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첫 사수

공익요원은 나에게 과외선생님.

by 코와붕가

정식 발령을 받다.


3주간의 5호선 K역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인근에 있는 B역으로 정식 발령이 났다.

이제부터는 깍두기가 아니었다.

그동안 신참직원 가르쳐주신 선배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 헤어지기 싫었다.

3주 동안 배우면서 선배들과 톱니바퀴처럼 움직였다. 조금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곳은 훈련소일 뿐이다. 명령이 나면 떠나야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평소에 선배들은 그것을 알고 가르쳐 놓으면 간다고 신규직원이 오는 걸 탐탁지 않아 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첫 폭탄을 안다.


명령을 받고 짐을 챙겨서 5호선 B역으로 향했다. 신병훈련소 역할을 하던 K역은 뜨내기 승객과 공항을 이용하는 환승객들이 많아서 복잡했지만, 발령받은 B역은 주변에 예식장과 88 체육관이 있었다.

내가 배정받은 반(교대근무 특성상 역을 발령받은 후 3개 반중에 한 반을 배정받는다.)은 역장발령을 앞둔

부역장과 순종적이고 살림꾼 역할을 하는 선배와 같이 근무하게 됐다. 지나고 나서 말하지만 그때 부역장은 직원들에게 안 좋은 평이 돌고 있는 사람이었다. 우연히 다른 반 선배에게 뜻밖에 이야기를 알게 됐다. 원래는 다른 분이 우리 반에 내정됐지만 극구 반대하여 내가 이 반으로 오게 됐다는 것이다 T.T

부역장은 그렇다 치고 윗 선배는 상사의 말을 잘 듣고 다른 직원들이 하기 귀찮아하는 걸 찾아서 하는 스타일이었다. 처음에는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는 점이 점점 불편했다.

왜? 우리는 1시간 단위로 매표를 교대한다. 하지만 이 선배는 다른 일을 하다가 오면 매번 매표시간이 늦어지곤 했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동기들과 얘기하면서 교대시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됐다. 매표실 교대는 당시에 중요한 것이었다.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었다.


부역장은 까칠한 성격이었다. 며칠 근무해 보니 왜 그와 근무하지 않으려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툭하면 불러서 실수한 걸 가지고 지적했다. "글씨를 왜 이렇게 쓰나?" "왜 이렇게 틀린 게 많아?" "어려서 잘 모르는 게 많구먼" "왜 내가 하는 말이 기분 나빠?" 돌이켜보면 고마웠냐고? 절대 아니다. 변명 같지만 그렇게까지 할 만한 일들이 아니었다. 회사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싫어하는 사람이 생겼다. 폭탄은 내 몫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역에 적응하고 있을 때였다.


“XX 씨는 군대로 치면 여기서 장교다. 사복에게 존댓말을 쓰지 마!”


역무실과 매표실이 따로 떨어져 있었고 선배와 거의 맞교대(책임자는 매표실 교대를 잘하지 않았다.) 하기 때문에 일을 배우기 어려웠다. 그런 슬림한 조직으로 돌아가다 보니 공익요원이 이런저런 일을 하게 됐다. 난 수시로 공익요원에게 물어봤다. "XX 씨 이거 어떻게 하죠?" "XX 씨 이것 좀 도와주세요" 정중히 존댓말로 했다. 존댓말을 했던 이유는 내 나이가 어려서였다. 당시 스물넷. 졸업도 하기 전이다. 그리고 공익요원 절반이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무엇보다 출신이 다양해서 함부로 하기 무서웠다^^

아무리 직원이라고 해도 조심스러웠다.


이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폭탄 부역장이 나를 불렀다. 당연히 이런 호출은 반가운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가면서 ‘또 혼내려는구나. 근데 뭘 잘못해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자네, 군대에서 장교가 사병에게 존댓말을 쓰는 걸 봤나!”

“아뇨”

“그런데 왜 매번 공익요원 놈들에게 존댓말을 쓰나!”

당시에는 어떤 대응도 하지 않고 죄송하다는 투로 끝맺음을 지었다고 기억한다.


이런 사실을 야간 당직 때 소주 한 잔 하면서 공익요원에게 말해 주었고 내 말이 과하더라도 이해해 달라고 했다. 이후부터는 부역장 들으라고 평소보다 크게 반말로 공익요원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까칠한 부역장이 있을 때만 그렇게 했다.

공익요원들은 웃으며 받아 주었다.

야간근무를 하면 선배와 돌아가며 당직근무를 섰다.

내 근무가 되면 야식을 시켜서 공익요원과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그들은 공익으로 오기까지 다양한 사연이 있었다.

아파서 온 사람, 학교를 마치지 못해서 온 사람 등등.

부역장 뒷 담화를 하면서 종이컵 속에 담겨있는 소주를 한 잔씩 넘겼다.


당시에는 너무도 어렸다. 슬기롭게 잘 참았다고 생각한다.

그때 부역장은 어떻게 됐냐고? 몇 달 후 옆역 역장으로 발령 났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직원 폭행 사고를 내고 자회사에 가서 퇴직한 걸로 알고 있다.

지금은 회사에 없다.

즐겁지 않은 추억이지만 잘 참아준 나를 칭찬해 주고 싶다.


‘난 장교가 되고 싶지 않다. 난 동료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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