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독시'가 생략한 것들에 대하여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을 보고

by 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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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관람 후에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이하 전독시)은 너무 많은 것을 생략했다. 그 결과, 성공한 IP를 영화로 구현하는 데 한계가 분명히 드러났다. 이 영화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생략해서 관객을 설득하지 못했다. 다만 '전독시'는 현재 한국에서 만들 수 있는 판타지 영화 수준에서는 기술적으로 뛰어나며, 설득에는 실패했지만 분명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향해 묵직하게 달려간다는 점에서 이렇게까지 악평을 받을 영화는 아니다.


'전독시'는 10년 동안 연재된 소설처럼 멸망해 버린 현실에서 유일하게 결말을 알고 있는 김독자(안효섭)가 소설 속 주인공 유중혁(이민호)과 함께 세상을 구하기 위한 대장정을 그린 영화이다. 2025년 7월에 개봉했고,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전독시'는 유명 웹소설 원작으로, '오징어 게임' 스타일의 서바이벌 데스 게임 장르이다. 규모가 클 뿐 본질은 비슷하다. VIP나 성좌처럼 격이 다른 존재들이 극한 상황을 만들고, 그 상황에서 인간들이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모습을 그리는 시스템을 다룬다. '오징어 게임'과 '전독시'가 다른 점은 게임 판타지 요소가 들어가서 미션을 해결하는 데 스킬이나 능력치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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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데스 게임 장르에서 관객은 한계에 부딪힌 인간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최악의 상황에 처한 주인공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보고 싶어 한다. 데스 게임의 재미는 목숨을 걸어야하는 게임의 신선한 구조와 이를 해결하는 주인공의 탁월한 문제 해결 능력이다. 그런 과정을 이겨나가는 주인공들의 선한 마음에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된다. 모두를 구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진 성기훈은 혼자 살아남아 상금을 받았지만 그 게임을 없애 무의미하게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구해야겠다고 깨닫는 과정을 보여줬다. 김독자 역시 게임을 클리어해 무의미하게 희생당하는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고자 나선다.


'전독시'는 서바이벌 데스 게임 장르 공식을 충실히 따랐다. 이기심으로 가득한 인간들 가운데 능력이 있는 주인공이 다른 능력 있는 사람들과 팀을 꾸려, 아무도 공감받지 못하는 대의를 위해 희생한다. 그 희생을 가로막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이기심이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에 대한 비판이 녹아 있다. 빌런인 천인호(정성일 분)는 국회의원으로 자신의 명예를 이용해 사람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속여 희생시키고, 공필두(박호산 분) 역시 김독자가 준 코인으로 움직이기 전까지는 부동산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이득을 취한다. 착취당하는 이들은 자신들을 구하려는 김독자 일행을 공격하지만, 김독자는 고결한 뜻 하나로 그들을 구하기 위해 계속 목숨을 건다. 이 모습은 돈 때문에 게임을 이어가려는 사람들과 이를 막으려는 '오징어 게임'의 성기훈이 겹쳐 보인다.


이 영화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김독자 일행의 위기와 극복 방법, 동기가 따로 노는 탓이다. 김독자 일행이 마주하는 위기는 표면적으로 성좌들이 멸망시킨 세계 속 미션과 이기심 가득한 다른 사람들이다. 그러나 김독자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아는 초월한 존재이기에 그 위기가 크게 위기로 느껴지지 않는다. 따라서 김독자와 구해야 할 사람들 간 서사를 만들거나 팀원들의 위기를 구하며 범위를 좁혀 더 관객을 설득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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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세계로 위기를 구분하면서 김독자는 관객과 멀어졌다. 환영 감옥이라는 위기를 통해 김독자 일행의 희생 의지를 관객에게 전달하려 했지만, 환영 감옥에 갇히면 모두 누군가를 살리지 못하고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현성, 이지혜, 김독자가 죄책감을 느낀 이유는 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경험만으로 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살리고 싶어 하는 것은 지나친 생략이다. 이해되지 않는 동기를 가진 김독자 일행에게 관객이 공감하기 어렵다. 갑자기 서바이벌 데스 게임에 던져진 김독자를 지켜본 관객은, 그 능력으로 갑자기 희생하려는 모습이 답답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이런 논리적 비약은 관객이 폭넓게 이해해 줘야 하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원작을 읽은 관객이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 대형 IP를 영화화해 극장에만 걸면 흥행했던 시절에 비해, 현재 관객의 이해심이 넓지 않다는 점도 창작자들이 생략한 듯하다.


'전독시'에서는 능력 있는 자들이 오직 죄책감을 피하기 위한 시혜적 마음으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점만 남았다. 소설이나 웹툰에서는 주인공 심리 묘사로 '독자'를 설득할 수 있지만, 영화라는 매체적 한계 때문에 소설·웹툰처럼 납득시키기 어렵다. 20권에 달하는 소설을 2시간 조금 넘는 영화로 줄이려는 야심이 너무 컸던 것 같다. 영화는 러닝타임이 곧 비용이며, 생략은 필연적으로 창작자의 편견이 반영된다.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부분을 생략하고 창작자가 말하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면서, 관객과 창작자 사이 간극이 너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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