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다시 찾은 촛불 집회, 그 소회

- 달라진 세대와 경향, 집회는 신나고 재밌게

by 오색빛깔 라희뷰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집을 나섰다.


양말을 두 켤레 겹쳐 신고, 장갑을 두 개 겹쳐 끼고, 등산용 겨울조끼에 롱패딩 점퍼를 입고, 귀마개 달린 하얀 털모자를 눌러썼다.
세상에. 이걸 8년 만에 다시 쓸 줄이야.
창고에 넣어뒀던 LED촛불을 상자를 뒤적거려 찾아냈다. 배터리를 바꾸니 불이 잘 들어왔다. 종이컵과 양초도 더 챙겼다.
촛불집회는 20~30대 층이 상당히 많았다. 친구와 연인이 같이 오기도 하고, 지인들이 그룹을 지어 뭉쳐다니기도 했다. 더러 생경한 눈으로 바라보는 외국인들도 있었다.


촛불집회는 분노와 슬픔이 녹아있지만, 그럼에도 그 표현방식은 춤추고 노래하고 구호를 외치는 축제였다. 그렇게 신나고 즐겁게 해야, 우린 그 혹한의 추위 속에서 버텨낼 수 있었다.
8년만의 촛불집회는 세대교체라고 해야 할까, 대세의 흐름이라고 해야 할까, 새롭고 신기했다.


우선 내 LED촛불이 발하는 불빛이 너무 작고 약하다고 느껴질 만큼, 크고 강력한 빛을 발하는 아이돌 응원봉이 상당히 눈에 띄었다.
또한 선곡 스타일이 달라졌다. 8년 전 그때는 민중가요를 개사한 곡이 많이 틀어졌다면, 이번에는 최신가요를 적극 활용해서 참여한 시민들이 알아서 개사해 부르는 방식이 새로웠다.
로제와 브루노의 '아파트' 노래 가사의 '아파트 아파트~아파트 아파트~' 라는 중독성 있는 후렴구는, 집회 동안 '탄핵해 탄핵해~ 윤석열 탄핵해~' 로 자연스럽게 개사되어 불렸다.
물론 그중 내가 중고생 때 들었던 노래도 들렸다. HOT의 '캔디'나 GOD의 '하늘색 풍선'도 따라 부르면서 추억이 새록새록 피었다. 그중 빅뱅의 '삐딱하게'도 인상적이었는데, 요즘 다시 활동을 재개한 지드래곤과 빅뱅의 공연을 보면서 시간을 초월해 정서를 공유하는 힘을 느꼈다.


국회의사당 역이 혼잡하여 무정차 한다기에, 영동초나 영등포평생학습관에 내려서 걸어가야 하나 했는데, 여의도역 정차가 17시 17분부터 풀리면서 조금 더 가깝게 내릴 수 있었다.
도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의도역에 내려 여의도공원을 가로질러 국회의사당을 바라보며 걸어 가는 길,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이들이 지하철역 정차가 풀렸는지 물었고, 이제 막 도착해서 집회에 참여하는 이들은 기꺼이 친절하게 역 상황을 전해주었다. 그 사이에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일종의 '임무 교대'와 같은 연대감과 서로를 향한 믿음과 지지가 묻어 있었다.

그렇게 껴입었어도 참 추웠다. 몸이 얼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쳤다. 두꺼운 옷으로 몸이 둔해서 춤이라기 보다는 사실상 무릎을 굽히고 팔과 몸을 흔드는 것이었지만, 그것도 꽤 도움이 되었다. 개중에는 해당 곡의 아이돌 시그니처 댄스를 추는 이들도 있었고, 화면으로 조명해주면 민망하지만 재밌어하는 표정이었다. 마치 야구장에서 응원하다가 전광판에 비춰진 관중 같았다.

집회 단상의 사회자는 여성 분이었는데, 힘차고 꽉 찬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국회 안팎의 상황을 전달하고 집회 참여하는 시민들을 인솔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무엇보다 평화적인 촛불집회를 강조하면서, 경찰과 충돌하지 않도록 당부하고 대치적인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이끌었다. 조짐을 읽고 시민들에게 공유하면서, 더 신나고 즐겁게 촛불집회를 진행하자며 추위에 떨면서도 그 자리를 지키고 선 시민들을 토닥였다. 이렇게 평화적인 집회라는 믿음을 주었기에 우리같은 어린(?!) 소시민들은 안심하고 마음껏 촛불집회에 참여할 수 있었다.

국회의사당이 마주보이는 자리에서 시민들은 소리높여 외쳤다. 표결에 참여하라고. 투표하라고. 부결시키더라도 일단 와서 투표하고 의사를 표하면 될 것 아닌가.
의회가 진행되는 중에 퇴장한 그 정당은 총회를 한다며 의원들을 한 방에 몰아넣고 탄핵 표결조차 참여하지 못하게 막았다. 당론이 정해졌다며 전원 퇴장시켜 표결조차 원천 봉쇄하고, 한 방에 가두고(!) 누가 표결하러 갈까 싶어서 감시하고 눈치보고 있었을 그들의 행태에 한심했다. 저들은 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나랏밥을 먹고 사는 걸까.

발의 후 00시 48분까지 탄핵투표는 진행될 수 있었지만, 국회의장은 저들이 투표 의지가 없고 이 추운 날 시민들을 더 이상 세워둘 수 없다며 종료를 선언했다. 시민들은 괜찮다며 계속 기다리겠다고 답을 했지만 오늘 안에 해결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새벽까지 버티고 있긴 힘들었을 것이다.

9시 40분 경 촛불집회는 마쳤다. 여의도 광장에, 도로에 시민들이 쏟아지듯 꽉 채워졌다. 그럼에도 모두가 신호를 지켜 길을 건넜고, 삼삼오오 오늘의 소회를 나누며 이동했다. 뛰거나 밀치는 상황 없이 서로 간의 공간을 두고 차분하고도 씩씩하게 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쓰레기 정리를 위해 봉투 들고 안내하는 분들에게 인사하는 이들도 있었고, 질서 유지하려 안내하는 경찰을 보고 우리 모두가 참 고생이 많다며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도 보였다.

문득 생각했다. 아, 당분간 한동안은 매 주말 출근하듯 여길 오겠구나. 그리고 이 수많은 이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들에 대한 왠지 모를 고마움과 든든함, 연민과 애틋함이 느껴졌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 라는 작품처럼, 내 나라에 치를 떨며 버리고 떠나버릴 수도 있는데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고쳐 써보겠다고, 이날 이 추위에 다들 한 마음으로 모인 것이 아닌가. 그것만으로도 한국이라는 나라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 비난하고 지적하더라도 그만큼 애정이 있어서라는 것. 그래서 한국은 아직 미래가 있다.

8년 전에는 6번 만에 수용이 됐으니, 이번에는 그 반절, 3번 안에 이루어지도록 힘써보자.

그렇다. 대한민국의 힘은 시민에게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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