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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hyun May 09. 2020

노이바이 공항에서 동생에게 쓰는 편지

내 동생에게






안녕? 잘 지내고 있지? 하하 고작 며칠 지났다고 이렇게 물어보는 게 조금 낯간지럽긴 하다. 하노이 마지막 밤이야. 곧 새벽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계속 연착이 된다. 아 너무 피곤하다. 언제 타라고 할지 몰라서 탑승구 앞에서 대기 중이야. 몇 시간 후면 만나겠지만 이렇게 편지를 써.


무작정 비행기 표 할인한다는 알람에 너한테 같이 가자고 했는데, 네가 휴가를 못 낸다고 해서 그날 오전 내내 혼자라도 갈까 고민했어. 그러다가 선배들이랑 점심 먹으면서 얘기를 꺼냈어. 약간 답정너 모드로 물어봤는데 “혼자가 뭐 어때? 지금 아니면 못 가”라는 말에 용기가 생겨 비행기 표를 끊어 버렸지. 그때 한 달도 안 남았었지만, 바빠서 준비할 시간도 없었어. 혼자 가는 여행이라서 무계획이 왠지 더 느낌 있을 것 같았어. 혼자 여행에 대한 환상을 잔뜩 안고 왔었지. 게다가 베트남은 물가도 싸고, 여름을 좋아하는 내가 너무 가보고 싶었던 곳이어서. 내가 너한테 만날 다낭이든 무이네든 베트남 가자고 했잖아.






근데 여기 날씨는 정말 더워도 너무~ 덥다. 그러면 네가 한국도 충분히 더웠다고 말하겠지만, 여긴 진짜 상상초월이야! 습도가 한국의 서너 배쯤은 되는 것 같아. 숨이 턱턱 막히고 금방 샤워를 하고 길을 나서도 매연 섞인 습한 공기 때문에 다시 숙소로 돌아와 나가기를 망설였지. 왜 사람들이 나한테 자꾸 더울 때 더 더운 나라만 골라가냐고 놀리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어.


그리고 나는 이제 ‘베트남=오토바이’로 기억할 듯해. 오토바이를 피하려다가 많이 부딪힐 뻔했어. 여긴 독특한 오토바이의 문화가 있는 것 같아. 파란 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도 빵빵거리면서 돌진하고 차선도 무용지물이어서 역주행도 많이 하더라고. 다가오는 오토바이 운전자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걸으면 알아서 피해 간다는 누군가의 경험담대로 시도해봤는데, 나는 그게 잘 안되더라. 몇 번 그러니까 무섭고 이게 꽤 큰 스트레스가 돼버렸어. 너랑 같이 왔으면 겁쟁이 우리 둘 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길에 얼어있었을 거야. 나는 익숙지 않아서 그랬고, 현지인들은 오토바이 문화가 익숙한 지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아. 내가 겁이 많아서 그렇지 뭐. 그래서 둘째 날부터는 아주 가까운 거리도 택시와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어.



그리고 혼자만의 여행이 생각만큼 멋지지는 않더라.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할 게 없더라고. 그래서 마지막 날엔 하롱베이 투어를 갔지. 혼자도 괜찮다는 여행사 직원의 말에 씩씩하게 갔지만, 외로움만 더 깊게 느끼고 왔어. 내가 원래도 혼자서 뭘 못하지만, 하롱베이 투어는 정말 고독 그 자체였어! 하롱베이는 진짜 절경이었는데, 그걸 보고 ‘멋지다’라고 말하면 공감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너의 그 시큰둥한 반응도 좋았을 거야. 혼자라서 싱글 차지가 붙는 것처럼 행동에도 심리적 제약이 생기더라고. 중간에 큰 배에서 잠깐 내려서 2명이서 노를 젓는 카약이나 여러 명이 같이 탑승하는 뱀부 보트로 갈아타는 시간이 있었어. 근데 사실 나는 카약을 타고 싶었는데, 난감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뱀부 보트를 선택했지. 그리고 한국에서도 혼밥에 어색해하던 내가 선상의 즐겁게 떠드는 사람들 속에서 밥을 먹는 건 정말 곤욕이었어. 멋진 관광지에서 다른 사람들은 하하 호호 즐겁게 얘기하고, 맛있는 음식도 여러 개 시켜서 나눠먹고 사진도 서로 찍어주는 모습이 부러웠어. 이런 게 또 여행의 묘미잖아? 그래서 풍경 사진을 찍어서 너랑 친구들에게 보냈지. 혼자 여행을 즐긴다면서 카톡으로 누군가와 끊임없이 계속 얘기하고 있는 걸 깨닫고 피식 웃음이 났어. 혼자 여행... 어렵긴 어려웠어.









그렇지만 이번 여행을 후회하지는 않아. 외로운 순간도 많았지만 혼자여서 편한 순간도 있었어. 숙소도 사실 좋았어. 항상 누군가와 방을 같이 쓸 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거든. 그런데 이번에는 블라인드 조절도 내가 편한 대로 했고, 내 취향의 음악만 들을 수 있었고, 기다리지 않고 씻을 수도 있었어. 그리고 늦은 새벽까지 불을 켜놓을 수도 있었어! 또 화장대에 화장품들을 늘어놓고 쓰고, 침대도 넓게 쓸 수 있었어. 그리고 자고 싶을 때까지 자고 일어나고, 일정을 내 마음대로 수정할 수 있었어. 정말 이런 적은 처음이었어!! 그리고 혼자서 돌아다니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콩카페에 앉아서 멍도 때려봤지!




그리고 쇼핑은 또 얼마나 재밌었는지. 역시 쇼핑은 혼자 하는 게 최고야. 난 솔직히 선물 살 때가 제일 행복했어. 내가 부자가 된 기분! 베트남은 화폐단위가 크고 물가가 싸서 내가 부자가 된 것 같은 몹쓸 착각을 하게 돼. 방금 전 들린 공항 버거킹 메뉴판을 보는 순간 바로 개미의 현실로 돌아왔지만... 선물 사느라 마트에서만 환전한 돈의 1/4을 썼는데 그래도 너무 행복했어!! 가족들, 친구들, 회사 동료들, 그리고 평소에 감사했던 분들 생각하면서 사니까 점점 늘어나더라. 내가 보내준 사진 봤지? 어젯밤에 그 박스 뜯어서 캐리어에 넣느라 진짜 힘들었어. 돈이 많았으면 더 많이 샀을 텐데... 아무튼 네 것도 있으니 기대해도 좋아!







사실 이렇게 무작정 떠나지 않았으면 올해 내가 언제 또 여행을 갈 수 있었겠어. 가끔 이렇게 생각 없이 저지르는 일도 필요한 것 같아. 해보니까 즉흥적인 여행도 나쁘지 않더라고. 지금 생각이지만 이런 기억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 같다. 낯선 곳에서의 여유로움이 정말 꿀 같으니까 말이야. 그것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었어. 그 시간 회사는 평소처럼 바쁘게 돌아갔겠지 하하. 근데 다음 여행은 꼭 같이 오자! 너랑 가면 친구랑 같이 간 기분도 들고, 그리고 서로 너무 잘 알아서 혼자인 것처럼 편안하니까! 너의 얘기도 들어봐야겠지만, 너도 내가 제일 편하지?ㅋㅋㅋ






인천에 도착하면 연락할게. 몇 시간 후에 보자.






2019. 7. 중순

노이바이 공항에서 언니가.












이번 주 글쓰기 모임 주제는 ‘최악의 여행지에서 쓰는 편지’였다. 최근에 다녀온 하노이가 최악의 여행지는 아니었지만, ‘오로지 혼자 간 여행’이란 의미가 있어 쓰게 되었다. 솔직히 힘든 것도 많았고, 좋은 것도 많았다. 최대한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서 쓰려고 했다. 그 당시에 여행기를 써보고 싶었는데, 어떻게 써야할 지 몰랐다. 근데 동생한테 말하듯이 쓰니까 그래도 주절주절 쓰게 되었다. 더 잊어버리기 전에 지금이라도 기록을 해서 다행이다!! 서간문 형식은 처음 시도해봤는데, 새롭고 재밌었다.


원래는 ‘지금의 내가 하노이에 있는 나에게 편지를 쓰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점점 쓰다 보니까 결국 잔소리와 훈계만 남았었다. 그래서 방향을 틀게 됐지만, 그래도 나에게 앞으로 여행할 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2가지 생겼다. 첫째는 메모와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많은 부분이 희미해져 버렸다. 몇 장밖에 없는 사진을 뒤적여보며 기억을 더듬으려고 애썼다. 숙소에서 간단하게 하루를 정리하며 메모하면 좋을 것 같다. 그때 느꼈던 느낌들을 아무것도 없이 다시 불러내기엔 어려우니까 말이다. 둘째는 나를 위한 선물을 사 오는 것이다. 나의 경우 보통 여행지에 가면 주변 사람들에게 줄 선물을 많이 사 온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고, 작은 선물을 내밀 때 정말 신이 났다. 그런데 정작 나를 위한 선물은 잘 사 오지 못하는 것 같다. 앞으로는 나를 위한 선물 꼭 하나쯤은 사 왔으면 좋겠다. 그걸 보고 가끔 여행지에서 좋았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게.






2020.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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