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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 Dec 02. 2021

복고와 적폐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영화 '라스트 나잇 인 소호'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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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이 리뷰에는 영화에 대한 무지막지한 스포일러가 있기 때문에 감상 후에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유행은 돌고 돈다. 클래식과 빈티지는 끊임없이 재창조되면서 더욱더 가치를 높인다. 에드가 라이트는 '라스트 나잇 인 소호'를 통해 1960년대 런던의 음악과 패션에 대한 애정을 마음껏 드러낸다. 하지만 그것을 뺀 나머지 모든 것들을 적폐로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화와 예술을 뺀 나머지는 적폐로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매일 밤 꿈에서 과거 런던의 매혹적인 가수 ‘샌디’(안야 테일러 조이 분)를 지켜보던 ‘엘리’(토마신 맥켄지 분)가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가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구미가 당길 요소가 넘친다. '베이비 드라이버'의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영화 이기도 하며 '퀸스 갬빗'의 주연으로 단박에 한국을 사로잡은 안야 테일러 조이가 출연한다. 여기에 호러 영화라는 장르까지 더해지며 소위 시네필의 구미를 당길 요소는 모두 가지고 있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그런 매력을 모두 잘 표현해내고 있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의 가장 큰 매력은 배우다. 토마신 맥켄지와 안야 테일러 조이 모두 영화에 흠뻑 빠지게 만든다. 섹시하다는 말 이외에 다른 형용사로 설명하기 어려운 매력을 가지고 있다. 체감 상 안야 테일러 조이의 인지도가 압도적으로 높지만 주연을 맡은 2000년생 토마신 맥켄지 역시 첫 장면부터 놀라운 흡입력을 보여준다. 단순히 얼굴이 예쁜 배우가 아닌 스무 살의 불안과 혼란과 매력을 설득력 있게 연기하고 있다. 멈춰있는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매력이 스크린에서 살아 숨 쉰다.


엘리는 시골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엘리는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한 어머니의 환영을 보는 병을 앓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엘리는 성공의 꿈을 품고 런던으로 상경한다. 하지만 엘리의 런던 드림은 쉽지 않다. 기숙사 룸메이트도 자신을 무시하고, 파티하고 떠드는 기숙사의 일상 역시 자신과 맞지 않는다. 그는 기숙사를 나와서 원룸을 구하고, 원룸에서 혼자만의 행복한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새롭게 들어간 원룸에서 악몽 아닌 악몽을 꾸게 되고 그 꿈에서 자신의 새로운 원룸에 살았던 샌디를 보게 된다.


엘리가 꿈에서 보게 된 샌디의 첫 등장은 황홀함 그 자체다. 자신감 넘치고 당당하고 화려하고 가수로서 완벽한 재능을 가진 샌디의 모습은 그 자체로 황홀하다. 화려한 무대를 배경으로 자신의 반짝이는 재능을 마음껏 빛내는 소녀의 모습은 그 자체로 희망차다. 샌디의 꿈을 도와주겠다는 잘생긴 잭(맷 스미스 분)이 등장하면서 밝은 미래를 예고했다. 엘리 역시도 화려한 샌디에게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아서 반짝반짝 빛나도록 변하게 된다.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며 시골에서 런던으로 올라온 엘리는 샌디의 완벽한 모습을 보고 자신의 생활도 잘 적응하게 된다.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 같은 샌디의 삶은 잭으로 인해 시궁창으로 떨어진다. 잭은 샌디를 가수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스트립 댄스를 추는 댄서로 전락시킨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몸까지 팔도록 강요한다. 원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샌디는 지금의 엘리가 살고 있는 원룸에서 몸을 팔면서 끊임없이 절망한다. 엘리 역시 샌디를 말리려고 하지만 그의 시도는 물거품이 되고 점점 더 병들어간다.


엘리를 연기하는 토마신 맥켄지는 불안하다가 희망을 찾고 다시 불안으로 빠져드는 과정을 과장 없이 그려낸다. 샌디 역시도 차츰차츰 나락으로 빠져드는 삶을 신비한 비주얼로 그려낸다. 샌디를 성 매매하는 남자들은 늙고 머리가 벗겨진 백인 남자들이다. 턱시도를 입고 있지만 샌디를 향해 더러운 욕망을 감추지 않는다. 샌디에게 전혀 관심 없이 몸만 탐하는 그들은 샌디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든다. 엘리는 샌디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착각'하게 되고 샌디를 살해한 범인인 잭이 자신을 쫓아다니는 백발의 노인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비극은 이어진다. 엘리가 잭이라고 확신한 백발의 노인은 샌디를 시궁창에서 꺼내려는 유일한 경찰이었다. 하지만 엘리는 백발의 노인을 죽음으로 몰고 자책한다.


샌디와 엘리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향해 달려가는 이 순간 영화는 반전을 선물한다. 샌디는 엘리가 사는 원룸의 주인이자 늙은 노파였던 것. 샌디의 정체는 성 매매하려는 수많은 남자들을 살해해서 그 건물에 감춘 살인마였다. 과거 런던에서 발생한 수많은 실종사건의 범인이 바로 샌디였던 것. 샌디는 자신의 과거와 비밀을 알게 된 엘리마저 죽이려고 한다. 그 순간 엘리의 원룸 건물에 불이 붙는다. 샌디는 엘리를 죽이는 것을 포기하고 일평생 자신의 비밀을 품었던 건물과 함께 죽음을 택한다. 엘리는 불타는 건물에서 탈출해서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이 영화에서 1960년대 노래와 패션은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소재이며,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토마신 맥켄지와 안야 테일러 조이 모두 1960년대에 머무를 때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이 난다. 그렇지만 패션과 음악을 뺀 1960년대의 모든 것은 더럽고 추악하게 묘사된다. 두 소녀를 불행하게 만든 것은 당시 상류층이자 더러운 욕망을 가진 백인 노인들이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잔혹하게 살해당한 늙은 노인들의 시체가 묻혀있는 건물을 불태운다. 그들이 만든 사회 제도와 윤리와 도덕은 적폐이며 이 모든 것을 불태운 자리에 엘리의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


여기에 더해 토마신 맥켄지와 안야 테일러 조이의 빛나는 모습은 전 세계 영화계에 새로운 스타가 탄생했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었다. 두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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