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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진혁 Apr 09. 2024

기계식 시계와 빈티지 자동차 사이

정희경 대표 인터뷰

시계 이야기를 들려주는 정희경 대표. 20년 넘게 시계에 관한 글을 쓰고, 가르쳐 온 그가 기계식 시계와 빈티지 재규어의 닮은 듯 다른 매력을 말한다.



작은 태엽들이 정교하게 맞물리며 움직이는 기계식 시계의 아름다움은, 엔진과 기계 부품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며 큰 힘을 발생시키는 빈티지 자동차의 매력과 여러모로 닮았다. 사실 기계식 시계와 빈티지 자동차는 공통점이 많다. 공학과 예술의 결합물이라는 것, 역사가 담긴 디자인에 문화적으로 의미가 있어 소장 가치가 있다는 것, 그리고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다는 점 등등 꼽자면 지면이 부족할 정도다. 정희경 대표는 기계식 시계와 빈티지 자동차를 한 줄기 흐름으로 보았다. “현재 기계식 시계는 없어도 그만인 물건입니다. 전자식 시계에 비해 정확하지도 않고 가격은 매우 비쌉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기계식 시계에 매력을 느끼고 고가임에도 기꺼이 비용을 지불합니다. 전기차로 옮겨 가는 시대에는 전자식 편의가 더 중요해지고  기계식 구조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어집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옛날 차를 찾는 사람은 더 늘어나고 있어요.”


정 대표는 시계에 대해 글을 쓴다. 2011년 <시계이야기>를 시작으로, 2015년 <시계매뉴얼>, 최근에는 <시계지식탐구> 시리즈 책을 발간했다. 이 외에도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 심사위원으로 활동했고, 스위스 고급시계재단에서 시계업계 사람들에게 시계 전문 지식을 가르치고, 교육용 프로그램을 만들어 한국 직원에게 시계 지식을 전한다. 잡지사 기자 출신으로 다양한 영역을 꿰뚫고 글로 옮기는 일을 해온 정 대표는 기계식 시계를 닮은 차로 지프 랭글러 루비콘을 꼽았다. 전자장치가 적고 오프로드 주행에는 기계식 구조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오프로드 동호회에 참여해 활동하기도 했고, 캠핑도 자주 다니며 특별한 추억을 쌓았다. 하지만 사고로 폐차해야 했고, 이후 코로나 시기에는 차 없이 지냈다. 그러다 한 지인이 2005년형 재규어 XJ8L을 처분한다는 소식을 듣고, 차를 인수했다. 인수 조건은 재규어 XJ8L을 다시 팔 때 꼭 전 주인에게 고지하는 것. 파는 사람도 다시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모델이라는 데는 기자와 사진가 모두 동의했다. “중고차 구입은 처음이었어요. 자동차에 취미가 있으면 서브 카로 구매했겠지만 메인 카로는 이례적이죠. 애들이 크니까 오히려 차 쓸 일이 적어져서 임시로 사용해보자고 구매했어요.”


바람이 빚은 듯한 유려한 곡선. 예전 재규어는 부푼 근육처럼 단단하고 아름다운 선으로 유명하다. 2005년형 재규어 XJ8L은 1세대 재규어 XJ의 유산이 고스란히 박제된 4세대 모델이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기함인 만큼 호화로운 기능이 적용됐다. 에어서스펜션은 속도나 하중에 따라 자동으로 차고가 조절되는 부드러운 승차감을 전하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18년 전에는 아주 비싼 옵션이었다. “2005년 당시 1억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된 차예요. 영국대사관에서 근무하신 분이 대사님도 이 차를 탔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최고 사양을 내장한 모델이에요.” 앞 좌석 헤드레스트에는 DMB를 장착했고, 창문마다 햇빛 가림막이 있다. 3500cc 엔진에서 발휘되는 강력한 힘과 부드러움은 오프로더를 운전할 때와는 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취향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희소한 물건은 대화의 물꼬를 트는 법. 정 대표는  재규어를 구입한 이후로 자동차를 좋아하는 지인들과 나눌 이야깃거리가 늘었고, 그의 차를 구입하고자 줄 선 사람만 벌써 4명이다. 정 대표의 자동차 취향은 일단 디자인이다. 차를 타러 갈 때 모양이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것. 색상도 흔한 무채색은 불호였다. 주행은 부드러운 감각을 선호하는데, 이는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고 한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애들이 좋아하는 작고 귀여운 차를 선호했다면, 애들이 한창 클 때는 SUV, 지금은 편안한 세단이 좋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장성해 태우고 다닐 일이 적으니, 다음 차는 날렵한 스포츠카가 될 것이라 귀띔했다.


정 대표는 유명해지고 싶다거나, 큰 성공이나 부를 거두고 싶은 마음은 딱히 없었다. 작은 목표를 이뤄가며 살아왔다. 2000년대 초반 영국에서 살다 귀국한 이후 살고 싶을 곳을 경험하며 살아가자 생각했는데, 출장으로 해외 여러 곳을 다니면서 얼추 소원을 이뤘다. 2010년에는 회사를 관두고 출퇴근 안 하는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온라인 플랫폼 일을 하며 그 바람도 이뤘다. 2015년부터는 한 달에 10일 일하고 20일은 자기계발과 노는(?) 삶을 꿈꿨는데, 그것도 어느 정도 이루었다. 내년이면 정 대표의 두 아이는 모두 성인이 된다. 이제는 온전히 자유로울 삶을 기대하며, 나이 들어도 계속할 수 있는 일을 구상하고 있다. 무엇이 될지 알 순 없지만 그의 또렷한 취향과 날카로운 통찰이 깃든 것이리라 추측할 따름이다.   


- <더네이버> 2023년 9월호에 기고한 글

http://www.theneighbor.co.kr/neighbor/view.asp?no=10062&pTyp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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