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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라희 May 17. 2024

어른에게도 놀이터가 필요해

<스누피 가든>

- 홍재승, 제주시 구좌읍, 2020

2021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준공건축물 부문 우수상


     

호숫가에 스누피가 앉아 먼 산을 바라본다. 까만 코에 까만 귀, 하얀 몸체를 가진 강아지, 어린 시절 애니매이션으로 봤던 그 스누피가 실물 크기로 눈 앞에 있다. 야구장에서 투구 폼을 선보이기도 하고, 폭포수가 떨어지는 돌다리를 노란 우드스톡과 함께 총총 건너기도 한다. 나무 구름사다리를 건너며 모험의 세계로 빠져들었다가 장작을 세워두고 한낮의 캠프파이어를 즐기기도 한다. 언젠가 애니메이션에서 봤던 장면들이 현실의 페이지로 튀어나왔다.


입장할 때 언젯적 스누피냐며 시큰둥하던 때와 달리, 그야말로 스누피 월드라고 할 만큼 거대한 놀이동산에서 난 숫자의 나이를 잊고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간다. 어둑어둑해지는 줄도 모르고 내가 만든 세계 안에 빠져들어서 하하호호 신나게 웃고 떠들던 그 때, 세상 걱정과 근심 따위는 무섭지 않았던 천진난만하고 당돌한 내 안의 어린아이와 만난다.


제주 구좌읍 아부 오름 근처에 자리를 잡고 지난 2020년 7월에 개장한 스누피 가든은 중산간 지대의 척박한 땅에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 비현실의 장을 열었다. 10만 평 부지에 달하는 규모에 스누피와 피너츠, 그의 친구들과의 추억을 공간별로 담아냈다. 


물결치는 듯한 하얀 외벽이 인상적인 가든하우스에는 5개의 테마홀과 카페 스누피와 피너츠 스토어가 속속 들어와 있다. 애니메이션의 공간 속에 들어와 있다고 느낄 만큼 실감나게 재현된 각각의 공간은 색색깔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무표정한 아빠도 뻗대던 엄마도 이전에 보지 못했던 해맑은 표정과 장난스러운 포즈로 인증샷을 남긴다. 


이에 더해 찻잔마다 스누피 얼굴이 커피 아트로 그려져 나오는 카페 스누피에서는 그 모습만으로도 귀여워서 사진 찍느라 바쁘고 차마 입에 대길 아쉬워하는 모습이다. 펜과 노트, 인형, 머그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굿즈가 들어찬 피너츠 스토어에서는 몽땅 갖고 싶은 마음에 물건을 품에 안았다가 놓았다가 또 집어드는 모습도 보인다. 모두가 스누피 가든에서의 즐거운 기억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일 테다.


실내 테마홀에서도 신나게 놀 수 있는데 야외 가든으로 나가면 놀거리와 볼거리가 더욱 넘쳐난다. 소설왕 스누피 광장에서는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 속에서 들판에서 뜀박질도 하고 개울에서 돌다리도 건너고 풀숲에서 숨바꼭질도 할 수 있다. 피너츠 사색 들판에서는 총천연색 꽃밭에 뒤섞여 꽃이 되어보고 들풀 사이에서 바람결을 느껴보며 인생샷을 남겨보자.


이렇게 거대한 규모의 놀이터를 누가 만들었을까. 어린이는 물론이고 어른까지 단숨에 마음의 문을 열어젖히는 공간을 설계해낸 이는 아마도 순수한 어린이의 마음으로 곳곳으로 도면에 그려넣었을 것이 분명하다. 스누피 가든은 건축가 홍재승의 건축 작품이다. 홍재승은 제주 안에서도 굵직한 작품을 많이 남기고 있다. 


물방울 작가로 유명한 김창열 작가의 미술 작품을 전시한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도 그의 작품이다. 마치 무덤 속에 들어가 조용히 명상을 하듯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김 화백의 요청에 따라 지어진 그곳은 철저히 빛과 그림자를 통제한 건축이다. 공간 속에서 보이는 모든 풍경은 철저히 계산되었고 의자 하나 돌덩이 하나 존재의 이유가 충분하다. 이와 반대로 스누피 가든은 갖가지 빛과 색의 향연을 선보이며 공간 가득 유쾌함이 흘러넘치게 만들었다. 이곳도 물론 코너를 돌면 또 다른 공간이 나오고 이어지는 계산이 분명하지만 또 한편으로 그저 움직임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되는 해제의 건축이다. 


이에 제주 안에서 홍재승 건축가의 두 작품만 비교해보더라도 판이한 성격의 공간을 같은 인물이 건축했다는 데에 놀란다. 배우로 치면 팔색조 같은 천의 얼굴을 가진 건축가라 말할 수 있겠다. 그만큼 건축 작품마다 온전히 몰입해서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자신의 색을 철저히 지우고 그 공간이 추구해야 하는 목적과 가닿으려는 목표에 부합하는 건축을 해낸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것이야말로 건축가 홍재승의 재능과 매력을 설명하는 말로 타당하다.


스누피의 작가는 미국의 만화가 찰스 먼로 슐츠는 어린 시절의 자신이 엉뚱한 외톨이 찰리와 닮았다고 했다. 그런 어린 시절의 자신과 놀아주고 세상을 함께 경험해주는 친구들을 만화로 그려 넣었다. 그로부터 위로받고 힘을 내어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찰스 먼로 슐츠가 만화 속 친구들과 뛰어놀며 위로를 받았던 것처럼, 하루쯤 자신을 둘러싼 족쇄를 내려놓고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뛰놀 수 있는 놀이터가 우리 어른에게도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애니메이션 스누피의 명대사 중 하나는 ‘일단 오늘 오후는 쉬자’ 이다. 이곳 스누피 가든에서만큼은 모든 걸 내려놓고 내 자신에게 오후의 시간쯤은 내어주자. 어른들의 놀이터 스누피 가든을 만든 이들은 톱니바퀴 같이 돌아가는 일상 속 우리에게 그와 같은 던지는 메시지를 전하는 게 아닐까.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금백조로 930

운영 시간: 일~월요일, 하계(4월~9월) 9:00~7:00/동계(10월~3월) 9:00~6:00/연중무휴

입장료: 성인 19,000원, 청소년 16,000원, 어린이 13,000원, 제주도민/경로/장애인/국가유공자 할인 적용

문의: 064-903-1111

홈페이지: https://www.snoopygard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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