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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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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파규동 Sep 19. 2019

가지 말아요, 내 곁에 있어요

2019 추석특집 아이돌스타 선수권대회

 이번 달 주제를 ‘아이돌스타 선수권대회’(이하 ‘아육대’)로 잡을 때 까지만 하더라도, 소위 말하는 ‘매운맛’ 리뷰를 선보일 예정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10주년에 대한 기대보다 그동안 드러났던 ‘아육대’의 문제를 더 크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이것은 비단 저만의 문제의식은 아닐 것 같습니다. 당장 나무위키의 ‘아육대’ 문서만 들어가더라도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거든요.


ᅵ ‘아육대’의 인플루언스가 소진되다

 제가 취준생이라는 특수한 신분으로 이번 연휴를 맞이한 탓에, 장장 6시간에 달하는 ‘아육대’를 본방송으로 보지는 못했습니다. 이에 콘텐츠를 확인하기 전 시청률을 먼저 보고 말았는데요. 저의 우려를 반영하듯 1화 (9.12 방송분) 5.2%, 2화 (9.13 방송분) 4.5%의 저조한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방송 초기 시청률 10%는 훌쩍훌쩍 넘기던 것을 생각해보면 초라한 성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육대'는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그렇게 저는 더없이 낮은 기대를 가지고 야심한 밤에 맥주 한 병을 홀짝이며 다시보기를 클릭했습니다. 여기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서 ‘너무 재밌었던 나머지 6시간 방송을 보느라 날밤을 홀딱 새버렸습니다!’ 라고 결론을 내면 좋았겠죠? 그러나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15초 넘기기 기능을 적극 사용해 2시간으로 방송을 압축해버리고 말았거든요.


ᅵ ‘아육대’만 보면 마음이 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육대’에 애틋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중소 아이돌들에게 방송노출의 기회를 주는 ‘아육대’가 여러모로 제가 살고있는 아파트 같았달까요. 낡은 아파트이지만 열심히 페인트칠을 해서 외관만은 멋들어지게 보이려는 모습이 그렇기도 했고, 그 안에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터전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그렇기도 했습니다.


 10주년을 맞은 ‘아육대’는 절치부심하여 새 단장을 한 모습이었습니다. 인기종목이었던 리듬체조가 폐지되었지만, 그 자리를 메꿀 투구/e-스포츠/승마 종목이 신설되었고, 씨름 종목이 부활했습니다. 특히 ‘모바일 배틀그라운드’를 개인전, 단체전으로 진행한 e- 스포츠 종목에서는, 변화를 꾀하는 MBC의 열망이 보였습니다. 비단 공영방송에 ‘게임’이 전면에 등장했다는 것보다도, KT와 삼성으로부터 직접 후원을 받아 코너를 진행하고, 게임 플레이 시 사용되는 용어들이 방송에 그대로 사용되었다는 점이 새로웠습니다.

2019 추석 ‘아육대’에는 ‘e-스포츠’ 종목이 신설됐다


ᅵ ‘아육대’만 탓할 수는 없다: 아이돌 산업 자체의 위기

 그러나 제가 좀 더 마음이 쓰였던 부분은 ‘아육대’에 참가하는 아이돌 가수들의 간절하고 열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인지도를 높여보기 위한 중소 아이돌들의 고군분투가 눈에 선했기 때문입니다.


 방탄소년단의 글로벌한 성공으로 인해, 최근 K-POP은 전에 없는 인지도 상승 효과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제 K-POP은 서구권에서도 더이상 서브컬쳐라고 치부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죠. 그러나 이렇듯 화려한 외향과는 달리, 아이돌 산업 전반은 크게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흔히 말하는 엔터테인먼트 3사에서도 눈에 띄는 거물급 신인 그룹이 나오지 않고 있고 (아니면 회사 자체가 휘청거린다던지), 중소기획사들은 아예 제작 역량 자체를 상실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음악소비 및 노출방식의 변화가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한동안 음원 소비는 실시간 차트 위주로 이루어졌습니다. 아이돌 팬들은 ‘무한스밍’을 통해 자신의 가수를 순위표 높은 곳에 올리기 위해 영혼을 갈아넣었고, 그 결과 음원차트는 아이돌 음악이 점령하다시피 했죠. 그러나 최근 들어 빅데이터를 활용한 취향추천 기능이 활성화되고, 해외 및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경험하는 것이 용이해지면서 음악감상의 풀이 급격하게 넓어졌습니다. 또한 실시간 차트 역시 그 폐해가 드러나며, 산정 및 운영 방식이 바뀌었는데요. 심야시간대 차트를 얼려버리면서 ‘줄세우기 현상’을 없앴고, 이에 따라 웬만한 가수들은 순위권 안으로 진입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현재 차트를 봐도 가장 높은 순위에 위치한 아이돌 가수의 노래는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방탄소년단, 25위)이고, 중소아이돌의 신곡은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중소아이돌의 음악이 대중에게 알려지는데에 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심야시간대 실시간 차트를 프리징하여 아이돌 팬덤의 심야 '스밍'이 불가능해졌다

 또한 기획사들의 아이돌 제작 역량도 퇴보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M채널의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책임이 큰데요. 수 년간의 연습을 통해 완벽한 팀을 만들어내던 기존의 제작방식을 파괴하고, 단 6개월차 연습생도 인기만 많으면(투표만 많이 받으면) 데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엔터테인먼트사의 트레이닝/기획 역량을 무너뜨리고, 회사를 단기 인력사무소처럼 만들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MBC ‘아육대’는 중소아이돌들이 대중에게 얼굴을 비출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가 되었습니다. 당장 인지도가 절박한 그룹들에게 원샷 한번 한번이 얼마나 소중하겠습니까.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아육대’ 출연자 중에 제가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들의 분투가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이돌 가수에게 ‘아육대’에서의 화면노출은 더더욱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ᅵ 가지말아요, 아육대

 아육대가 시청률과 화제성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긴 했지만, 이것이 종영으로 이어질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제작비와 광고 수익, 해외시청 등이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봐야 하니까요. 또한 타 방송사들의 명절 파이럿 프로그램들이 모두 저조한 성과를 보이는 마당에, ‘아육대’를 대체할 만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마땅치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10년 동안 잡음도 많았고 팬덤으로부터 미움을 받기도 했던 ‘아육대’이지만, 이제는 아이돌-팬-‘아육대’가 건강한 파트너십을 구축해 서로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K-POP 아이돌 산업이 돌파구를 찾아내 다시 한 번 부흥기를 이끌 때까지 ‘아육대’를 지탱해 줄 가장 큰 원동력은 결국 현재 활동 중인 아이돌들과 그 팬덤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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