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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dsbos Feb 23. 2021

레즈비언, 연애하지 않아도 괜찮아 #1

비연애가 더 재밌는데요?

  사람들은 흔히 레즈비언이라면 당연히 연애를 하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여자와 사귈 생각이 없다거나, 연애 감정을 느껴본 적이 딱히 없다고 하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 자체를 의심받기 일쑤다. 그러나 여기, 연애하지 않으면서도 여자들과 애정을 주고받고, 다양한 관계의 즐거움을 누리고, 여성 연대를 이어가는 “비연애비언”들이 있다.




비연애가 더 재밌는데요?ㅣ칼 


| 레즈비언이지만 연애를 하지 않는다던데?

  연애를 하지 않을 뿐 늘 여자들과 어울린다. 여자랑 일하고, 노는 게 즐겁다. 그간 많은 여성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가깝게 지내며 오랜 시간을 보내왔지만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별로 없었다. 


| 비연애비언으로서 억울한 경험이 있다고?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연애할 마음이 있냐고 묻기에 “나는 연애할 생각이 없다”라고 답한 적이 있다. 그러자 상대가 “그게 무슨 레즈비언이냐”라고 되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자와 연애를 하고 있거나, 연애할 의사가 있어야만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나처럼 연애에 무관심한 레즈비언도 있다. 실제로 내 주위에는 비연애를 지향하거나, 연애에 회의적인 레즈비언이 아주 많다. 


| 지금과 같은 입장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다면?

  ‘연애의 특별함’이 다른 관계에 비해 너무 과장되어 선전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우정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오직 연애에서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연애가 아닌 다른 형태의 만남으로도 충분히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주위에서 연애하는 사람을 보면 어떤가?

  예전부터 로맨스 자체가 사회에서 만들어진 허상처럼 느껴졌다. 지금도 연애와 관련된 컨텐츠나 주변인들의 경험담은 나와 전혀 관계 없는 세상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고 연애에 딱히 흥미가 가지 않는다. 이 사회가 자꾸만 나를 이성애 제도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로맨스에 거부감이 쌓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여남 간의 연애와 여성 간 연애에 차이가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로맨스의 의미가 실제보다 과장되거나 왜곡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워하는 입장이다. 


| 어떤 관계를 지향하는지 궁금하다.

  건강한 관계란 무엇인지 늘 고민하고 있다. 가까이에 있는 여성들과 교류하면서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지나친 부담감을 주지는 않는지 되돌아보려고 한다. 동시에 다른 여성과의 관계를 되도록 정의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친구’, ‘특별한 친구’, ‘그냥 지인’, ‘아주 사랑하는 친구’ 등으로 관계를 분류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다른 여성과 맺는 관계를 한 단어로 설명해버리는 순간 관계의 역동성이나 다채로움이 훼손되는 것 같다. 


| 가장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웃음). 여자랑 노는 건 굉장히 재밌는 일이지만 ‘여자들’과 노는 게 더 재밌다. 일대일 관계보다 집단 속에서 다른 여성들과 어울리고 친밀함을 느끼는 게 익숙하다.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은 감정이 생길 때도 특정한 사람을 떠올리기보다는 친구들이 여럿 모여있을 때 털어놓게 된다. 


| 소감이 있다면?

  나처럼 연애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주변 여자들이 레즈비언으로서의 경험이 분명히 있음에도 섹스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에이섹슈얼로 정체화하거나, 연애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는 이유로 에이로맨틱으로 정체화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그러나 이들이 연애가 아닌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여자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레즈비언이라는 명칭에서 오는 거리감을 좁혀갈 수 있을 것이다. 유독 레즈비언이 다른 정체성에 비해 장벽이 높은데, 앞으로 나와 같은 비연애비언들이 스스로를 레즈비언이라고 부르는 것을 망설이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날이 오면 좋겠다.




에디터 | 올리브

디자인 | 자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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