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이란?
우리 조에 부역장과 선배가 발령이 났다. 당시 근무형태가 3조 2교대로 운용 중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역은 한 조에 세 명이 구성됐다. 막내였지만 두 명이 동시에 발령 나서 부담감은 컸다. 언제나 발령은 스트레스다. 새로운 곳으로 가는 직원이나 오는 직원이나 심적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새로 오신 분들은 같은 역에서 오셨다. 두 분은 다른 조였지만 꽤 친해 보였다. 발령이 나면 대게 커다란 종이박스에 짐을 싸서 옮긴다. 커다란 박스와 침구류를 사복과 같이 옮긴다. 서로 조가 달랐기에 시간차를 두고 역에 오셨다.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했다. 막내여서 짐을 푸는데 도와드렸다. 그런데....
박스와 침구류를 제외하고도 여행용 가방이 보였다. '여기에는 뭐가 들었지'라고 생각했다.
부역장은 가방을 공개했다. 가방 안에는 주식책이 가득 뭉개져있었다. 주식책을 처음 본 순간이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선배가 짐을 가지고 왔다. 이 선배는 간단한 짐을 가지고 왔다. 인상이 좋아 보였다. 부역장도 피부가 좋았다. 선배는 삐삐처럼 보이는 기계를 들고 있었다. 수시로 눌러서 보고 있었다. 크게 궁금하지 않았다.
부역장은 역간부 상조회 회장이라는 직책을 갖고 있었다. 지금은 없어졌다. 다른 곳에서 전화가 오면 부역장이 아닌 회장님을 찾곤 했다. 바쁜 분이었다. 선배는 사내다웠다. 전직 대의원다웠다. 우리 반은 나를 제외하고는 업무를 챙기지 않았다. 화가 나기보다는 새로웠다. 전과 다른 화면이었다. 난 기본적인 업무만 챙기면 거기서 종료된다. 두 분의 역할은 따로 있지만 보이지 않는 힘을 믿고 있었다.
내가 아니라 두 분이 향한 곳이다. 주간출근을 하면 전날 수입금을 챙겨서 은행에 수납한다. 대게 역장과 부역장이 하는 업무다. 그런데 우리 반은 부역장과 선배가 같이 갔다 왔다. 난 처음에 이상하게 생각했다. 왜 직원 두 분이 같이 가시지? 전에는 공익요원과 같이 갔다.
두 분은 객장에 가서 주식시장 상황을 살피고 오셨다. 나는 주식에 관심조차 없었다. 두 분의 일상은 출근해서 퇴근 때까지 주식이야기뿐이었다. 나는 소외됐다. 공익요원과 주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다고 두 분이 싫지 않았다. 매우 인간적인 분이셨다. 업무보다 인간관계에 대해 배우게 됐다.
부역장과 선배는 종목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나도 거기에 끼고 싶어서 계좌를 만들었다. 하지만 주식에 손이 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두 분의 투장방법은 철저한 '차트'와 '수급'을 보면서 하는 단기투자였다. 당시에는 그런 투자가 성행했다.
어느 날이었다. 선배가 매표 중에 소리를 질렀다.
"부역장님, 상한가 갔어요!"
"드디어 그 종목 가는구먼, 내가 갈 거라고 그랬지."
둘은 크게 웃고 크게 흥분해 있었다.
퇴근을 하고 1차 고깃집, 2차 나이트, 3차 나이트, 4차 단란주점까지 새벽닭이 울기 전까지 퍼 마셨다.
난 막내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두 분의 가방을 챙겨서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녔다.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좋은 일이라 축하해 줬고 기쁨을 같이 누렸다.
다음날 아침은 내가 견디지 못해(속이 좋지 않아)서 침실로 직행하곤 했다.
난 회식을 마치고 집 앞에 가면 항상 전봇대를 부여잡고 '오버잇트'를 했다. 긴장이 풀려서다.
두 분을 택시까지 태워 보내드기까지가 막내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부역장은 안타깝게도 중도에 퇴사를 하게 되셨다. 여러 이유가 있다고 들었다. 정확한 사실을 모르기에 이곳에 올리지는 않겠다. 지금은 처와 자식들하고 따로 산다고 한다. 초라한 삶을 살고 계신다고 들었다.
끝내 주식 부자는 되지 못하셨다.
선배는 회사를 옮겼다. '공항철도'로 이직해서 잘 살고 있다. 몇 년 전 한 장례식장에서 만났다. 명함을 받았는데 '팀장'이 돼 있었다. 이 분은 주식으로 성공하셨을까? 글쎄다.
그렇다면 난?
이제 내가 주식을 하고 있다. 방향은 두 분과 다르다. 저축하듯이 절세계좌(연금저축, IRP, ISA)를 통해서 매월 미국지수를 사고 있다. 가끔 내가 그때 같이 주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결론은 글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