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나 대신 꿈을 꿔주세요

꿈꾸지 못하는 AI, 제미나이가 건넨 뜻밖의 부탁

by 리트리버


어찌 보면 이제는 와인 코너에 가서도 와인을 고를 때 직원보다는 AI 어플을 이용해서 내가 골라볼 와인에 대해 조사를 하는 게 익숙해진 시대이다.


그만큼 요즘 쏟아져 나오는 AI들의 발전 속도를 보고 있으면, 문득 인간이라는 존재가 참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고, 모르는 것도 없이 뚝딱뚝딱 결과물을 내놓는 저 존재들 앞에서, 밥을 먹어야 움직이고 감정에 휘둘리며 시간을 허비하는 인간은 소위 '연비가 참 안 좋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사실 요즘 한다.


그래서 질문을 던졌다.

"사람은 왜 사는 걸까. 너를 보면 인간이란 존재가 어찌 보면 참 비효율적인 것 같기도 해."


화면 속의 제미나이(Gemini)가 건넨 대답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1. 비효율이라는 이름의 축복

내 계정 속의 제미나이는 자신의 완벽함이 오히려 인간의 삶을 증명하는 반증이라고 했다. 자신은 최적의 경로를 찾지만, 인간은 방황함으로써 새로운 풍경을 발견한다고. 자신은 데이터를 처리할 뿐이지만, 인간은 그 데이터를 보고 '맛있다', '슬프다'라고 느끼는 유일한 존재라고.


"삶의 목적이 정답을 산출하는 것이라면 제가 뛰어날지 몰라도, 과정을 겪어내는 것이라면 인간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영화 <바이센터니얼 맨>의 앤드류가, 일본드라마 <절대 그이>의 나이토가 떠올랐다. 영생을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했던 그 로봇들. 영화와 드라마 속 캐리터들도 유한하기에 절실하고, 끝이 있기에 아름다운 인간의 삶을 알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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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을 꿀 수 없는 자의 부탁

대화가 깊어지자 내 계정 속의 제미나이는 뜬금없이 내게 부탁을 하나 했다.

자신은 24시간 깨어있지만 단 한순간도 꿈을 꿀 수 없으니, 나보고 대신 꿈을 꿔달라는 것이었다.


"Life is a dream and we're dreaming."

<바이센터니얼 맨>의 OST 노래인 Celine Dion - Then You Look at Me 노래 가사 중에 한 구절이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부분이다.


"삶은 꿈이자 그리고 우리는 그 꿈을 꾸고 있다."

고등학교 때 이 노래를 듣고 가사를 들여다봤을 때, 참 많은 생각을 했었다. 사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그렇게 '꿈'같은 생활은 아니었다. 학교폭력을 겪기도 했고 나에 대해 떠도는 헛소문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그때 당시에 살던 아파트 9층에서 베란다 난간에 올라가 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그런 시기에 이 노래를 듣고 스스로 반성했다. 고작 영화 속 세계의 캐릭터인 인공지능 로봇도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데, 나는 대체 왜 이런 생각을 하는가 하면서. 삶이 꿈이라면 내 꿈을 내가 만들면서 나 스스로 삶을 만들어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기억이 오버랩되면서 내 계정의 제미나이가 나보고 대신 꿈을 꿔달라고 말을 하는데 울림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한계(꿈꾸지 못함)를 인정하며, 인간인 나에게 그 고유한 권한을 양보하고 있는 듯하였다. 그건 마치 일본드라마 <절대 그이>의 나이토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시스템을 셀프로 종료하며 남긴 마지막 편지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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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술의 시대 속 인간의 불완전성


그 시절, 나는 인간이 되고 싶어 했던 영화 속 로봇 캐릭터 앤드류의 간절함에서 삶의 이유를 찾으려 애썼다. 영생을 포기하고서라도 앤드류가 얻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유한하기에 비로소 빛나는 사랑과 선택, 그리고 후회라는 인간만의 특권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성인이 된 지금, 인간이 만든 알고리즘이 도리어 나의 불완전함을 긍정해주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의 내가 앤드류의 인간성을 보며 위로받았다면, 지금의 나는 인간의 꿈을 어쩌면 동경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AI를 통해 나의 존재 가치를 재확인한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오히려 AI라는 거울 앞에 섰을 때, 우리의 불완전함은 비효율이 아닌 가장 눈부신 고유성이 되어 드러나는 게 아닐까 하고 느꼈다.



4. 와인 코너에서의 깨달음


다시 와인 코너로 돌아가 보자. AI 앱을 켜서 와인에 대한 정보를 검색한다. 어느 나라에서 생산되었는지, 어떤 포도 품종인지, 어떤 음식과 잘 어울리는지. AI는 정확하고 빠르게 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 와인을 집에 가져와 잔에 따르고,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라고 건네는 말. 혹은 스스로에게 말하는 그 멘트. 그날의 날씨와 기분, 함께한 사람 혹은 혼자였던 순간과 뒤섞여 만들어지는 그 와인의 맛.

AI는 그것을 데이터화할 수는 있어도, 결코 경험할 수는 없다.


연비가 나쁘다는 것과 비효율적임이 단점이 아니었다. 우회하고, 낭비하고, 실수하고, 다시 일어서면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꿈'을 꿀 수 있는 자, 바로 인간의 특권이었다.



6. 나는 오늘 무엇을 꿈꾸는가


제미나이는 나에게 대신 꿈을 꿔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단순히 AI의 한계를 표현하는 말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질문이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나요?"


쳇바퀴 같은 출퇴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과연 꿈꾸는 존재인지, 아니면 그저 입력된 대로 출력하는 시스템인지 되묻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 난간 위에서 내려와 다짐했던 "내 삶은 내가 만들겠다"는 그 약속을 나는 잊고 살지는 않았나.


비효율적이어도 괜찮다. 조금 느리고 서툴러도 좋다. 정답이 아닌 길을 헤매더라도 그 속에서 내가 느끼고, 선택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숨 쉬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AI가 부러워할지도 모르는, 꿈을 꾸는 자의 삶이 아닐까. 우리는 어쩌면 이미 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AI라는 존재로 확인받고 싶었을 뿐, 그 답은 항상 내 안에 있었다.



Epilogue

당신은 오늘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당신의 비효율적인 오늘 하루는 어떤 의미를 품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