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은 묻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스포츠 센터 사우나에서 아줌마들의 수다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땀을 흘리며 아무 생각없이 있는 것 보다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머릿 속에서 나의 의견을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이야기를 하다가 나를 보더니 아이가 어떻게 되냐고 묻는다. 회사 다니는 딸과 군대 간 아들이 있다고 했다. 예상된 반응이 되돌아 온다. 동안이라느니, 취직해서 좋겠다느니, 아이들 학교는 어디냐, 인 서울이냐. 꼬박꼬박 대답했다. 묻는 걸 대답했을 뿐이다. 센터에서 골프를 하는 사람이 자기 딸은 취업 준비로 이 무더운 날씨에 도서관에 다니고 있다고 하면서 표정이 어두워진다. 아줌마들의 수다가 사라지는데, 사우나의 온도는 점점 올라가는 느낌이다. 숨쉬기가 힘들다.
딸 이야기를 하면 예전부터 주변의 부러움을 받아온 터라, 되도록 조심하는 편이다. 학교 다닐 때부터 학원이든 과외든 혼자 스스로 찾아서 하던 아이였다. 숫제 어느 학부모는 우리 딸이 자기 딸이었다면 최고 명문대에 넣었을 거라고 했단다. 그 말에 내가 딸에게 얼마나 미안했던지. 딸 학교나 직장이 최고인 곳은 아니지만, 언제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 원하지 않던 대학과 직장이지만 일단 들어가서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인정을 받는다. 내가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하면 난 단연코 우리 딸이다.
다른 집처럼 아이가 애교가 많다거나 집안일을 도와주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육체적인 것은 몸을 움직이면 해결된다. 하지만 정신적인 문제는 그와는 다르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듯 스트레스가 병을 만드는데, 혼탁한 나의 정신세계를 맑은 가을 하늘처럼 만들어 주는 것이 딸이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친정 엄마가 돌아가시고 무언가에 집중할 것이 필요했다. 집중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베란다 창가에서 떨어지는 상상도 했다. 그러면 엄마에게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친구가 정신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보라고 했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이들을 생각해서 혼자서 헤쳐나가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날 때면 모든 것에 의욕이 사라지고, 나를 놓고 싶어진다. 더하여 갱년기까지 왔는지, 우울증까지.
이런 나에게 딸이 골프를 함께 시작하자고 했다. 회사 일을 하다보면 골프칠 일이 생겨 배워야 하니 함께 하자고 했다. 골프엔 관심도 없었다. 나의 운동관은 시간과 돈을 최저로 하면서 재미있어야 하는데,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골프는 썩 내키지가 않는 운동이었다. 다행히 아파트 스포츠 센터에 골프 연습장이 있어 가격도 그다지 비싸지 않고, 집 가까이라 시간도 절약도 되어 딸과 함께 시작했다. 첫 달 레슨비는 딸이 내 주었다.
한 달 정도 하다가 그만둘 생각이었는데, 골프가 의외로 집중을 요하는 운동으로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조금만 다른 생각이 끼어들면 공은 어김없이 맞지 않는다. 사람이 많지 않은 연습장에서 공과의 싸움이 의외로 재미도 있어, 시간나는 대로 뛰어가 연습했다. 밤 11시까지 운영되는 센터에 밤늦은 시간, 혼자 연습한 적도 많다. 오로지 흰 공 하나와 나와의 싸움만이 존재했다. 뿌듯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딸과 남편은 내가 골프에 미친 줄 안다. 지금 4개월째인데, 조금씩 성취감도 얻는다. 딸의 필요에 의해 시작했는데, 내가 더 열심히 하고 있다. 무엇보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내가 가진 골프에 대한 매력이다. 공이 잘 맞아 날아갈 때는 내 마음에 응어리진 것들이 함께 날아가는 기분도 든다. 이제 어쩌면 갱년기를 그냥 흘러 보낼 수 있을 것도 같다. 더불어 엄마 생각도.
나를 다시 일어나게 해주는 딸의 이야기는 자랑일까.
사우나에서 만났던 사람이 연습장에서 혼자 스크린을 치고 있었다. 자신은 골프 시작한 지는 꽤 되었다고,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나보고 잘 시작했다고 한다. 나이 들어서 등산을 해도 되고, 다른 여러 가지도 많은 것 같은데 꼭 골프여야 하나. 골프도 관절이 나쁘면 오래 못 칠 것 같은데. 난 개인적으로 에어로빅과 자전거타기를 좋아해 여전히 하고 있다. 골프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어서인지, 다른 것에 신경 쓸 틈이 없어 지금은 빠져있다.
딸에게 고맙다는 말을 자주한다. 골프를 시작할 용기를 주어서. 무엇보다 우울증을 극복하게 해주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