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카메라 프레임 속 수학-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결정적 순간>

by 오색빛깔 라희뷰

얼굴에 물음표를 찍어둔 사진

Henri Cartier-Bresson: Jean Paul Sartre © Henri Cartier Bresson


내게 가장 어려운 작업은 초상사진이다.

초상사진이란 누군가에게 물음표를 찍어놓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 얼굴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있는지 전달하는 것이다.

… 내가 좋아하는 초상사진을 찍는 방식은

사람들이 제자리, 즉 자신의 환경 안에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서식지에 있는 동물처럼 말이다.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1973

말끔하게 한쪽으로 빗어 넘긴 머리에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 어딘가를 응시하며 생각에 빠진 남자,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쓴 그의 오른쪽 눈은 사시다.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이 프랑스 파리 퐁데자르 다리를 사선 구도로 놓고 찍은 이 사진 속 인물은 장 폴 사르트르다.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전 <결정적 순간>을 돌아보면서 마음속에 들어와 지난날의 기억을 불러일으킨 사진들이 있는데, 그가 작업한 장 폴 사르트르와 폴 레오토의 초상사진이 그러했다. 사진을 통해 생각이 뻗어 나가 곁가지를 쳤다.

브레송이 언급한 초상사진의 작업방식에 근거해 사진을 다시 살펴보니, 그 묘미가 훨씬 살아났다. 사르트르를 찍은 사진에서 퐁데자르 다리를 중심으로 봤을 때, 한쪽은 프랑스 지식의 보고 한림원이 자리해 있고 다른 한쪽은 인류의 문화유산이 담긴 루브르 박물관이 있다. 또한 저 멀리에는 종교의 성지인 노트르담 성당이 보인다. 인물을 그 자신의 환경 속에 두고 사진을 찍었던 브레송이기에, 사르트르를 퐁데자르 다리에 세웠다는 데 의미가 있다.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가 ‘문명의 다리’라고 말한 바 있는 퐁데자르 다리는 자료를 읽고 보니 그야말로 인문과 문화, 종교를 아우르며 자신의 확고한 사상을 전파한 사르트르라는 인물을 축약해 설명하는 공간이었다. 이러한 브레송의 안목에 감탄했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자 사르트르는 노벨 문학상을 거부하고 사회운동에 앞장섰던 인물인데, 선천적으로 사시인 데다 키도 워낙 작고 못 생겼다고 생각해 사진 찍기를 싫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브레송이 찍은 이 사진만큼은 사르트르의 초상 중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을 받는다.


Henri Cartier-Bresson: Behind the Gare Saint-Lazare, 1932 © Henri Cartier Bresson

매거진 에디터로서 난 그간 인터뷰 취재를 할 때, 그 인물을 가장 나타낼 수 있는 공간에 찾아가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진행해왔다. 준비 단계부터 인터뷰이에 대한 자료를 읽고 정보를 취합한 다음, 그 인물을 가장 특징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소위 ‘그림이 될 만한 공간’의 후보를 꼽고 컨셉을 확정 지었다. 인터뷰이가 화가라면 작업실의 일정을 맞추고 취재 시간 전에 도착해 붓과 팔레트, 캔버스가 어지럽게 놓인 풍경을 연출적으로라도 만들어 배경으로 삼았다. 또는 작가인데 실제 집필실이 좋은 그림을 담긴 어렵다면 서재와 책상 등이 있는 공간을 찾아 그가 발간한 책들과 그의 손이 탄 책들을 꽂아 인물 뒤편에 배치했다. 가수라면 악기를 다룰 때 가장 편안한 표정이 나오기에 악기와 악보 등을 세팅해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할 수 있게 준비했다. 그렇게 메인 사진 한 컷 안에 그 인물에 대한 인상과 정보가 담길 수 있도록 포토그래퍼와의 작업을 이끌었다.

그러한 작업방식이 ‘그림’을 보는 눈을 키우기 위해 사진을 배우며 익힌 방식 덕인지, 에디터로서의 커리어를 쌓으면서 생긴 것인지 기억이 가물하다. 어쩌면 대학 졸업 후 영화사에서 연출부로 일할 때 배웠는지도 모른다. 한 컷을 찍을 때마다 모니터링을 하는 게 스크립터로서의 내 일이었으니 그러한 과정을 배운 지도.

여하튼 감각적으로 익힌 인물사진에서의 작업방식이 브레송의 초상 방식과 맞닿아 있다는 데에 기뻤다. 메인 사진 속 인물을 둘러싼 이미지로 스토리를 읽어내야 하는 독자의 입장을 고려해왔다는 게 옳은 방향이었다는 것을 확인받은 기분이라고 할까.


좋은 인물 사진의 요건


Henri Cartier-Bresson: Paul Leautaud © Henri Cartier Bresson

한편 1952년 프랑스 퐁트네오로즈에서 찍은 수필가 폴 레오토의 사진도 인상적이었다. 야외 소파에 파묻히듯 걸터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꼭 다문 입으로 생각에 잠긴 옆모습의 노신사. 나뭇잎이 하늘거리는 싱그러운 배경이 노신사의 힘줄이 도드라진 두 손과 미간과 턱에 잡힌 주름과 대비되어 보이는데, 그만의 휴식과 평온함은 흐르는 시간이 계속될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 사진을 보면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저서와 ‘처음처럼’이라는 제목의 잠언집으로 유명한 신영복 선생의 초상사진이 떠올랐다. 한겨레 신문에 실린 보도사진이었는데, 일반적인 보도사진과 다른 결로 인물의 분위기를 표현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하얀색 커튼이 드리워진 곳에 소파에 기대어 앉은 신영복 선생의 옆모습이 역광으로 찍힌 사진이었다.

물론 인터뷰 메인 사진은 싱그러운 나뭇잎을 배경으로 로우 앵글의 정면 얼굴 컷으로 발간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신영복 선생께서 지병으로 생을 달리하셨기에 추모의 의미로 그때 찍은 사진 중 공개되지 않았던 귀한 B컷이 실린 것이었다.

선생의 촬영을 맡았던 분은 시골 분교를 테마로 작업을 하는 사진가이자, 한겨레 신문사에서 사진기자로 20여 년간 일해온 강재훈 님이었다. 강재훈 사진가는 수많은 단체전과 10여 번의 개인전을 갖고 사진집과 에세이 등 10여 권이 넘는 책도 펴내셨다. 한겨레 교육센터에서 자신의 이름을 단 사진 수업 20년 넘게 운영해온 사진 교육가이시기도 하다.


신영복 선생 © 사진가 강재훈/한겨레신문

굴곡진 현대사 한복판에서 살아오신 신영복 선생을 사진 한 컷에 표현하기 위해 어떤 고민이 있었을까. B컷 촬영 후기를 읽어보니 그 모든 상황이 눈에 그려졌다. 진정 눈물겨운 삶의 시간을 견디어온 인터뷰이를 만나 7~8시간 동안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뷰파인더로 인물을 지켜보면서 가장 진정성 있게 표현될 순간을 포착하려 기다리며 숨을 죽였을 것이었다. 카메라 뒤편에서 소리 내지 못하고 눈물을 삼켰을 것이 분명했다.

그 노고를 글자마다 녹아 있었다. ‘오직 카메라의 사각 창을 통해서만 인물을 바라보려 노력’했고, ‘초점과 노출을 놓치지 않으려고 긴장의 끈을 조이다 팔과 목에 경련이 일고 눈이 아파 눈물이 났다’는 이야기에 그 모든 게 담겨 있었다. 그건 진정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 취재이고 촬영이었다. 사진으로, 글로 나는 그걸 느꼈다.

강재훈 사진가는 내가 초짜 에디터 시절에 막무가내로 인터뷰 요청을 드려서 만나 뵌 적이 있다. 당시 기자로서 내가 분명 어설펐을 텐데도 기꺼이 인터뷰를 수락해주시고, 기자로서 대우해주셨다. 성실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직접 출간한 사진집까지 꼼꼼히 챙겨주신 분이었다. 당시에는 사진까지 내가 촬영을 해와야 했는데, 대가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포즈를 요청하려니 얼마나 긴장되던지. 조리개를 조정하고 셔터를 누르는데 손끝이 덜덜 떨렸던 것 같다. 그러나 감사하고 죄송해서라도 잘하고 싶었다. 강재훈 사진가는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내가 무안하지 않게 카메라 세팅값까지 직접 다 해서 내게 카메라를 쥐어주시고 포즈도 이리저리 취해주셨다.


<들꽃 피는 학교, 분교>, 경기 화성시 우음도의 우음 분교 폐교식 풍경 © 사진가 강재훈


그때 배웠다. 인물 사진은 진정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져야만 그 인물의 느낌이 온전히 담긴다는 것을. 대가 앞에서 주눅 든 촬영이었지만 나름 애쓴 흔적이 사진에 남아 있었다. 더불어 그 인물의 삶을 그대로 흡수하고 생각과 느낌을 주고받은 상황에 찍어야 진정 좋은 사진으로 기록된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았다. 후에 모니터를 통해 강재훈 사진가의 얼굴과 표정을 봤을 때 그분이 나를 인간적으로 대해주신 그 따뜻한 기운이 그대로 배어 나왔다.

더불어 인물을 촬영하는 사진가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마음 깊이 담겨 있어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를 친히 대해주었던 강재훈 사진가의 배려만큼이나 그분이 촬영한 사진에는 인터뷰이를 진정 배려하는 마음이 묻어났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인물 사진에 대한 요건은 그것이다. 인간에 대한 진실된 애정과 관심, 배려. 그건 강재훈 사진가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닮은꼴이었다.


사진가의 선택은 프레임

나에게 사진이란,

머리와 눈과 그리고 마음을 하나의 축에 놓는 것이다.

그것은 삶의 방식이다.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1973


Henri Cartier Bresson 사진전 포스터 © FOUNDATION HENRI CARTIER-BRESSON UNQP LTD. KATE FARM

한 장의 사진을 찍을 때, 뷰파인더 안에 어떠한 요소를 넣을 것인지 선택해 화면을 구성하는 것을 프레이밍(Framing)이라고 한다. 프레임 안에 포함된 요소는 곧 사진가가 전하기 위한 주제를 나타내기 위해 선별된 것들이고 이는 곧 사진가의 미학과 연결된다. 그래서 사진 수업에서는 화면 안에서 덧셈과 뺄셈을 하듯, 주제와 연결된 요소 외에는 최대한 빼고 더 많이 덜어내라고들 가르친다. 프레이밍은 사진에서의 수학과 같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촬영 단계에서의 프레이밍을 중시했다. 현대에는 디지털 사진이 도입되어 화소수가 높아지고 디지털 사진 편집 프로그램이 발전하면서 후대 사진가들은 촬영 후의 크로핑(자르기)과 후보정을 오히려 선호한다. 그러나 사진을 인위적으로 크롭핑(자르기)하는 걸 극도로 싫어했던 브레송은 프레이밍 방식에 있어 원하는 구도를 철저히 계산하고 카메라를 세팅한 채 ‘고양이처럼’ 뒤편에 웅크리고 있다가 움직이는 피사체를 발견하면 잽싸게 순간을 포착하는 방식을 택했다. 자신이 촬영 때 프레이밍 한 화면은 곧 주제이기에 어느 부분이라도 잘려나가면 주제가 훼손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Henri Cartier Bresson © FOUNDATION HENRI CARTIER-BRESSON UNQP LTD.

프레이밍이라는 단어는 매체로 와서 미디어 프레이밍(media framing)이라는 단어로 다시금 자리매김했다. 어떤 사건이나 이슈를 보도할 때 특정한 프레임을 이용해 보도하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사회문화적 환경과 상황에 따라 저마다의 프레임을 갖게 된다. 같은 사건과 상황임에도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확대하며 삭제할 것인지를 미디어에서 결정해 보도하기에 대중은 자신이 주로 접하는 매체에 따라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된다.

사진 이론서에서는 미디어가 대중에게 사건과 상황의 어느 부분을 비추는지에 따라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가 되는 사례를 그림으로 소개한다. 또 다른 예시로 지쳐 주저앉은 한 병사를 두고 양쪽에 선 두 명의 병사 중 누구의 어떤 부분을 조명하는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그림도 있다. 이처럼 지금 우리가 뉴스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보도는 전체를 다 보여주지 않고 프레이밍 된 극히 일부만 보고 있는 것일 수 있다는 자각이 필요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보도사진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자신 또한 전쟁에 동원되어 군대에서 복무했고 독일군에 포로로 잡혀 3년간 노역을 당했다. 전쟁 이전의 그는 세계 각국으로 여행을 다니며 초현실주의에 방향을 둔 예술 사진 활동을 했지만, 수용소 생활과 지인들의 실종 등 전쟁이 그에게 준 상처와 깨달음은 브레송에게 있어 사진 세계의 바탕을 바꾸게 된 계기였다. 세 번의 시도 끝에 탈출에 성공해 결국 프랑스로 돌아올 수 있었고 종군기자로서 자신의 임무와 역할을 이어가 결국 세계적인 포토저널리스트가 되었다.

그가 프레이밍을 중시하고 한치의 타협도 허용하지 않았던 건 그러한 삶의 경험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자신이 눈으로 보았던 참상을 사각 프레임 안에 담아내기에도 부족한데 그것마저 잘라내 진실을 저버릴까 봐. 그렇게 삶의 경험에서 비롯된 사진은 흑백이기에 더 깊고 다양한 층위를 표현하는 사진으로 기록되는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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