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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진혁 Apr 23. 2024

오묘한 조화

배우 박지환 인터뷰 

배우 박지환은 조화롭다. 카메라 앞에선 작고 부드러운 몸짓으로 유려한 형태를 만들고, 유머러스한 언어로 상대를 배려한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펼치는 연기는 상대와 얼마나 오묘한 조화를 이루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는 그가 찰나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그저 경쾌한 사람이라 강조했다.



포즈를 너무 잘 취해서 놀랐어요.

아니에요. 헤어와 메이크업해주신 실장님, 사진작가님이 다 만든 거라고 확신해요. 너무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흥행 또 흥행이에요. <범죄도시2>와 <우리들의 블루스> 반응이 상당히 뜨거워요.

딱 한 문장이에요. 정말 감사하다. 다시 물어도 정말 감사하다. 내일 다시 물어도 너무너무 감사하다. 1년 후 물어도 정말 감사했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어요.


출연한 작품들에는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반짝반짝 빛나요. 그 사이에서 존재감을 갖기란 어려울 거예요. 그럼에도 박지환은 뚜렷한 자취를 남기는 배우예요.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걸 알면 제가 로버트 드 니로나 알 파치노가 됐을 거예요.(웃음) 저는 그런 방법을 알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없어요. 촬영하는 순간이 제일 중요해요. 어떻게 하면 신나게 재밌게 놀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나를 통해 더 즐겁고 행복할 수 있을까? 그 생각만 해요. 영화를 시작했을 때인데요. 시나리오에선 제 캐릭터가 임팩트 있어 보였어요. 막상 영화를 보니까. 제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고, 매력도 없었어요. 왜 내 연기가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가를 고민했죠. 중고 휴대폰과 카메라 몇 개를 집에 설치해서 혼자 연기하는데, 너무 못하는 거예요. 카메라가 대체 뭔데 나를 안 받아주나. 고민하면서 집에서 막걸리를 마셨는데, 카메라에 매력적인 인물이 담긴 거예요. 어떤 한 패배자의 주정이었죠. 그때 눈치를 챘어요. 카메라는 요물이구나.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는 거죠. 하지만 아직 잘 몰라요. 그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제가 이해한 방식으로 일하고 있어요. 제 안에 써놓은 코멘트라고 해야 할까요? 제 연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설명할 수는 없어요.


사전에 작가나 연출자와 논의한다거나 레퍼런스를 찾는다는 등 안전한 대답을 할 줄 알았어요.

음, 제가 피아니스트라면 무대에서 연주를 하잖아요. 저는 믿어요. 반드시 무대에 오르는 날, 그러니까 촬영하는 그날만큼은 뭔가 다른 게 있어야 한다고요.


그게 뭐죠?

영감처럼 몸을 휘감는 무언가가 그날 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그냥 스크립트를 읽기만 하는 것밖에 더 될까요. 어떻게든 뭔가가 생동해서 상대와 감독과 보는 이로 하여금 또 다른 감각을 느끼도록 해야 그 장면이 살아 있다고 생각해요. 계획대로 진행되는 건 싫어요. 상대에 의해서 철저히 제 계획이 부서지면 좋겠어요.


최승자 시인을 좋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가요?

맞아요. 그분의 시에 빠진 것도 그런 맥락이었어요.


즉흥적으로 감정을 폭발시키려면 속에 맺힌 게 많아야 하지 않나요?

끊임없는 훈련과 불안정한 상황 속에 처해야 해요. 감사하게도 제 동료들이 매우 훌륭했어요. 저를 쉽사리 잘되게 만들어주지 않았고, 끝없이 노력하게 만들었어요. 끊임없이 질투하고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든 것들이 힘이 되지 않았을까요. 배우로선 죽는 날까지 불안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제가 시나리오를 해석할 때 갖는 마음은 캐릭터가 반성해서 좋은 인물로 연기하는 게 아니에요. 인간은 부조리하고 불합리하고 불안정한 게 맞다. 그걸 두려워할 게 아니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인간의 부조리한 본성을 깨달은 계기가 있었나요?

특별한 계기보다는 계속 생각했죠.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는데 20대 때 엄청난 산불이 발생했다는 해외 뉴스를 본 적이 있어요. 산불 원인이 번개였죠. 가만히 묵상해보니 저 거대한 산불은 현상이고, 오직 사람의 행동만이 사건인데 왜 저런 일들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생각, 인간의 완벽하지 않음에 대한 생각이었죠. 부조리하고 불안정하고 불안하기 때문에 사람 사이에선 드라마가 생겨나는 것 아니겠어요? 큰 비가 와서 계곡이 생기고 산이 깎이면 그건 현상이에요. 자연스러운 건 자연에만 있어요. 반면 사람은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잖아요. 그렇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드라마가 생기죠. 연기는 인간적으로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행동이 사건이 되지만 사건에 영향을 주는 건 현상이기도 해요. 사람은 현상 안에서 현상 때문에 사건을 저지르기도 하잖아요. 행동을 촉발시키는 건 현상이고, 현상은 자연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행동이 쌓여 현상이 되기도 해요.

연기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죠. 관계의 미학이라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순간은 행성의 충돌이기에 그 어떤 일이든 벌어져요. 그것을 좋게 받아들인다기보다는 그 현상을 인간적으로 해석하고 바라볼 때, 내가 보이고 네가 보이고 우리가 보이지 않을까요? 연기는 관계의 미학인 것 같아요. 혼자 있으면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지만, 옆에 누가 앉으면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거죠.


흥미로운 이론입니다.

열심히 제 생각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범죄도시2> 장이수에 대해서 여쭤보면, 변화가 많았죠. 머리가 길었고 상황도 바뀌었어요. 장이수의 달라진 마음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시도한 것이 있나요?

장이수를 어떤 식으로 연기할 거냐? 묻는다면 ‘즐겁고 경쾌한 리듬으로 연기할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표면적으로 그렇고. 마음속에 은밀하게 있었던 것은 오늘 처음 말씀드리는 거예요. 되게 궁금하죠? ‘유머를 넣을 건데 관객이 깊게 느끼지 않아도 돼. 하지만 산발하고 날아가는 유머를 넣지는 않겠어’라는 생각을 했어요. 절실해야만 보이는 코미디를 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왜냐면 단순히 상황을 치고 빠지는 유머를 구사하면 이야기가 쌓이지 않아요. 극 후반에 장이수는 마석도가 선택한 인물로 형사 역할을 대신해요. 어떻게 위트 있고 리듬을 잃지 않고 이 사람이 절실하지만 하나의 감정에 빠지지 않고 이것들을 얼룩지게 해서 가져갈 것인가 고민이 있었죠.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제 속에서 계속 채색해야 하는 몫이었죠. 저의 노력과 생각은 몰라줘도 돼요.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알게 모르게 이야기 속에 들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어도 어쩔 수 없고요.


처음 기획보다 인물이 훨씬 입체적으로 만들어지는군요.

그렇죠. 그게 배우의 몫이죠.


그런 연유로 배우님이 쟁쟁한 캐릭터들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갖는 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맞아요.


캐릭터를 만날 때 얼마나 절실한가요?
절실하면 걔가 절 우습게 봐요. 캐릭터가 있는 척하고 폼을 잡아요. 관심 없는 척하면 그제야 저한테 생각이 들어와요. 그 사이에서 잘 협상해서 결정 짓지는 않고요. 많은 영감과 생각을 작게 작게 그냥 조금씩 산뜻하게 가지고 가요. 그리고 촬영 때 확 흔들어버리는 거죠. 그러면 그날 나온 연기가 최상의 컷이에요. 저는 A컷, B컷, C컷이 없어요. 그 어떤 걸 써도 후회하지 않아요. 계획한 것보다 계획하지 못한 순간에 나오는 빛들이 훨씬 더 소중해요. 그런 걸 준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쉽게 설명을 못 드리겠다는 거예요.

배우님이 생각하는 좋은 장면은 연기 언어로만 표현할 수 있는 것 같네요.
맞아요. 그래서 일상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그래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요?
30대 초에 제주도 여행을 갔는데요. 그때 제 마음이 불같이 화가 나고 미운 거예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무엇을 해도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어요. 이런 감정을 친한 형에게 얘기했더니 차 키를 주면서 한라산 중산간 도로를 60km로 드라이브한 후 김영학 갤러리에서 사진을 보고 오라더군요. 결국 사진을 봤는데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사진에 담겨 있는 거예요. 이게 뭐지 싶었죠. 작가님 글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어요. ‘내가 사진에 담고 싶은 것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이다. 삽시간에 황홀경이 벌어졌다 흩어진다. 난 그걸 담고자 매일 거기서 사진을 찍는다’라는 내용이었어요.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연기에 담고 싶은 게 저런 거 아닐까? 저런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가끔 동료들에게 이 얘기를 해요. 큰 영감을 받은 곳은 그 순간과 그 사진, 글귀였다고요. 앞서 말했듯 카메라 앞에서의 연기는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 이들이 얼마나 오묘한 조화를 이루느냐라고 생각해요. 카메라는 관계가 조화를 이루는 순간을 담는 거라고 이해했어요. 인물이 서로 자연스럽게 상황을 이어가는 와중에 빛나는 무언가가 맺어지는 순간을 담는다고요. 그걸 말로 설명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A컷, B컷 없이 그냥 하자, 순간을 즐기자, 잘 안 나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무책임하게 촬영한다는 뜻은 아니고요.

연기라는 게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들리네요. 인물이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상태를 지켜보는 것은 우리가 자연 현상을 대하는 태도처럼 느껴집니다.
맞아요. 그런 게 담기길 원해요. 궁극적으로 그쪽으로 가고 싶어요. 또 다른 대단한 영감을 받아서 다른 생각을 갖기 전까지는 이렇게 연기하지 않을까 싶어요.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렇잖아요. 드러내고 싶은 발언이 있고, 그 발언이 고민 끝에 나온 사유의 결과물이라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요. 그것이 예술가의 습성이라면 배우님의 연기관도 같은 맥락인 것 같네요.

만약 제 고민의 결과물이 만들어졌다. 그러면 다음 날 부수고 싶어요. 없던 일로 하고 싶어요. 계속이요. 그런 자리에 앉아 있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생각의 결과물을 계속 던지는 거죠?

네, 맞아요. 저도 궁금해요. 연기는 제가 알고 하는 행위가 아니에요. 뭐가 나올지 저도 궁금하고 상대방이 제 연기를 읽어내길 바라고 또 주고받길 원해요.



사람들은 내 존재가, 그러니까 내 작업이 타인에게 인정받을 때 살아 있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배우님도 그런 편인가요?

그럴 때는 없어요. 잘했다고 하면 고맙죠. 그거 외에는 없어요. 스스로 뿌듯할 때는 좋은 생각이 찾아왔을 때. 내가 그동안 죽어 있지 않았구나. 그럼 그것들을 잘 준비해놓는 거죠. 또 언제 올지 모를 상황을 위해 준비해두는 편이에요.


그 준비들, 생각들은 어떻게 보관하나요?

메모해요. 제 노트를 보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있는데, 순간적으로 쓴 것도 있어요.


<우리들의 블루스> 정인권 캐릭터에 대해선 뭐라고 메모했어요?

(박지환은 가방에서 메모가 가득한 노트를 꺼내 보여주었다.) 이런 말 좋지 않아요? ‘음 이탈 감정, 이탈조차도 리듬으로 들어갈 수 있는 칼을 갖고 싶다.’ 말씀드린 A컷, B컷, C컷이 없는 상태에 대한 내용이에요. 그런 연기하고 싶어요. (노트를 한참이나 넘겼다.) 슬슬 인권에 대한 얘기가 나오네요. ‘자기 연민에 빠져 연기하지 말아라. 정인권이란 인물은 반대로 가는 인간이다.’ 이렇게 써 있네요.


이 메모들이야말로 보물이네요.

이런 노트가 한 50권 정도 있어요. 저에게는 금보다 귀하죠. 노희경 작가님이 해주신 말씀도 메모했어요.


노희경 작가님과 무슨 말씀을 나눴어요?

정말 개인과 개인이 나눈 이야기예요. 궁금하시면 나중에 제가 따로 꿈속에서 알려드릴게요.


부럽습니다. 저도 좋아하는 일을 하지만 이 정도로 일에 몰입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렇죠. 주위에서 뭐라 하겠죠. ‘너 그러려면 나가. 너 혼자 해.’(웃음) 근데 배우도 마찬가지예요. 개인 작업을 하면 좋아요.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고 싶은데, 영화는 함께하는 일이라 수많은 훈련과 과정 속에서 화합을 맞춰야 하거든요.


배우님이 연기를 대하는 태도는 책임감으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고 .

자기 깨달음.


맞아요.

그렇게 시작했어요. 사람이 궁금했어요.


처음 연극 무대에 올라갔을 때 기억하세요?

너무 신났어요. 막 춤추는 것처럼 놀았거든요. 엄청 혼났지만 전부 다 즐거웠어요. 솔직히 말하면 배고프고 힘들고 돈 없고 이런 게 힘들지 않았어요. 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 더 컸어요.


그래도 20대 때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잖아요. 미래나 생계에 대한 걱정이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포기해달라고 했어요. 나는 이렇게 살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고요.


결심이 완고했네요.

네 맞아요. 그렇다고 심각한 행동을 하진 않았어요. 그냥 즐겼어요. 오히려 사람들이 많이 응원해줬죠. 불안감에 대해 물어보셨는데 돈벌이를 위한 고생도 있고 사회생활 하면서 겪는 고생도 있어요. 연기나 다른 작업을 하려면 사람이 즐겁기만 해서는 결과물이 나오진 않잖아요. 고생한 흔적이 작업에 영향을 주기도 해요. 그 모든 게 살이 되고 피가 돼요. 그리고 전 연기가 아니면 행복을 느낄 수 없었어요. 그러니 어떡하겠어요. 그냥 해야지.


고생이 자양분이 되었다는 뜻이군요. 그럼 영화 시작하고는 경제 상황이 나아졌나요?

전혀 나아지지 않고 여전히 막노동하고 단기 알바했어요. 기왕 아르바이트할 거 도움되는 일을 하자는 생각이 있었죠. 제가 판소리를 좋아하니까 김덕수 사물놀이 무대 세팅을 1년 동안 했어요. 전국 투어 알바를 하다가 갑자기 음악 관련 알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클래식 공연장 음향 설치 일도 했어요. 그때 클래식에 빠졌어요.


한순간도 그냥 산 적 없는 것 같네요.

아니죠. 그냥 살았는데 어쩌다 그렇게 된 거죠.


알바하며 기술도 많이 배웠어요?

기술보다는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태도를 갖게 된 것 같아요.


다시 <우리들의 블루스>로 돌아가면, 제주도 방언이 인상적이에요. 배우기가 싶지 않았겠어요.

사투리 연기를 많이 하다 보니까 저만의 방법이 생긴 건 사실이에요. 지역 방송이나 지역 유튜브를 24시간 내내 들어요. 그 리듬을 완벽하게 체득할 수는 없죠. 거기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어떻게 그 정서를 이해하겠어요. 다만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들어요.


노희경 작가님과 처음 작업하신 소감은요?

작가님 글 엄청 좋아하고 사모했어요. 대본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너무 좋았어요. 영광이죠. ‘다시 못 만나도 좋다. 행복하다. 원 없다.’ 이런 마음으로 마음껏 놀자는 생각을 했어요.


배우들은 다 노희경 작가 대본을 좋아해요. 왜 그럴까요?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대본을 읽는 게 놀라운 경험이에요. 읽기만 해도 연기가 되거든요.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읽기만 해도 연기가 돼요. 그러니까 신비로운 대본이죠. 대본에 시, 산문, 수필, 소설 다 들어 있어요.


요즘도 글 쓰세요?

아니요. 지금은 제 노트에 정리하는 메모 외에는 쓰지 않아요. 가끔 어떤 사물에 대해 슥 쓰기는 해요. 예를 들어 나무, 강, 자연 같은 것들이요. 그런 것에 대한 생각을 적기는 해요.


생각을 글로 옮길 때 중요한 건 관점이겠죠.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런 관점은 삶에 대한 태도일 수도 있고, 신념이나 이념일 수도 있겠죠. 어떤 관점으로 글을 쓰세요? 자주 등장하는 화두 같은 게 있다면요?

화두는 너무 거창하고요. 제가 쓴 메모를 보면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염원이 조금씩 있는 것 같아요. 조금 평온해지고 싶어요. 제가 너무 뜨겁고 복잡하니까 먼 미래에는 혼자 있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요. 들뜨지 않음에 대해, 평온함, 조용함과 차분함에 대해서, 그리고 대단한 큰 무브먼트조차 멀리서 바라보는 편안함에 대한 내용이 많이 있어요.


본인이 연기한 캐릭터 중에서 가장 애정하는 인물은요?

솔직히 이야기하면 모든 인물이요. 소화하지 못했던 인물까지도 사랑합니다.


하나를 꼽을 수는 없고요?

제 마음속에 순위는 있는데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죠.


연기를 20년 동안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요?

알 수 있으면 대답하겠는데, 진짜 일을 사랑하고 미치도록 좋아해서 한 거 아닐까요? 그거 외에는 답이 없어요.


배우님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요. 예를 들면 쉴 때 즐기는 취미 생활 같은 거요.

강원도 영월에 있는 제 오두막에 가요. 정원 가꾸기, 마당 만들기에 도전하고 있어요.


자주 보는 유튜브 콘텐츠는요?

‘한국 기행’이에요. 전국 농촌 산골에 스며들어 조용히 사시는 분들을 찾아가 인터뷰하고,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에요. 때로는 좋은 정원과 예쁜 마당을 꾸미고 사시는 분들도 찾아가죠. 일종의 기행문이죠. ‘한국 기행’은 좋아하는 건 1백 번을 볼 정도로 애청해요.


저도 꼭 찾아 볼게요.

한 번 보면 못 헤어나와요. 기어코 시골에 집을 마련하고 싶어질 겁니다.(웃음)


마지막 질문이에요. 지금 본인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회사 동료들이요.


이미 있잖아요.

저라는 배우를··· 좀 생뚱맞은 말인데 아름다운 말이기도 해요. 제 동료들. 그러니까 제 일을 함께 만들고 관여하고 찾아주고 옆에서 보듬어주는 사람들이죠. 회사 동료들은 저라는 땅을 가꿔주는 가드너예요. 매일 진심으로 고맙다고 표현을 많이 해요. “고마워 내가 뭐라고 이렇게 좋은 옷도 입어보고 이런 사진도 찍어보고 하겠니. 고맙다 다 덕분이다”라고 말해요. 저를 가드닝해주고 꾸며주고 잘 살 수 있게 옆에서 코치해줘요. 제가 그런 걸 잘 모르니까. 이 친구들도 받아들였어요. 그러니까 저를 불행하지 않게 잘되게끔 만들어줘요. 감사하죠. 진심이에요.


- 아레나 옴므 플러스, 2022년 7월호에 기고한 글. 

https://www.arenakorea.com/arena/article/51272?smshare=url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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