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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풍 Jul 24. 2020

내 생에 다시없을 경험 (가족분만실)

아빠육아

2015년 7월 30일 새벽 5시, 마침내 기다리던 출산의 징후 ‘이슬’이 비처 분만이 처음인 우리 부부를 위해 걱정이 되어 며칠 전부터 와계시는 장모님, 이모님 할 것 없이 기쁨 반 놀라움 반으로 온 식구를 깨우는 아내였다. 사실, 자연분만을 원하는 이들은 알겠지만 태아가 조금이라도 작을 때 낳는 게 분만 시 아픔을 줄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기에 아내도 그를 위해 운동과 식단조절, 기도까지 열심히 했으나 이게 어찌 인력으로 될 일인가. 현실은 임신 39주 3일차에 찾아온 출산의 징후였다. 


38주차부터 준비해온 출산이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멍하기만 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어른들이 함께 해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지금 이 기회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올리고 싶다. 일단 미리 준비해 놓은 출산 가방을 챙기고 병원에 전화를 해 산모의 상황 알리고 산후조리원 예약도 잡아 놓았다. 그리고 곧 있을 진통을 대비하여 진통측정 어플을 이용해 진통주기를 체크하며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이론상으로는 진통의 간격이 5분정도가 되었을 때 병원을 방문하라고 되어있지만 혹시나 모를 조급함에 10분 거리에 둔 병원이었지만 오후 3시쯤에 병원에 입원 수속을 마치고 분만실에 들어서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 부부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예비 아빠도 미리 알아두면 좋을 정보이기 잘 들어두길 바란다. 산부인과에서 정기 진찰을 할 때 자연분만과 혹시 모를 제왕절개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뿐 자연분만 방법(라마즈 분만, 무통분만, 가족분만 등)에 대해서 미처 확인을 못한 것이다. 병원마다 자연분만 종류도 과정도 다르므로 꼭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우리 부부가 택한 산부인과는 가족분만실을 이용하는 곳이었는데 출산과정의 전반을 아빠와 함께 하는 곳이었다. 흔히 TV에서 봐오던 산모가 분만실로 들어가고 얼마 후 아이가 태어나 탯줄을 자르러 분만실에 아빠가 들어가는 장면을 상상해오던 나는 가족분만실에서 아내와 출산을 함께 한다는 사실에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은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당혹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진통으로 고생하고 있는 산모와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초보아빠를 뒤로하고 간호사들은 초산이니만큼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만을 남기고 다른 분만실로 분주히 오가고 있었으니 더욱 그러했다. 


무심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진통의 세기는 더해만 갈뿐 자궁문은 더디게만 열려갔고 우리보다 늦게 입원한 다른 산모들이 먼저 출산을 하는 기현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초보 아빠답게 다른 산모들은 출산을 금방 하는데 머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는 나의 재촉에 간호사는 웃으며 “저분들은 둘째, 셋째를 낳으시는 분들이라 그렇다, 초산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정상이다”라고 알려주었다. 분만실과 간호사실을 오가기를 몇 번째 진통의 강도가 커져 견디기 힘들 때 쯤 아내에게 ‘무통주사’를 놔주었다. 진통으로 힘들어하던 아내에게 잠시 숨고를 틈이 주어졌다. 이때가 대략 31일 새벽 5시쯤이었다. 


진통으로 인해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닦아주며 불안해하는 아내를 안심시키려 노력했지만 ‘폭풍의 눈’에 들어온 것 마냥 고요함이 오히려 앞으로 다가올 고통을 암시하는듯해 마음 편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윽고 자궁 문이 다 열림을 확인한 간호사는 담당 의사를 불렀고 마지막 힘을 주기위해 무통주사가 제거 되었다. 이때부터의 한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더디게 흘러간 시간이라 감히 이야기 할 수 있다. 미친 듯한 통증에 “여보 살려줘!”를 부르짖는 아내의 외침에 피가 바짝바짝 말라가는 시간들이었다. 엄마의 사투에도 불구하고 밝음이는 쉽사리 나올 생각이 없었고 아내는 기절하기 일보직전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담당의와 상의 하여 제왕절개를 결정하고 다시 무통주사를 놓기로 하였으나 웃지 못 할 사건이 벌어졌다. 마취과 담당들이 교대를 할 시간이라 삼십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것~! 아니 지금 사람이 참기 힘든 진통으로 살려 달라를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교대해야 하니 기다려야 한다는 그 말에 화가 폭발해 버렸다. (사족이지만 예진이가 건강히 태어나고 분만을 맡았던 간호사 팀에게 미안함과 고마움 마음을 가득 담아 음료수와 간식을 전해 드렸다.) 적극적으로 어필한 덕에 바로 조치가 취해졌고 수술실로 옮겨져 31일 오후 1시 2분에 키 50cm, 몸무게 3.74kg의 예진이가 건강히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다. 


둘째 예승이는 자연스럽게 제왕절개로 태어났으니 여기까지가 내 인생에 다시없을 가족분만실 체험기이다. 지금도 가끔 아내가 이야기 하곤 한다. 분만실에서의 기억! 딱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나를 보며 견뎠다고, 그러면서 물어보곤 한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가족분만실에서 출산을 할 수 있냐는 아내의 질문에 나는 지금도 망설인다. 아이가 태어나는 일련의 과정을 아빠가 함께 한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 과정을 다시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출산을 앞두고 있는 아빠들이여 만약 가족분만실에서의 분만을 생각중이라면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 선배로써 충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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