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는 장성규의 재능을 어떻게 이용하는가
며칠 전 프리랜서 아나운서(또는 방송인...) 장성규씨의 인스타그램에 해사하게 눈웃음 짓는 얼굴이 담긴 MBC 출입증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MBC 라디오 ‘굿모닝 FM 장성규입니다’를 진행하게 되었다는 글이었는데요. JTBC 퇴사 뒤 5개월 만에 방송사 출입증이 생겼다며 설레하시는 모습이 사진 너머로까지 느껴졌습니다. 출입증 사진과 함께 ‘굿모닝 FM 장성규입니다’의 포스터도 올라왔는데요. ‘굿모닝’의 ‘ㅁ’을 입으로, ‘7:00’의 ‘00’을 콧구멍으로 표현한 데에서 장성규씨의 이미지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세’라는 표현이 한물 간 유행어이긴 하지만, 굳이 요즘 ‘예능 대세’를 꼽으라면 단연 ‘장성규’라는 이름이 가장 먼저 거론될 것 같습니다. 장성규씨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캡처해놓은 사진이 10대들 사이에서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아슬아슬하게 방송심의의 선을 넘나드는 입담과 SNS를 통해 댓글에 코멘트를 달며 사람들과 직접 소통하던 모습이, ‘워크맨’이라는 콘텐츠와 ‘선넘규’라는 캐릭터로 승화된 것 같습니다.
물론 장성규씨의 대표 프로그램은 ‘워크맨’이지만, 장성규씨에게 MBC는 제 2의 고향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것도 MBC ‘신입사원’을 통해서였고, 프리선언 이후에는 ‘마리텔’을 통해 ‘선넘규’라는 캐릭터를 얻었기 때문이죠. ‘선넘규’는 ‘마리텔’뿐만 아니라 타방송에서도 장성규씨의 트레이드 마크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MBC와 장성규씨의 관계는
방송사와 ‘인적재능’이 서로 윈윈하는 이상적인 그림입니다.
장성규씨는 앞서 언급한 ‘마리텔’에서, 기존 방송들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드립’들을 날리며 퍼스널 브랜드를 구축했습니다. 또한 아나테이너 다운 수준급의 진행 실력으로 일반인 출연자들을 리드하며 차세대 MC로서의 모습까지 보여줬습니다. MBC의 입장에서도 정형돈, 장성규씨가 진행한 ‘무덤TV’가 ‘마리텔 V2’의 간판 코너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은 고무적인데요. 확실한 킬러 콘텐츠 없이 시행착오를 거듭했던 ‘마리텔 V2’가 안정적으로 화제성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준 1등 공신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공생관계는 ‘전참시’에서 한 단계 더 고도화됩니다. ‘전참시’ 65, 66회에서는 장성규씨의 대표작인 ‘워크맨’의 에버랜드편 촬영현장을 담았습니다. 타방송사, 그것도 디지털 콘텐츠의 촬영현장을 자사 방송에 내보내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과거 타방송사의 이름도 언급하지 못하고 ‘K본부’, ‘S본부’라고 불렀던 것과 비교하면 놀랄 만한 변화라고 생각됩니다.
MBC는 ‘전참시’ 장성규편을 통해 ‘워크맨’의 인플루언스를 일부 이전해올 수 있었습니다. 2화로 편성된 워크맨 ‘에버랜드’편은 총 조회수가 1600만회를 넘겼을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는데요. ‘전참시’를 통해 이 콘텐츠의 비하인드를 보여준 것이죠. (여담으로 그동안은 유튜브에 TV 프로그램의 비하인드가 올라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관계가 역전된 것이 흥미롭기도 하네요. 이는 이번 글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니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MBC와 장성규씨의 공생관계는 ‘재능’ 위주로 급속하게 재편되고 있는 미디어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과거 방송제작은 방송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방송사들이 제작역량 뿐만 아니라, 제작에 필요한 인력까지 내재화했기 때문인데요. 공채 탤런트, 공채 개그맨들을 뽑아 그들의 재능을 프로그램 안에서 키워나갔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미디어 시장은 재능을 중심으로 형성됩니다. 외모, 운동능력, 전문지식, 재력 등의 재능이 곧 콘텐츠가 되고, 그에 대한 시청수요가 높게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미디어 소비자들이 개인의 ‘재능’을 소비하는 추세를 보이면서, 기획/제작보다 어떤 재능을 섭외하는 지가 콘텐츠의 성공을 좌우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별 것 아닌 거 같은데?’라고 생각했지만 엄청난 화제몰이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러한 재능 중심의 제작방식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금기’ 또는 ‘기피사항’으로 여겨지던 섭외 방식에 적극적으로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MBC는 여러 분야의 ‘재능’을 섭외하는 데에 있어서 계속해서 파격적인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그 시도의 일환인 ‘놀면뭐하니’, ‘헬보관’ 등의 프로그램을 다루면서 MBC가 방송 재능에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되는지에 대한 논의를 해왔는데요. 아마 오늘도 똑같은 결론을 내릴 것 같습니다.
1. 그 재능이 기반으로 하고 있는 미디어 플랫폼의 특징을 프로그램에 녹여내야 한다
2. 재능을 기획에 가두기 보다는, 재능이 자유롭게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획을 해야 한다
3. 인플루언스(구독자수, 조회수 등 눈으로 보이는 수치)에 매몰되기 보다는, 재능이 롱런 가능한지에 대한 검증이 우선되어야 한다
재능이 일반인인지, 1인 크리에이터인지, 타사 출신 방송인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특정 소비자 집단에 어필할 수 있는 재능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섭외해 타겟층이 확실한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TV 프로그램이 OSMU(One Source Multi Use,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개발하여, 여러 창구를 통해 유통하는 것)를 실현하고, 광고주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