업 과정에서 가졌던 의심과 고민은 무엇이었나요? 

<KILL MY DOUBT>는 저희의 다양한 이야기 중에서 의심에 초점을 맞춘 앨범이에요. 그동안 저희가 ‘I love myself’를 주제로 공감대를 끌어내 는 앨범을 작업해온 것과는 다르죠. 새 앨범을 기획하면서 대중에게 저희의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고민하면서 곡을 선별했는데, 기대와 의심이 교차하는 과정이었어요. 새 앨범은 의심을 주제로 한 다양한 이야기를 신중하게 골라 구성 했어요. 이번 앨범으로 ‘있지’의 색이 조금 더 뚜렷해졌으면 해요.


타이틀곡 ‘CAKE’는 프로듀서 블랙아이드필승이 작곡했어요. 블랙아이드필승과 처음 호흡을 맞췄다고요?

저는 뭐든 의심부터 하고 보는 성격이에요. 타이틀곡 고를 때도 그랬어요. 노래가 너무 좋아서 의구심이 생기기도 했고요. 녹음 과정은 아주 좋았어요. 작곡가님과 시너지가 생겼어요. 작곡가님이 저희에게 맞춰 섬세하게 디렉팅을, 해주셔서 결과적으로 있지스러운 곡이 탄생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CAKE’는 여름을 닮은 밝은 느낌과 귀여움, 힙함이 두루 녹아 있는 곡이에요.


아티스트에게 곡 선택의 중요한 기준은 끌림이겠죠. ‘CAKE’에선 어떤 부분이 인상적이었나요? 

‘왕! 하고 먹어버려 다’라는 가사가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왕! 하고~’ 이런 말은 평소 잘 쓰지 않는 표현이라 처음에는 제가 지나치게 귀여운 척하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그런데 이 부분만 계속 머리에 맴도는 거예요. 듣다 보니 기억에 남는 부분이 되더라고요. 이 부분이 다른 사람들 머릿속에서도 맴돌 수 있겠다 싶고, 곡의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멤버들도 가사의 이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했고요. ‘왕’이라는 표현을 말로 직접 옮기면 좀 부끄러운데, 그래도 무대에선 표현하기 나름이니까. 멋있게 나오지 않을까요.


자기 확신이라는 것이 뜬구름 같아요. 자신을 믿고자 하는 의지일 뿐이니까요. 의심하는 자세는 중요해요. 때로는 의심이 발전의 동력이 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의심 많은 예지는 자신의 어떤 면을 의심하나요? 

동의해요. 저는 항상 모든 것을 의심하며 살아요. 이런 점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완벽하게 연습해도 완벽하다는 생각은 안 해요. 아직 부족하다고 의심하는 거죠. 목표를 설정하면 이룰 때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스스로를 잔인하게 채찍질하게 돼요. 의심은 제 성장의 원동력이에요. 더 나아지기 위해 항상 모든 순간을 의심하며 살아가요.


K-팝은 완벽한 퍼포먼스를 지향하잖아요. 매번 같은 움직임을 정교하리만치 똑같이 보여주는 것도 경이롭죠. 하지만 오랜 시간 공연하다 보면 무대에선 느슨하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다는 열망도 있지 않을까요?
완벽한 연습을 통해 퍼포먼스의 기본을 다진 다음에 자유롭게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본이 없으면 자유로운 표현이 자유롭지 않아 보이거든요. 실수처럼 보이죠. 그래서 무대를 준비할때는 기본을 완벽하게 다듬은 후에 표현을 추가해요. 지난 투어에서 솔로 무대를 선보였는데 보컬만 주어지고 무대는 알아서 자유롭게 만드는 거였어요. 노래를 가만히 서서 부르기는 아쉬워서 퍼포먼스를 하기로 했는데, 먼저 한 것은 노래 연습이었죠. 기본은 보컬이니까요. 충분한 보컬 연습 끝에 노래를 하면서 안정된 움직임으로 춤을 추니 동선을 넓게 쓸 수 있었어요. 이런 식으로 조금씩 요소를 추가하며 무대를 준비했어요.


여름 노래를 들고 컴백했어요. 예지에게 여름은 어떤 이미지인가요? 어떤 부분을 여름의 낭만이라 여기나요? 

연습생 시절부터 바쁘게 지냈어요. 여름을 즐기자는 생각을 할 겨를이 많지 않았죠. 여름의 즐거움이 크게 기억에 남지 않는 걸 보면 여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 같아요. 일하면서 즐기긴 했어요. 화보 촬영을 위해 처음 제주도도 가봤고요.여름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오면 하와이에 가보고 싶어요. 제주도를 데뷔하고 처음 가보다니 충격인데요? 첫 해외여행도 데뷔 후였고, 그때도 일 때문에 갔어요. 꿈을 이루기 위해 계속 무언가를 해왔어요. 듣고 보니 저도 좀 충격이네요. 여유를 갖고 살 수도 있었던 것 같은데, 짧은 여행조차 다니지 않은 게 놀라워요. 지금이라도 여유를 가지고 여름을 즐길 방법을 찾아봐야겠어요.


달리 말하면 보통의 일상을 못 누릴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뜻이죠. 맞아요. 제 생활이 바쁘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많아요. 어떤 면에서는 조금 아쉽지만 지금의 일상에 만족해요. 바쁜 일상이 저에게는 축복이에요. 일하면서 얻는 성취감에 집중하고, 얻은 것에 감사해요.

데뷔 4년 차예요. 4년 전 가졌던 꿈과 기대는 지금도 유효한가요? 그때 저에게는 데뷔가 가장 큰 목표였어요. 먼 꿈도 중요하지만 눈앞의 목표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어요. 막상 데뷔해보니까 많은 분이 아무것도 없던 저희를 기다려주셔서 깊이 감동했어요. 그래서 데뷔 무대를 잊지 못해요. 그 무대를 계기로 더 큰 꿈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더 많은 분과 함께 무대를 즐기고 싶다거나 더 좋은 노래와 퍼포먼스로 많은 분에게 힘이 되어드리고 싶다는 마음이요. 더 좋은 모습으로 더 큰 무대에 서고 싶어요. 그 꿈을 멤버들과 함께 이루고 싶어요. 


이제는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하면서 객석이 보일 것 같아요. 무대에서 객석을 바라볼 때 어떤 감정이 드나요?

가끔은제가 무대에 있다는 사실이 신기해요. 상상한 것이 현실로 펼쳐지니까요. 그럴 때면 가슴 벅찬 감동을 느껴요. 꿈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해요. 그리고 무대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아요. 특히 코로나19 이후 팬들이 얼마나 저희를 기다려줬는지 깨달았어요. 팬들을 직접 만났을 때는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죄송한 마음을 느꼈어요. 팬들과 더 가까워진 것 같고,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강해졌어요. 계속 음악을 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팬들의 사랑에 책임감을 갖는군요. 

네, 진짜 책임감을 많이 느껴요.


해외 팬들도 대단해요. K-팝의 잔물결까지 다 꿰고 있어요. 외부에서 보면 K-팝 신은 급류처럼 거세 보여요. 매주 새로운 아티스트가 데뷔하거나 컴백하고, 음악 트렌드도 변화무쌍하죠. 이 신의 중심에서 직접 플레이하는 아티스트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상당할 거예요.

 저희는 스스로 의심하는 경우가 많아요. 노래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고요. 우리가 열심히 만들고 ‘이 노래 참 좋다!’ 하고 생각해도, 대중의 생각은 다를 수 있죠. 그 반대로 ‘이 노래 좀 걱정되네?’ 싶었는데, 모두들 괜찮은 곡이라고 평가할 때도 있고요. 열심히 준비한 만큼 결과가 따라온다는 보장은 없어요. 결과는 꼭 노력에 비례하지 않고 운도 중요하다고 느껴요. 그리고 이런 상황이 더 열심히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요. K-팝 신에 아티스트는 많고, 저마다 개성도 다 달라요. 색깔이 같은 팀이 거의 없다고 생각해요. 다른 아티스트를 보며 배우는 점도 있지만 저희만의 색깔을 유지하며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고민을 하다 보면 결론은 ‘있지는 있지다’로 모여요. 이런 가치관이 작업에도 반영되고요. 이번 앨범도 주제처럼 저희는 의심을 깨고 다양한 모습으로 활동하고 싶다는 포부를 담았어요.


최선을 다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겠죠. 일이라는 게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좌절할 때도 있고. 그런 상황은 어떻게 극복해왔나요?

저는 제 일이 잘 맞는다고 느끼지만 모든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아요. 체력적으로 지치거나 답답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그건 일시적인 상황이에요. 좋은 결과물을 만들 때의 기쁨이 다 상쇄해요. 저는 저 자신을 늘 칭찬하고, 동기부여를 하고, 컨디션 관리를 엄격하게 해요. 예를 들어, 잠을 늦게 자서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그건 제 잘못이에요. 자신을 압박하며 일하는 건 힘들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기쁨과 행복이 더 커요. 무대, 화보,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각기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도 즐거움을 줘요. 결과물마다 느껴지는 감정도 다르고요. 일이 다양해서 지루한 줄 몰라요.


그런데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아티스트가 아닌 일반인 예지로서의 삶도 즐기고 있나요? 

저는 그냥 한 인간으로 존재하고 싶어요. 일과 삶 사이 의 경계를 명확히 나누지 않고, 온전한 나로서 존재할 때 안정감을 느껴요. 그래서 일할 때나 평소 생활할 때나 일관되게 행동하려 해요. 일만 하고 살아서 인간적인 면모가 부족하다 싶을 때도 있어요. 요리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드라마도 잘 안 보거든요. 결과물을 얻는 것을 좋아해 드라마를 보더라도 저에게 유익한 것을 봐요.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건 싫어요. 기계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런 제가 좋고 행복해요. 작업 결과물이 만족스러우면 기분 좋게 성장한 느낌이 들어요. 그게 동기부여가 돼요.


물 흘러가듯 사는 사람이 있고, 팽팽한 외줄을 타듯 사는 사람도 있어요. 예지처럼 야무진 사람은 후자에 가깝죠. 

제 삶이 외줄 타기 같다면 남들에게는 불안해 보일 수 있겠죠. 하지만 저는 이렇게 사는 데 익숙해요. 물론 때때로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느껴요. 예를 들면 다음 스케줄을 위해 밥을 빨리 먹는 편인데, 가끔은 천천히 식사를 즐기려고 노력해요. 밥을 30분 동안 먹는 팀원을 보면 저도 그런 여유를 갖고 싶거든요. 그럼 마음이 편안해질 테니까요. 여유를 갖자고 생각하다가도 일을 빨리빨리 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는 제 모습이 떠올라요. 그래서 한 번쯤은 누려보지 못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요.


자신을 몰아붙이고,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려면 믿는 구석이 있어야 하잖아요. 예지가 믿는 건 무엇이에요?

의심이나 불안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고민 없이는 발전도 없다고 봐요. 만족을 못 해서 완벽해지려 노력하는 건 아니에요. 작업이나 연습이 완벽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제가 지금 하는 활동을 보면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못 할 것 같은 일이 많아요. 그래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해내는 게 가장 중요해요.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며 긴장감을 유지해요. 무대에서 내려와서 혹은 시간이 지나서 아쉬운 점이 있을 수 있지만 최선을 다했다면 만족감을 느낄 수 있거든요. 최선을 다하면 후회도 적다는 것, 무슨 일이든 자신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노력하며 살고 있군요. 

이번 앨범 의 수 록곡 ‘Bet on Me’에서 ‘자신에게 베팅하라’는 메시지를 전했어요. 이 메시지는 모두가 공감하고, 많은 사람에게 힘이 되리라 생각해요. 세상에는 도망가도 된다는 사람과 도망가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후자에 가까워요. 한 번 포기하면 계속 포기하게 되거든요. 재도전하지 못할 거예요. 그래서 ‘나를 믿고, 나에게 베팅’하기로 했어요. 이런 마음가짐이 녹음할 때도 힘이 됐고요.


예지가 판단하는 좋은 음악이란 어떤 건가요? 

팬들이 좋아하는 음악이요. 팬들이 좋으면 저도 행복해요. 팬과 우리 노래를 들어주는 모든 사람들이 고마워요. 댓글로 달린 ‘노래 좋다’ 이런 간단한 피드백도 저에겐 소중하거든요.




- 마리끌레르, 2023년 9월호

https://www.marieclairekorea.com/celebrity/2023/09/ye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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