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한다고 책임이 없어지지 않는다.
글쓰기에도 관성이란 게 있어서 요 며칠 정치얘길 좀 했더니 자꾸 그런 주제만 머릿속에 맴돈다.
나 주력분야가 정치비평도 아닌데 이러다 손님들 다 떨어져 나갈라.
암튼 그건 그거고, 내가 어제 또 급발진해버렸는데, 이건 좀 얘기해야 할 것 같아서 또 왜 내가 열폭해 버렸는지 말씀드리고자 한다.
일부러 찾아본 건 아니고, 정치뉴스 보다 보니 알고리즘 추천 영상.
정규재는 한국경제신문 주필을 지낸 유명한 보수 논객, 시사평론가.
우익 진영에서 원로 격 오피니언 리더로 인정받고 계시는 분이며, 2021년도에는 자유민주당을 창당하여 부산시장선거에 뛰어드신 정치인이기도 하다.(낙선하긴 했지만.)
https://www.youtube.com/watch?v=_4gxXTUXm9Y
성향이 보수처럼 보이지만 억지스럽지 않고 보수가 잘못하는 것도 정확히 짚고 좌파에게도 합리적 조언과 충고를 하는 그래도 말이 통하는 정상적인 지식인이라 생각해서 나름 신뢰하던 분이었는데, 이 영상을 보고 확 화가 치밀어버렸다.
(상기 유튜브 영상의 4:25부터)
지난 대선 때의 소회를 밝히며
이재명을 찍을 수도 없고, 윤석열을 찍을 수도 없기 때문에 나는 대선 자체를 보이콧한다고 선언했습니다.
'대선 자체를 나는 아무도 찍을 수 없다'하고 보이콧을 했었습니다.
라며 당당하게 말하는데, 아니 이게 보수 논객이 할 말이냐.
보수란게 뭔데. 전통의 가치를 보전하며 지킴. 정치에서의 보수란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며 법치주의 원칙을 옹호하며 급진적 변화에 저항하는 정치적 이념을 뜻하는 말 아녔나. 그럼 최소한 민주주의의 가장 근간인 선거제도만큼은 옹호하며 가치를 설파했어야지.
이재명도 윤석열도 싫어서 투표를 안 하면, 이재명도 윤석열도 대통령이 안 되냐고.
그래놓고 "내가 뽑은 대통령이 아니다"하며 욕하며 다니려고?
아니 명색이 보수 논객이라면서, 민주주의 선거제도의 의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무슨 오피니언 리더인가?
선거란게 최선의 선택이 되면 좋겠지만, 세상에 내 마음에 100% 드는 사람이 어디 있나?
최선이 불가능하면 차선, 차선이 불가능하면 차악을 선택해서 최악을 피하는 것이 선거이다.
그런데, 내 맘에 안 든다고 외면해 버린다고? 그래서 괴물이 선택되어도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고?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딨나? 심지어 이런 사람이 주필? 오피니언 리더? 에라이.
유력주자 두 사람이 마음에 안 들면, 대체주자를 찾아 지지하는 방법도 있다. 혹자는 이를 사표라 부르며 의미없는 행위라 치부하지만, 이 역시 정치적 구심점을 만드는 중요한 의사표현 방법이다. 낙선하더라도 득표를 많이 한 후보는 낙선 이후에도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대체주자가 없다면, 둘 다 끔찍하게 싫더라도 누가 더 최악인지 한번 더 생각해서 최악만은 막아야 하는 것이 유권자의 의무이다. 아 씨 난 모르겠으니 될 대로 돼라? 그래놓고 아무나 당선되면 내가 뽑은 대통령 아니니 나랑 상관없다? 아니잖아. 나와 상관이 생기잖아. 내가 뽑든 안 뽑든, 그것까지 내가 책임을 지는 거지.
백번 천번 만번 양보해서, 정말 아무도 안 뽑겠다 할지라도 투표장에는 가야 한다. 기권표로 실권처리 되더라도 투표율 자체는 높여놔야 한다. 그래야 정치인들이 긴장하고, 유권자의 눈치를 본다. 투표율이 점점점 떨어져서 유권자의 반수 이하로 수치가 내려오면 정치인은 살살 간댕이가 배밖에 나온다. 적당히 자기 정당 요원들만 잘 구워삶고 정치 공학 동원하면 다음 선거 표쯤이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계산이 나온다. 이때쯤 되면 정말 국민은 개돼지 취급을 받는거다. 마지막까지 부동표의 민심이 어디 갈지 모르겠지만 투표율이 높을 것 같으면 위정자들이 국민 눈치를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다. "너 잘못하면 곧 아웃이야" 시그널만큼 확실한 게 어디있나? 그 시그널이 곧 투표참여율이다. "내가 너 지켜보고 있겠어!"
한국경제 주필도 오래 했고, 부산시장 선거판에도 출마해서 정치 맛도 보신 분이, 어쩜 선거에 관한 인식은 저 수준일까. 그걸 자랑이라고 본인 유튜브 채널에 나와서 떠들고 있을까.
내 보다보다 내 한심한 생각이 들어서 직격해본다.
아마도 높은 확률로 내년 봄에는 대선을 치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번에는 제발 잘 선택해서 훌륭한 국민의 대표를 선택하게 되길 바래본다. 다 밉다고 외면하지 말고, 그중 누가 덜 미운지 잘 생각해서, 대선 투표율 99%를 만들어보자. (1%는 어쩔 수 없이 투표장 못 가는 사람들이 있다 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