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 세상으로 출근한다.

닌자거북이의 삶을 시작하다.

by 코와붕가

2000년 밀레니엄, 지하철 공사에 입사를 했다.

난 대학을 졸업하기 전 취업을 미리 확정 지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철도에 특성화된 국립 전문대다. 나름 전문대에서 자부심이 강한 곳이었다. 취업이 보장되고 학비가 싸서 형편이 그리 여유롭지 않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2000년 힘들었던 군생활을 마치고 2학기에 복학을 했다. 내게 남은 학교생활은 한 학기뿐이었다. 학교를 복학하고 전산 수업을 듣던 어느 날 과 조교로 있던 형(같이 입학했던 형, 즉 동기)이 군대를 다녀온 재학생과 복학생을 호출했다. 지하철 공사에서 6호선을 개통해야 하기에 직원이 필요하다고 학교로 연락이 왔다고 한다. 이후 우리는 면접 준비를 하고 급하게 입사시험을 치르게 됐다. 그렇게 학교 동기들과 졸업 전 입사에 성공하게 됐다.

우리는 어엿한 직장인이 된 것이다. 동기들끼리 학교 후문에 있는 설렁탕집에서 회식을 했다. 당시 설렁탕도 우리에게는 호와스러운 음식이었다. 난 무엇보다도 갑갑한 학교를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다.


옛 안기부 건물이었던 연수원에서 신입직원 교육을 받았다. 여러 동기들과 어울려 연수원 프로그램을 수행하면서 재밌는 시간을 가졌다. 중간중간에 있는 미션은 지금 생각하면 따분하고 지루한 것이었다. 각 조를 짜서 산에 올라간다. 정상에서 미션을 받는다. 계란과 젓가락, 테이프를 준다. 미션은 이것들을 이용해 높이 던지고 나서 땅에 떨어졌을 때 계란이 깨지지 않으면 성공이다. 지금은 유치하지만 당시에는 창의적인 발상이었다. 마지막 시험에서는 노선도 중간중간에 비어있는 역을 써넣는 문제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이유는 당시에 노선도 시험지가 흑백이었다는 점이다. 노선도 시내구간을 봐보시라. 어떤가. 분간이 가능한가.

당시 8개 노선이 있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 학창 시절 익혔던 암기 필살기로 노선도를 외우기 시작했다. 필기하면서 외우는 동기, 노래를 만들어서 외우는 동기, 참고로 난 시조를 만들어서 외웠다. 각양각색이었다. 지금은 쉽게 어플로 검색하면 되지만 당시에는 바로 익혀서 현장에 가서 표를 팔아야 했다.


그렇게 연수원을 마치고 각자 명령받은 첫 발령지로 향했다. 이젠 실전이다. 나에게 첫 발령지는 김포공항역이었다. 그 당시 김포공항역은 인천공항이 만들어지기 전 유일한 국제공항이었다. 국내선과 국제선이 있어서 다양한 승객들이 넘쳐났다. 표도 팔아야 했지만, 다양한 고객 안내에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었다. 김포공항역은 신규직원들의 훈련소였다. 다행히 이곳에서 좋은 선배들을 만났다. 그들은 어수룩하고 나이 어린 나를 잘 알려주었다. 난 선배들을 돕기 위해 최대한 빨리 업무를 익히려고 뛰어다니면서 노력했다. 그중 가장 시급 한 건 ‘매표’였다. 창구에 앉아서 표를 파는 행위다. 처음에는 쭈뼛쭈뼛하면서 승객들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어지러웠다. 노선도를 일일이 찾아가면서 표를 팔았다. 한 성격 하는 승객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다. 그때 생각하면 진땀이 흐른다. 그렇게 한두 달 시간이 흘렀다. 한 손에는 지폐를 쥐고 한 손으로 표를 내 행위는 무아지경에 빠질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지금까지 표를 팔았다면 아마도 생활의 달인에 출연하지 않았을까? 노선도가 머리에 들어오면서 도착역 가격을 보지 않아도 될 만큼 능숙해졌다. 인간이란 놀랍게 적응하는 동물이다. 신기했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나서 선배들과 마셨던 소주 한잔. 한 선배가 해주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여기 좋은 회사야. xx 씨 지금처럼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 거야."

"그리고 출근할 때는 자존심은 두고 와. 그래야 편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선배의 말을 깨닫게 되었다.)


코와붕가! 난 이렇게 지하로 들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