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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hyun May 09. 2020

[영화감상평] 리틀 포레스트(Little Forest)

※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혜원은 서울에서 여느 취준생처럼 빡빡하게 아르바이트와 시험공부를 병행한다. 그리고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같이 준비하던 남자친구만 시험에 합격하고 자신은 낙방한다. 힘든 서울 살이에 지친 혜원은 조용히 고향에 내려오게 된다. 처음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잠시 머물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릴 적 친구들과 만나 함께 농사도 짓고, 자연 속에서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중 혜원은 무엇을 결심한 듯 서울에 올라간다. 하지만 역시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답답했던 상황에서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혜원은 시험에 합격하지도 않았고, 사귀던 남자친구와도 헤어졌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여전히 아르바이트도 해야 했다. 영화는 혜원이 다시 고향에 내려오는 장면에서 끝난다. 아주 밝게 웃으면서 집으로 걸어간다. 














혜원이 고향에 완전히 내려온 것인지, 잠깐 휴식을 취하고자 내려온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혜원의 선택이 어느 쪽이든 그래도 한 가지 얻은 건 있었다. 작은 숲, 쉴 곳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동안 혜원에게 고향집은 늘 떠나고 싶은 공간이었고, 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편지 한 통 남기고 자신을 떠나버린 엄마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키는 공간이다. 그래서 엄마와 추억이 얽힌 고향집은 혜원에게 달갑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엄마와의 추억과 엄마에게 물려받은 요리 솜씨 덕분에 고향집에서 잘 지낼 수 있었고, 결국 거기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리고 엄마를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자극적인 이야기나 장면은 하나도 없는데, 집중하게 만드는 이상한 영화였다. 나오는 영상이 참 예쁘고 편안했다. 어찌 보면 너무 잔잔해서 심심한 영화일 수도 있다. 그래서 미루다가 보게 됐는데, 억지 감동이나 교훈도 없고, 밑도 끝도 없이 무작정 위로하지 않아 좋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취준생들이 겪는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이다. 심지어 ‘힐링’을 하고 돌아와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상황까지. 슬프지만 이게 현실이니까. 






하지만 고향집에서의 생활은 낭만적으로 그려진다. 혜원은 좋은 요리 솜씨도 있고, 좋은 친구들도 곁에 있다. 그리고 농사 또한 매우 힘든 일인데 척척해나간다. 이 점이 판타지라며 비현실적이라는 평도 있다. 하지만 인생에서 하나쯤은 좀 순탄한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뚝딱 해내는 혜원의 고향집 생활처럼. 우리도 정말 사소한 것일지라도 잘하는 일이 하나는 있는 것처럼. 이 정도 약간의 판타지적 요소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삭막한 현실에서 혜원이도 숨 쉴 구멍이 필요하지 않는가. 











나의 ‘작은 숲’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내가 지금까지 찾은 것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기, 책 읽기, 글쓰기, 그리고 여행 가기 등인 것 같다. 이것들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능하다면 아주 그 숲속에 꾹 눌러앉고 싶다. 그렇지만 삶이란 게 지치고 힘들어서 작은 숲으로 도망 오면, 회복할 새도 없이 금방 또 현실로 나가야 한다. 이 과정의 무한 반복이다. 그래도 다들 그렇듯이 그냥 그렇게. 작은 숲에 기대면서. 100분 만큼은 이 영화가 나에게 작은 숲이 되어 주었다. 작은 숲에서 쉬었던 순간을 기억하고, 다시 쉴 날을 기약하며 또 살아간다. 






2018. 11. 28. 





※ 사진출처: 리틀 포레스트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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