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이나 유무선 통신망, 인터넷이 망가진 것도 아닌데, 한 회사(정확히는 그룹사)의 사설 무료 메신저 서비스가 좀 망가졌기로서니 이렇게 큰 파급이 생기나 그래.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하며 "너 카카오톡 써봤어?"라고 묻던 얼리어댑터 지인이 생각이 난다. "아, 들어는 봤어요. 문자가 공짜라면서요?" 하며 신기해하던 시절. 그 당시 카카오톡이 망가졌다면 "공짜가 다 그렇지 뭐, 고쳐지면 그때 또 쓰던가~ 중요한 알림 문자는 SMS를 써야겠다~"하고 말았을 테다. 서비스 독과점의 폐혜는 무섭구나. 나야 뭐 카톡 상업서비스를 거의 안 쓰니까 상관없지만 카톡 기반 사업하시는 자영업자분들 피해가 만만치 않겠네~
시차가 확연히 다른 해외에 근무 중인지라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부분의 카카오톡 단톡방이 뚝 끊겼다. 대신, 왓츠앱 단톡방에 초대되었다. 이 나라도 카카오톡 서비스는 되지만, 왓츠앱에 비해 속도가 무지무지 느리다. 아마도 서버 자체를 서남아시아에 두고 있지 않고 해외 서버를 통해 수발신을 제어하다 보니 그런가 보다 막연히 짐작만 할 뿐이다. 그래서, 여기 한국인들도 한국인들끼리의 소통마저 왓츠앱을 더 선호한다. 카톡으로 저용량 사진 한 장 보내려면 몇 분씩 걸리는 일이 다반사인데 당연한 일이다. 왓츠앱은 상대적으로 훨씬 빠르다.
뭐, 암튼, 모름지기 IT 기업이라면 이중삼중 백업망을 구축해놨을 거고 길어야 한두 시간이면 복구가 될 줄 알았는데, 전체 서비스 복구는 여전히 안 된단다. 파급이 가장 컸을 카카오톡 먼저 순차적으로 복구했는데 그것도 문자 전송만 되고 사진 전송이 안 되다 순차적으로 복구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카톡은 내가 크게 아쉬운 게 없어 갑갑하지 않았지만, 다른 데서 갑갑해지기 시작했다. 카카오톡으로 로그인되는 모든 서비스가 안 되는 일이 벌어졌는데, 브런치도 그중 하나. 처음에는 단순히 카톡 로그인이 막혀서 안 되는구나 생각했는데, 반나절 이후 카톡이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다. 브런치는 광고도 없고 연관 쇼핑도 없는 돈 되는 플랫폼이 아니니까 복구의 우선순위가 아닌가 보다.
기고문 쓴다고 문체를 바꿨다는 핑계로 벌써 일주일이 넘게 글쓰기 손을 놓고 있었는데, 시험 전날 "100분 토론"이 그렇게 재미있듯이 꼭 서비스가 안 되는 날 글이 쓰고 싶어 진다. "주말에 느긋하게 글 쓰는 게 유일한 취미인데!" 하면서 말이지. ㅋㅋㅋ
허전한 마음을 뭘로 달래나. 아, 한동안 방치해 둔 플레이스테이션이 있었지.
나이가 드니 눈도 침침해지고 체력도 안 돼서, 자연스레 게임 제한장치가 작동해서 게임 한 번 하려면 큰 마음먹고 해야 하는데 지난 주말엔 별다른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이슬라마바드 사택은 여전히 불난 이후 입주자가 봉쇄된 상태고, 나는 지사에 갇혀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갇혀 있단 말이다. 그래, 이럴 땐 게임이지. 가상세계 물아일체 삼매경. 그런데... 체력이 급격히 좋아진 것도 아닌데, 브런치가 안 된다는 핑계로 너무 오래 해 버렸다. 조이스틱 제어가 내 맘대로 잘 안 되면 내 행동과 시야에 괴리가 생겨 멀미가 나는데, 이제 조이스틱 제어에 익숙해져서 멀미가 안 난다! 게다가, 튜토리얼 마치고 게임 극초반을 넘기니, 그래픽과 스토리 전개가 매 장면 우와 우와~아~ 감탄사가 날 만큼 너무너무 멋지다. 평상시 같으면 퀘스트 하나 붙잡고 5분 헤매다 지쳐서 공략 유튜브 찾아보고 치우는데, 이제 오기가 생겨서 하나하나 직접 풀다 보면 예전에 하던 그 쾌감이 다시 느껴진다. 오, 천재들~. 이거 푼 나도 똑똑하지만 이거 만든 사람은 대체 얼마나 똑똑해야 이런 걸 다 설계할까.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God of War 4. 하루라도 젊을 때 해 보시길. 나이들면 게임도 힘들다. ㅠㅠ
감탄 감탄하며 게임하다, 중간보스를 만났다. 덤비고 덤비다 열댓 번 죽다 보니, 이제 대충 패턴이 보이고, 딱 요만큼만 하면 넘길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아니, 이제 진짜 마지막이야~ 이러다 보니... 자정을 후딱 넘어 출근할 시간이 가까워진다. 오 마이 갓. 마지막 힘을 불살라서 결국 보스판을 격파하고, 아름다운 장면 전환 씬까지 섭렵한 후에 아, 제발 아침에 눈이 떠져라를 외치며 잠자리에 들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본 사이버 월드 몰입 감성. 의지의 직장인이라 아침에 눈이 떠졌다. 그것도 알람도 없이 늘 깨던 시간에. 하아, 그런데...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피곤하다. 아이고 삭신이야... ㅠㅠ
이게 다 카카오톡 때문이다.
카톡 안 돼서 브런치 생활에 금이 갔고, 허전한 맘을 달래려고 게임하다 밤새서 극도로 피곤한데, 카톡은 나한테 변상을 해 줄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