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 당연이 사라졌다

by 디온

'엄마도 먼 거리에도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들고, 거침없이 달려왔잖아, 타지에서 혼자 아이 둘을 키우는 내가 안쓰러웠던 거야. 지금, 지금은.'


결혼한 딸과 가끔 백화점에서 만나 밥도 먹고 쇼핑도 하는데, 소소한 즐거움중 하나다. 딸을 만나러 갈 때면 항상 여러 가지 반찬을 준비해서 간다.

"엄마, 전에 가르쳐 준 나물하는 법 다 까먹었어." 하는 말에 나물이며 멸치볶음, 미역국까지 끓여서 그날도 가져갔다. 음식을 만든 날은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 우리 집 에어컨은 고장이 나있었다. 더운 날 가스 불앞에서 음식하려니 땀도 나고 힘들었지만, 임신한 상태로 직장 다니는 딸을 생각하면 더위도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것을 딸이 알았을까. 평소 갖고 싶어 했던 가방을 사준다. 반찬해 준 값이라면서.

딸은 항상 그랬다. 내가 뭔가를 해주려하면 괜찮다고. 해주면 '땡큐" 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거리감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라 생각했다.

어젯밤 늦게 카톡으로 "엄마, 나 임신했을 때 힘들었겠다, 나는 예정일이 겨울인데도 이렇게 힘든데 엄마는 9월에 나를 낳았으니." "내가 철없을 때 널 가져서 힘든 줄 몰랐고, 기억도 안나." 라고 말했다.

딸이 "ㅋㅋ, 철없을 때 ㅎ, 잘자."

나는 아이 둘을 낳으면서도 엄마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 보려한 적이 없다. 김치며 반찬을 부산에서 서울로 매번 보내올 때도 고맙다는 생각은커녕, 택배도 제때 뜯지 않아 생김치가 묵은지가 될 때도 있었고, 생굴 김치는 변해서 버린 적이 허다했다. 엄마는 우리 집에 오면 냉장고 정리부터 했다. 보내준 음식이 쌓여있고, 못 먹게 되어있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어땠을까.

엄마는 무엇이 필요한 지 말하기도 전에 보내주었는데, 김치, 생선, 고춧가루, 깨소금, 액젓 같은 것은 우리 집에 떨어질 날이 없었다. 맛있다고 보내준 강경 젓갈이 담겼던 통은 10년도 더 되었는데, 아직도 베란다에 있다. ‘젓갈’이라고 엄마가 직접 적어 붙여놓은 통을 버릴 수가 없었다.

신혼 때, 조선간장과 진간장 구별을 위해 엄마가 포스트잇으로 각각 이름을 붙여놓았던 것이 생각났다. 엄마는 젓갈도 다른 것과 구별해 놓기 위해 붙여놓았을 것이다. 엄마 눈에 나는 여전히 어설픈 주부였다. 엄마가 써 붙여놓은 글자는 아직도 엄마의 손끝 온기를 품고 있다.

언젠가부터 고춧가루를 직접 구입하면서, 뜨거운 불앞에서 딸을 위한 요리를 하면서, 돌아가신 엄마의 정성이 더욱 피부에 와 닿았다. 그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던 생각도 이제 마침표를 찍었다. 엄마에게 ‘고맙다’ 라는 말을 한번이라도 했었다면,….


딸이 몸살이 나서 회사를 가지 못했다고, 고추장찌개 먹고 싶다고 한다.

1, 돼지고기와 고추장에 아보카도 오일 넣어 달달 볶는다.

2, 고추장 기름이 예쁘게 잘 나오면 조선간장 약간 넣고 볶다가 물을 자작하게 넣어 센 불에 끓인다.

3, 물을 재료의 두 배쯤 넣어 센 불에 끓이다가 중불로 낮춰 물이 반쯤 졸여질 때까지 끓인다.

3, 준비한 감자, 애호박, 양파, 대파 넣어 끓인 후 감자가 거의 익으면 마늘 듬뿍 넣고, 마지막 간은 조선간장으로 마무리한다.

고추장찌개를 만들어 차안에서 뜨거운 찌개가 흘러 넘치지 않게 넉넉한 유리 용기에 넣어 밀봉한 후, 딸에게 달려간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들이 할머니가 만든 총각김치 먹고싶다 해서 만들어봤는데. 그 맛이 나지 않는다. 무말랭이 김치, 소고기 장조림, 돼지고기 굵직하게 썰어 넣은 김치찌개, 매운탕…,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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