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레네 사람 시몬 vs 아리마대 요셉" - 행동으로 드러난 믿음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한다. 믿음은 어느 날 갑자기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확신이 생기고, 흔들림이 사라지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행동하게 되는 상태. 그래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마음이 준비되면 하겠다.” “확신이 생기면 움직이겠다.”
하지만 성경 속 두 사람은 이 생각을 완전히 뒤집는다. 구레네 사람 시몬과 아리마대 사람 요셉. 이 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같은 이야기 안에 등장한다. 시몬은 원해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아니다. 그는 그저 지나가던 사람이었고, 갑자기 붙잡혀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된다. 준비도 없었고, 마음의 결단도 없었고, 믿음이라고 부를 만한 상태도 아니었다. 그저 상황에 밀려 그 자리에 서게 된 사람이다. 반면 요셉은 다르다. 그는 예수의 제자였고,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 스스로 나아간다. 빌라도에게 가서 시신을 요청하고, 자신의 새 무덤을 내어준다. 이건 단순한 행동이 아니다. 자신의 위치와 평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선택이었다.
이 둘을 보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긴다. 누가 더 믿음이 좋은 사람인가. 하지만 성경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를 다른 질문으로 이끈다. “그들은 무엇을 했는가” 시몬은 억지로였지만 결국 십자가를 짊어졌다. 요셉은 자발적으로 죽은 예수를 위해 움직였다. 출발은 달랐지만 둘 다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행동은 그들의 마음 상태보다 더 분명하게 그들을 드러낸다.
우리는 종종 마음이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몬을 보면 알게 된다. 마음이 준비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요셉을 보면 알게 된다. 준비된 마음은 결국 행동으로 나아간다는 것.
믿음은 완성된 상태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불완전한 상태에서 시작된다.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마음이 따라오지 않는 상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선택해 보는 것. 그게 시작이다. 믿음은 듣는 것에서 시작된다. 어떤 기준을 계속 접하고, 어떤 방향을 계속 생각하다 보면 처음에는 낯설던 기준이 점점 익숙해진다. 그리고 그 익숙함은 작은 선택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 선택이 반복되면 경험이 쌓이고, 경험이 쌓이면 마음이 따라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억지였던 선택이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결국에는 “이게 맞다”는 확신으로 바뀐다.
그래서 중요한 건 “지금 나는 얼마나 믿고 있는가”가 아니라 “지금 나는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가”다. 시몬처럼 시작해도 괜찮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괜찮다. 요셉처럼 결단할 수 있다면 더 좋지만, 그게 아니어도 시작은 가능하다. 믿음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완벽한 마음이 생길 때까지 멈춰 있는 것도 아니다. 작은 선택을 통해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선택 앞에 서 있다. 두려움으로 움직일 것인가,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가. 그 작은 선택들이 쌓여 결국 한 사람의 방향을 만든다. 구레네 사람 시몬과 아리마대 사람 요셉. 서로 다른 시작이었지만 같은 방향으로 이어진 두 사람처럼, 우리의 시작이 어떠하든 중요한 것은 지금의 선택이다. 믿음은 느낌이 아니라 방향이고, 그 방향은 오늘의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그날, 사람들은 같은 사건을 마주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믿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다음 글에서는, '같은 무덤, 다른 천사이야기"를 이어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