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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Feb 15. 2024

마이너스 시력의 진짜 의미

"나는 시력이 마이너스야"는 사실 거짓말

 "선풍기 틀고 자면 죽는다(산소공급과 무관. 안 죽음. 내가 해봤음.)" "전기세 많이 나온다(전기세 아님. 제발 전기요금 플리즈.)"처럼 상식인 듯 아닌 듯 한국 사회에 일상적으로 많이 퍼진 대표적인 잘못된 표현 중 하나.


 "나는 시력이 마이너스야.(그래서 잘 못 봐.)"


 아. 괜히 불편하다. 별 거 아닌 거에 불편해하는 프로불편러 오늘 작가.

 그냥 넘어갈 수 없지. 교화작업 들어가 본다.




 간단한 질문을 몇 가지 해보자


1. 청력이 제로라면? : 전혀 못 듣는다.

2. 공감능력이 제로라면? : 공감을 전혀 못 한다.

3. 문제 해결능력이 제로라면? : 바보다. 채용하면 안 된다.


 음... 특정인을 겨냥한 게 아닌데 써 놓고 보니 한국에서 유명한 누구 증상 같기도 하고...

 어쨌든 그럼 좀 더 악조건으로 만들어보자.


1. 청력이 마이너스라면? : 말 안 한 것도 듣는 걸까?

2. 공감능력이 마이너스라면? : 공감은 커녕 시비를 걸어올래나?

3. 문제 해결능력이 마이너스라면? : 해결은 커녕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올래나?


 능력치에 마이너스(-)가 붙으면 해석이 엄청 이상해진다. 능력이 0 이란건 이미 그 능력이 없다는 소린데 어떻게 능력치에 마이너스(-)가 있을 수가 있나. 이상하게 느껴지는 게 지극히 당연한 소리다.


 그.런.데.


"나는 시력이 마이너스야."


 응? 어쩐지 자연스럽다. 왠지 시력이 아주 안 좋은 사람일 것 같다. 어려서부터 이런 말은 수도 없이 들어와서 전혀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시력이 0이면 이미 하나도 안 보이는 건데, 도대체 시력이 마이너스라면 하나도 안 보이는 것보다 얼마나 더 안 보이는 걸까? 안 보이는 걸 넘어서 과거나 미래를 볼 수 있는 걸까?


......


 내가 하고픈 말은... 짐작하셨다시피, 시력에는 마이너스(-) 같은 거 없다.

 최저치는 0. 시력이 0이라면 하나도 안 보이는 거다. 아예 빛조차 감지 못하는 맹안이 시력 0인 상태다.


 그럼 수많은 사람들이 하는 "나는 시력이 마이너스야"라는 말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안과나 안경원에 가면 시력검사 후 본인의 시력과 교정이 필요한 안경의 도수를 적어주는데, 근시안이 심해질수록 안경 도수가 마이너스 수치로 점점 높아진다. 통상 -6 디옵터(Diopter) 이하 수치의 교정 도수가 필요한 사람을 고도근시라 부르며 -9 디옵터부터는 초고도근시로 분류된다. 이 안경 도수를 시력과 착각해서 발생해 온 문제다.


 아. 잠깐잠깐. 디옵터(Diopter)는 또 뭔가요? 쏘우리. ㅡ,.ㅡ;

 디옵터(Diopter)는... 사전의 힘을 빌리자.


 디옵터는 렌즈의 굴절력(refractive power)을 나타내는 단위로 렌즈의 초점거리를 미터로 표시한 수의 역수이다. 기호로는 D 혹은 Dptr을 사용하며, 볼록렌즈에는 양의 부호를 사용하고 오목렌즈에는 음의 부호를 사용한다. 일생생활에서는 안경의 도수를 표시하는데 널리 쓰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디옵터 [Diopter, Dioptre] (물리학백과)


 그러니까, 초점거리가 렌즈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렌즈가 두꺼워진다는 말이며, 볼록렌즈는 + 수치, 오목렌즈는 - 수치의 초점거리를 가진다. 그러니까, "내 시력은 마이너스야"라는 말의 진짜 뜻은, "나는 근시안이고, 오목렌즈 안경을 써야 해."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안경 렌즈의 초점거리가 마이너스라는 사실 자체는 실제 시력과는 별 관계가 없다. 안경 초점거리가 플러스가 된다고 시력이 좋다는 뜻도 전혀 아니다. 렌즈 굴절력이 음수라면 오목, 양수라면 볼록렌즈인 것뿐이다. 볼록렌즈 돋보기 안경을 써서 도수가 +라고 시력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이 디옵터의 절대값 수치가 0에 수렴할수록 교정이 불필요한 눈이라는 뜻이니 양이든 음이든 낮은 절대값을 가진 디옵터 안경 렌즈를 가진 사람은 상대적으로 시력이 좋다는 뜻이 되기는 한다.




 공부를 하는 김에, 1.0, 2.0 등으로 표현되는 시력에 담긴 의미도 한 번 알아보고 가자.

 기술적으로 파고들면 ISO 8596에 정의된 국제기술표준이 있지만 그거까지 알아보기엔 너무 머리 아프고 통상적인 기준의미만 가볍게 알고 가면 좋겠다.


 시력 1.0은 남들이 보는 걸 나도 대충 다 본다는 뜻. 대략 평균적인 시력을 가졌다는 의미. 그런데 요즘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영향인지 근시안 인구가 하도 많아서 나안 1.0만 되어도 시력이 좋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이다.


 비슷하게 시력 2.0은 남들보다 두 배 더 잘 본다는 말이고, 시력 0.1은 보통사람들보다 세밀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이 1/10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정수로 시력을 표시하지만, 미국에선 20/20, 20/10, 20/200 하는 식으로 분수로 표현하는데, 사실 이게 이해하기에 더 직관적이다.


· 20/20 : 내가 20피트(앞 숫자)에서 잘 보는 걸 남들도 20피트(뒤 숫자)에서 잘 본다는 뜻(=시력 1.0).

· 20/10 : 내가 20피트(앞 숫자)에서 잘 보는 걸 남들은 10피트(뒤 숫자)에서 겨우 본다는 뜻(=시력 2.0).

· 20/200 : 내가 20피트(앞 숫자)에서 겨우 보는 걸 남들은 200피트(뒤 숫자)에서도 잘 본다는 뜻(=시력 0.1).




 암튼 이제 잘 아셨을 테니, 이제부턴 어디 가서 "나는 시력이 마이너스야"라고 하시기 없기.

 안경이나 렌즈 끼시는 분들은 지금부터라도 쓰시는 렌즈의 도수와 본인의 시력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시고 관리해 가시길 추천드린다.


 "나의 나안시력은 0.1이고, 근시라서 교정렌즈 도수는 -3.5 디옵터를 써."


 아. 한결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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