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 Evans, My foolish heart
‘은정님, 혹시 한국 언제 오세요?’
같이 예술제본을 배우고 있는 친구가 톡을 보내왔습니다. 돌아갈 시간이 다가옵니다. 네, 뉴욕에 갔었어요. 코로나 끝난 지도 한참 됐는데 뉴욕 살고 있는 동생을 통 보질 못해서요. 걱정 많은 엄마가 먼저 훌쩍 비행기 티켓을 끊으시기에 도서관 일도 그만뒀겠다 나도 가봐야지 하며 떠났답니다. 전 엄마가 제 책을 읽으시고 마음이 동해 가신 걸까 싶어 내심 기뻤어요. 이것이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선한 영향력’인가 하고요. 하지만 엄마는 책이 나오기도 전에 출발하셨어요. 글 쓸 때 몇 꼭지 읽어 보시긴 했지만, 완성된 책을 읽을 기회는 없었죠. 저는 책을 싸 들고 뉴욕으로 날아가서 직접 드리기로 했어요. 뭔가 멋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런 정성을 보면 엄마도 제 책을 친구분께 선물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제가 끝마친 글에서처럼 온화하고 다정한 일상을 꿈꾸었어요.
그런데 웬걸요. 동생과 저는 어렸을 때부터 말다툼이 잦았습니다. 제가 결혼하고 동생이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난 이후로 둘이 함께였던 적이 없었죠. 다시 만나니 별수 있나요. 엄마는 언제나처럼 싸우거나 큰소리 나는 상황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동생도 엄마처럼 식당에서 목소리가 높아지려 하면 소리부터 줄이라 그러더군요. 그래도 엄마는 최선을 다해서 제 책을 읽으셨어요. 다 읽고 나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외할머니댁 사람들한텐 못 보이겠네. 친구들은 다 알고 있으니 선물해야지. 처음 쓴 글치곤 잘 썼어. 수고했네.”
미국에 오기 전 엄마와 함께 엄마의 고향 해남에 함께 갔었죠. 그곳엔 외증조할아버지께서 만들어 놓아두신 외할아버지 산소가 있었어요. 엄마는 죽기 전에 그곳에 계신 분을 화장해 보내드리려 합니다. 70년 넘게 들추지 않은 이야기였지요. 압니다. 동생이 넌지시 일러줍니다, 엄마가 그 부분을 불편해한다고. 한국에 있던 남동생도 그럽니다. “난 못 읽겠다. 너 아는 거 많은 거 알지.” 우리 삼 형제는 이런 식입니다. 외국에서 자란 교포도 아닌데 서로 '너' 아니면 이름을 부를 때가 많습니다. 서로에게 세상 냉정하죠. 다 제 업이다 싶어요. 제가 좀 맏이답지 못했으니까요. 저는 진정성 있게 말하려 애를 썼는데 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결국 모든 게 픽션인 거 있죠. 다큐처럼 상황을 그대로 보일 수 없으니 나름 구성을 한 거니까요. 따지고 보면 사서자격증을 땄을 뿐 딱 사서라고는 할 수 없는데 사서라고 홍보가 되어서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어요. 졸업생이 책을 썼다고 과 소식지에 실어 주기도 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게 쑥스럽기도 하고 말입니다. 이럴 땐 지레 잡힌 손을 놓고 숨기 빠빴는데 그렇게 못하니 땀이 나고요. 제 딴엔 정말 자신에게 충실하려 썼을 뿐인데 동생에겐 허세로 읽히니 당혹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었어요. 일단 짐을 챙겨 보기로 했습니다. 자꾸 뭘 살까 봐서 작은 가방을 가져왔었거든요. 그래도 짐은 늘어서 버리고 챙겨야 할걸 가늠해 봐야 했어요. 엄마는 옆에서 심란한 표정으로 바지를 꼼꼼하게 개서 주셨습니다. 그런데 전 그 모습이 좀 짜증이 났습니다. 그냥 놔두라고 했습니다. 심각한 지경이 아니라면 그냥 두라고. 남편이 정성스레 챙겨줘 잘 때 잘 쓴 에어쿠션도 접었습니다. 쿠션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납니다. 남지 않은 뉴욕에서 일정처럼 그저 귀국을 준비하는 하루처럼 벌써부터 생기는 그리움처럼 바람이 빠져나갑니다. 책을 쓰며 제게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언제 있었냐는 듯 조각조각 찢겨 나가는 것 같습니다. 들어주는 이 없는 말을 그렇게 억지로 억지로 하고 싶어서 내가 원하는 말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말만 나를 도와줄 말만 그렇게 열심히 찾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요. 그랬긴 했어도, 그냥 두기로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떡볶이를 만들었습니다. 동생은 좀 달다고 말했습니다. 윤도 좀 나고 졸이려고 넣은 꿀 때문이었죠. 과하게 느껴진다면 떡볶이 만들면서 혹시나 맛이 안 날까 불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둘러댔습니다. 동생은 알아듣고 떡볶이를 맛있게 먹어줍니다. 내 글이 그렇다 싶어 속으로 웃었습니다.
제겐 딸로서 언니 누나로서 아내 며느리로서 엄마로서의 가족이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인데 말입니다. 작가인 딸, 형제, 며느리, 아내, 엄마는 또 다른 사람인 것만 같습니다. 지지고 볶고 싸우고 하더라도 좀 가까운데 들 살았으면. 전 뉴욕에서 그 높은 펜트하우스에 살고 그 높은 아파트를 지을 만큼 돈이 많은 사람들이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기했습니다. 뉴욕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 삶 속에 잠시 머물다가는 나 같은 사람의 삶은 또 뭘까 궁금해졌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시간은 흘렀습니다. 한 달 동안 제가 품었던 마음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요? 제 속엔 여전히 이야기가 생겨나고 있을까요? 한국으로 돌아가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언제 한국에 돌아오느냐 묻던 친구는 제게 그랬습니다. ‘더 나아지기까지의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요. 출판사 사장님 말씀대로 엄마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서 벗어나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열심히 써야 글이 는다지요. 전 글을 빨리 많이 쓸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니, 빌 에반스가 연주하는 'My foolish heart(어리석은 마음)' 속도로 천천히 그렇지만 멈추지 않고 가봐야 하겠습니다.
https://youtu.be/a2LFVWBmoiw?si=VFQQFN66bNhNB1W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