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악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악은 언제 시작되는가.


우리는 보통 악이 분명한 모습으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탐욕이나 거짓, 폭력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사막 교부 포이멘 (Poemen the Great)은 악의 시작을 전혀 다른 곳에서 찾았다. 악의 시작은 자신이 의롭다고 여기는 오만한 방심에서 비롯된다. 이 말은 인간의 죄가 단순히 도덕적 실패에서 시작되지 않는다는 통찰을 담고 있다. 오히려 더 위험한 지점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확신이다.


성경 속에서도 이 긴장은 반복해서 드러난다. 예수께서 가장 강하게 경고하신 대상은 사회적으로 명백한 죄인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들이 하나님 편에 서 있다고 확신했던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특히 누가복음 18장의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는 이 역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바리새인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기도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습니다." 그의 삶은 실제로 도덕적으로 정돈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는 금식했고, 십일조를 했으며,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바리새인이 아니라 가슴을 치며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말하던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고 돌아갔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문제는 도덕이 아니라 의로움에 대한 자기 확신이다. 인간이 스스로 의롭다고 느끼는 순간, 마음은 미묘하게 변한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시선이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을 향하게 된다. 신앙은 더 이상 회개의 길이 아니라 판단의 기준이 된다. 그렇게 해서 종교는 하나님을 향한 겸손이 아니라 자기 정당화의 구조로 변하기 시작한다.


초기 사막 교부들이 끊임없이 강조했던 영적 훈련은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영성의 핵심은 어떤 특별한 능력이나 도덕적 완성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 마음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경계심이었다.

사막의 수도자들은 종종 이런 말을 남겼다. “자신의 죄를 보는 사람은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보다 크다.” 이 말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자기 의로움 속에 잠들어 버리는 존재인지를 알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영적 전통에서 겸손이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영혼을 지키는 경계선으로 이해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악해질 때보다 의로워질 때 더 위험해질 수 있다. 왜냐하면 죄인은 자신을 의심하지만, 의인은 자신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음의 중심에는 언제나 같은 기도가 놓여 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이 기도는 도덕적 자기 비하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서 있는 가장 정직한 자리다. 그 자리에 서 있을 때만 사람은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대신 함께 긍휼을 구하는 존재로 남을 수 있다.


어쩌면 악은 거대한 범죄의 순간에 시작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악은 아주 조용히 시작된다. 자신이 이미 의롭다고 믿는 마음,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을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고 느끼는 그 고요한 확신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