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명문대 예찬론
한국 사회에서 명문대(소위 SKY, KAIST 등)를 졸업하면 살아가기 훨씬 유리하다.
그런데, 영국 사회에서 명문대(옥스포드 대학교 등)를 졸업하면 살아가기 훨씬 유리하다.
사실은, 미국 사회에서 명문대(하버드 대학교 등)를 졸업하면 살아가기 훨씬 유리하다.
놀라운 것은, 파키스탄 사회에서 명문대(Quaid-i-Azam 대학교 등)를 졸업하면 살아가기 훨씬 유리하다.
심지어 북한에서도 명문대(김일성 대학교 등)를 졸업하면 살아가기 훨씬 유리하다.
설명 안 해도 왜 그런지, 이미 모두 다 알 것만 같은 사실을 다시 분석해 보자.
명문대 졸업자들에겐 훌륭한 보증수표가 따라다닌다.
명문대의 졸업장은 "성실", "유능", "똑똑", "신뢰"의 상징이 된다.
명문대 졸업자 모두가 다 성실, 유능, 똑똑하며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사회는 보편적으로 명문대 졸업자가 저런 덕목을 다 가졌을 거라고 예상하며 미리 인정해 준다.
"저 어디어디 나왔어요~"란 말 자체가 "나 이런 사람이야~"하고 우쭐~하게 만들어주게 된다는 뜻. 입 아프게 본인 스스로를 어필할 필요성이 화악~ 줄어든다. 내 출신학교 하나 말했을 뿐인데, 그 순간부터 내 평판 수직상승효과.
명문대 졸업자들에겐 사회가 바라는 기대치가 기본값으로 매우 높다.
사실 이게 역으로 명문대 졸업자들에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하는데,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 기대치를 충족시키려는 노력도 자동빵으로 하게 된다. 직장인일 경우, 같은 급여를 받고도 동료들에 비해 더더 많은 업무 수행을 요구받거나 더 고품질 결과물을 내놓을 것을 항상 요구받는데 이게 본인 역량만 받쳐준다면 조직내에서 인정받는 최단코스가 될 수도 있다. 반대로 내가 역량이 매우 높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내가 명문대를 나오지 않아서 기회 자체가 박탈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다만 이게 잘못 작동하게 되면 열정페이만 잔뜩 요구받고 라인 바뀌면 토사구팽 당하는, 뜻하지 않는 사내정치에 휘말리는 경우도 드물게 발생하긴 한다.
어느 지인이 벤처기업을 차렸다. 그리고 몇 달 안 되어 대표이사직을 본인이 채용했던 명문대 출신의 연구소장 명의로 이전하고 본인은 일반등기이사로 보직을 바꿨다.
"사장님, 아니 이사님. 이 회사 이사님이 세운 거 아녔어요? 갑자기 왜?"
궁금해서 여쭤봤더니, 아직 회사는 더 성장해야 하고 투자기업으로부터의 투자금 유치가 중요한데, 본인은 명문대를 졸업하지 않아서 입구컷을 많이 당했더랬다. CEO가 명문대 출신이냐 아니냐에 따라 기업 투자금 유치활동에도 영향을 준다는 말씀. 그래서 하는 일 똑같고 어차피 동업하는 사이인데, 회사 발전에 더 좋은 쪽으로 선택을 한 거라고.
아. 실제 사회도 그렇게 돌아가는 거구나...
명문대의 명판에 기댄 광고, 우리도 쉽게 많이 접한다.
"서울대 출신들이 개발한 어쩌고", "KAIST 연구소에서 입증된 어쩌고"
음. 어쩐지 내용 다 안 읽어보고도 신뢰가 +1 더 쌓이는 느낌이 드는 건 부정할 수가 없다.
명문대를 졸업한 본인도 똑똑할 터이지만, 같은 명문대를 졸업한 친구나 선후배도 똑똑타.
당연히 그들은 사회 각지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고, 일면식 없는 남보다 같은 학교를 나온 본인에게 유리한 정보나 기회를 더 베푼다. "아는 의사 없어?" "아는 검사 없어?" "아는 고위 공무원 없어?" "아는 세무사 없어?" "아는 변리사 없어?". 물론 인적 네트워크는 사람마다 케바케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명문대 졸업한 사람에게 이런 네트워크를 구축하기가 훨씬 더 쉽고, 유지하는 것도 훨씬 더 공고하다.
어디 그뿐이랴.
큰 조직(대기업, 군대, 공무원 등)에 들어가면 이미 잘 나가는 라인에 명문대 출신 학교 선배 졸업생들이 촤라락 포진해 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끌어주고 밀어주고... 자연스레 그 물에 휩쓸려 편한 흐름 탈 수 있다.
1번에서 이미 견고한 사회적 평판을 졸업과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하냐면, 명문대 졸업자가 어쩌다 실수를 좀 저질러도 "아휴, 쟤도 사람인데 그럴 수 있지."가 가능해진다. 평판과 간판이 없으면 "어휴, 니가 그러면 그렇지."가 되며 안전판 없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미 좋은 평판을 가진 자는 조금만 잘해도 "쟤는 원래 당연히 잘해."가 되고 좀 못 해도 "그럴 수도 있지."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좀 잘해도 "의외네? 제법인데?"가 되고, 못 하면 "니가 그러면 그렇지."가 되어버린다. 물론 평판은 내가 살면서 구축하며 가꿔가는 거지만, 명문대 졸업자는 이미 출발선부터가 달라진다.
남친, 여친이나 배우자를 고를 시 이성의 학벌을 트로피로 여기는 부류가 있다. 사귀는 사람이나 배우자의 학벌이 내 평판까지 높여버리는 효과를 노리는 것. 암튼 명문대를 졸업하게 되면 결혼시장에서 분명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적어놓고 보니 어째 인간시장처럼 매정해 보이는데, 사실이 그런 걸 어째.
집안에 명문대 졸업자를 한 명만 배출해도 부모님이나 형제자매에게 어깨뽕을 장착해 줄 수 있다. 부모님은 어디 가서든 "우리 아들 000대 나왔잖아~"하고 힘주고 다니고, 설혹 명문대를 못 나온 형제자매도 "내 동생 000대 나왔잖아~"라고 하면 '내가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그렇지, 우리 집안 원래 공부 잘하는 똑똑한 집안이야'라는 어필이 가능하므로 역시 집안의 훌륭한 배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말이다.
저 효과 중 상당부분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5~10년 내 가치가 상당히 희석이 되거나 소멸해 버린다. 그 이후의 사회적 평판은 본인 개인의 업적, 본인의 직업과 재력, 사회기여 등 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물 개개인의 평판정보가 덜 쌓인 신입사원일 때는 배경학벌이 중요한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그런 거 안 물어본다. 이미, 사내평판을 통해 조회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문대 졸업딱지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이후에도 사회적 관계를 처음 맺는 자리에선 여전히 강려크한 카드가 된다. 역시 앞서 설명했던 보편적 이미지에 무임승차가 가능하다. 개인이 사회적 관념을 단기간에 바꾸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미 형성된 사회적 관념에 올라타는 일은 참 쉬운 일이다.
오해할까 봐 강조하지만, 명문대 졸업자들이 모두 다 훌륭한 성품과 능력을 갖췄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다만, 한국사회를 포함한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입학 경쟁이 치열하고 인재들이 모인다는 명문대를 성공적으로 졸업한 사람들에게는 그에 걸맞은 사회적 존경과 평판을 부여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픈 것뿐이다. 명문대의 평판과 평가를 유지하는 사람들 또한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이 평균적으로 사회의 기대치를 뛰어넘어 잘 해낸다면 그들의 평판이 높게 유지될 것이고, 다수가 사회의 기대치 충족을 못 한다면 사회적 평판에 금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 그러니... 졸업과 동시에 이런 혜택 챙기고 싶다면 명문대를 가라.
자리가 정말 좁은 국립 명문대 몇 빼고 나면 사립 명문대의 학비는 어마어마하게 비싸서 부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좀 비싼 학비는 인생 살며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다 돌려받게 되어있다.
Q. 명문대를 안 나오고도 성공한 위인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이거 너무 편협한 글 아닌가요? 고 정주영 회장도, 발명왕 에디슨도 명문대 졸업자 아녜요.
A. 하아... 제 글 안 읽어보셨죠? 이 글은 명문대 안 나오면 성공 못 한다는 글이 아닙니다. 명문대 나오면 사회에서의 출발선이 매우 유리해진다는, 좀 불편하지만 아주 당연한 사실을 설명한 글입니다. 명문대 졸업해도 본인이 개판 치면 인생 망하는 거고, 명문대 안 나와도 본인만 잘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어요. 부정하지 않습니다.
Q. 정부가 지방거점대학에 취업가점도 주고 지방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거 모르나요? 요새 지방대에 얼마나 혜택이 많은데...
A. 지방대에도 혜택이 많은 요즘입니다. 되려, 요샌 주요 공공기관은 블라인드 면접을 해서 채용 시 출신학교를 전혀 모른 채 뽑아요. 다른 시선으로 보면 블라인드 면접은 명문대 역차별처럼 보이기도 해요. 다양한 장학금 지원 등 지방대 혜택이 좋은 분들은 지방대 가시면 됩니다. 하지만, 제가 앞서 설명한, 명문대 출신자에게만 해당되는 특별한 다양한 혜택을 누리기는 어려울 거예요. 이것저것 장단점 분석해 보고 최종 선택은 본인의 몫!
Q. 제 주변에 명문대 졸업하고도 인생 망친 쓰레기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A. 환장하것네 진짜. 제 글 좀 읽어보셔요. 저는 명문대 졸업한 사람들 모두가 훌륭하다는 글을 적는 게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이미 형성된 평판효과에 대해 분석적으로 설명하는 글이에요. 명문대 졸업하고도 본인이 노력을 안 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인생 망합니다. 명문대 졸업이 성공의 보증수표는 될 수 없어요.
Q. 명문대 졸업장이 밥 먹여주나요? 요즘엔 무조건 의대인 거 모르세요?
A. 저도 명문대냐, 인기학과냐 둘 중 고르라면 학과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동일한 학과라면 명문대 가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같은 의대를 나와도 명문대 의대를 나오면 사회에서 훨씬 더 잘 쳐줍니다. 같은 법대를 나와도 명문대 법대 나오면 훨씬 잘 먹혀요. 아시잖아요?
다소 민감한 주제라 제목만 보고 열폭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 자체 방어장치 가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