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도 들어도 적응 안되는 그들의 화법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꼰대’같은 말을 해도 미워할 수 없는 존재는 ‘신’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네, 말 그대로 GOD 이요.
얼마 전 부활절, 드디어 내가 다니는 성당이 재건축을 마쳤습니다. (알 수 없는 어른들의 사정으로) 고깃집 건물을 성전으로 사용하다가 나온지 1년 10개월 만이었습니다. 나는 스무살 때부터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는데요. 상가 건물에 세들어 살던 지난 1년 10개월은 아무리 기쁜 노래를 불러도 맥이 빠지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새 성전에서 첫 미사를 드리던 날, 1년 10개월 만에 이삿짐 박스에서 성가대 단복을 꺼냈습니다. 그동안 단복들은 어디 걸려있을 공간도 변변하게 없어 박스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이 솔찬히 불편했는지 구깃구깃해진 옷들은, 세탁을 하고 다림질을 두세번 해도 매끈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10년 동안 입어왔던 단복을 바꿔야겠다는 말이 성가대 안에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한게 우리 만은 아니었는지, 미사가 끝나고 단장님에게 전화가 왔더랍니다. 그런데 그 분이 하시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정말 클리셰 덩어리였습니다.
아니…… 제가 아들, 딸 같아서 얘기하는데요.
⁃ 여기서부터 느낌이 쎄합니다.
제발 그 단복 좀 빨아서 다려 입어요!
도저히 집중이 안돼서 미사 끝나고 직접 가서 얘기할까 하다가 참고,
집 오자마자 연락하는 거예요!
⁃ 직접 얘기를 해주셨으면 자초지종을 설명해드렸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면 안돼요. 나 진짜 분심이 일어나려고 했어요.
새 성전이랑 너무 안 어울리지 않아요?
다음부터는 조심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 할 말이 끝난 후 바로 전화를 끊으시더랍니다.
옷의 구김으로 인해 기도 중에 마음이 어수선해졌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은 넝마 조각을 걸치고 있는데, 거기에서도 분심이 생길까요? 예수님이 새로 봉헌된 성전을 내려 보다가 성가대복의 구김을 가리키며, ‘정성이 부족하네!’ 라며 질타할까요?
(후…후… 진정진정)
말은 ‘어떻게 꺼내느냐’에 따라서 들을 때의 기분이 묘하게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아니시에이팅’이라는 신조어를 아시나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화를 할 때 ‘아니……’라는 말을 꺼내면, 이는 바로 상대방에게 시비를 걸거나,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징조라는 것입니다. 이 말이 정말 절묘한 데요. ‘아, 이건 한 마디 해야겠다’라고 마음 먹은 순간, 나도 모르게 입(또는 손)으로 ‘아니……’를 내뱉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곤 합니다. 여러분도 한 번 자각해보시길.
하나 더. ‘아들 딸 같아서 얘기하는데요’는 아니시에이팅 보다 더 최악의 화두입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아들, 딸이라고 할 수 있는 주체는 이론적으로 생각해봐도 ‘하느님’ 정도 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건 나의 작은 앙탈이지만, 나의 어머니는 저런 식으로 나를 혼내지 않습니다.
이렇게 쓰다 보니 단복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어서인지 예산 문제에 한없이 깐깐하던 신부님이 흔쾌히 새 단복을 맞추라고 허락해주신 걸 보면, 인생사는 역시 새옹지마입니다.
앞으로는 돈이 조금 더 들더라도 성가대 단복은 드라이 클리닝을 맡겨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