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뚤 배뚤

by 디온



펜으로 직선을 그릴 때

선이 심하게 꺾이거나 굽을까

잠시 숨을 멈춘다

똑바로 똑바로

아이들 여름 티셔츠나 손수건을 다림질하고 보관할 때

각을 잡다 몇 번이나 다시 접었던

무엇이든 자로 잰 듯한 성격,

여전하다

내가 그린 그림의 선은 고속도로처럼 곧게 뻗어 보이는데

우선 연필로 그린 후 펜으로 덧대어 그리기 때문이다

보이는 사물을 재빠르게 그려야 하는 어반 스케치는

두려움에서 잡은,

‘연필은 그만, 펜으로 바로’ 해야 한다


추우니까, 더우니까 조심하라던

명절 때마다 조기와 문어를 보내주시던 아버지

혹서기에도 휴대폰 벨은 울리지 않고

추석이 다가와도

택배 문자가 없다

면보다 선이 중심인 어반 스케치는

펜으로만 끝내도, 가볍게 색을 입혀도

여백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예전에 보이지 않던 떨어진 꽃잎과 벌레먹은 나뭇잎

다양한 구름과 그 그림자가 새롭게 다가오고

길게 늘어진 전선과 낙서, 지저분한 기억뿐인 전봇대는

시골이나 외진 곳까지 문명의 역할을 다한다는 생각에 든든하다

아버지를 잘 보살피지 못한 후회와 자책

통제될 수 없는 외부의 문제가

나를 에워싼 모든 일상을 흡수해 버릴 때

펜을 잡은 손에 다시 힘을 줘본다

비뚤 배뚤, 구불거리는 거리는 선이

들꽃과 풀들이 햇살에 반짝이는

울퉁불퉁 시골길처럼 편안하고 따뜻하다


그림을 완성하고 고개를 드니

비뚤배뚤 전봇대가 한없이 자상했던 아버지처럼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조금 비뚤배뚤하면 어때, 단단히 서 있으면 돼.’

작가의 이전글당연, 당연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