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젊음 찬미주의 시대, 와인은 숙성이라 부르면서

30대, 노화가 두려워지기 시작한 나이에 쓰는 글

by 리트리버

와인을 취미로 하다 보면 재밌는 현상을 보게 된다.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빈티지의 햇 와인을 마실 때, 우리는 '신선하다'는 표현으로 그 와인을 칭한다. 반면 10년, 20년 된 빈티지의 와인 앞에서는 무의식 속에서 알 수 없는 무게감이랄까, 중후함 같은 게 느껴진다.

물론 모든 포도 품종이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오래된 와인을 마주할 때면 세월이 만들어낸 복합적인 향, 혀끝을 감도는 중후한 무게감, 그리고 그 시간만이 줄 수 있는 맛 , 기꺼이 지갑을 연다.

그런 와인에게 있어 시간은 '노화'가 아니라 '숙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정작 거울 속 내 얼굴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해진다. 노화된 피부는 관리 소홀로 치부되고, 흰머리는 염색해야 할 대상이 된다.

이제 30대 초반에서 중반을 향해가는 와중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인간은 늙음에 대해 이토록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걸까?






"학생인 줄 알았어요"

솔직히 고백하겠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편의점에서, 혹은 식당에서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째지게 좋다.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걸 참느라 애를 먹는다. 대한민국에서 "어려 보인다"라는 말은 최고의 칭찬이자, 자기 관리를 잘했다는 훈장과도 같으니까.


하지만 집에 돌아와 문득 씁쓸함이 밀려왔다.

왜 우리는 '제 나이처럼 보인다'는 말보다 '어려 보인다'는 말에 안도감을 느끼는 걸까?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나이 듦을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필사적으로 막아내야 할 질병처럼 취급하고 있는 건 아닐까?

1살이라도 젊을 때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 일명 '젊음 찬미주의'의 한복판에서, 나는 어떤 어른으로 늙어가야 할지 길을 잃은 기분이다.





보이지 않는 시계

한국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시계가 하나 있다.

이 시계는 오직 '젊음'을 가리킬 때만 정상 작동한다고 믿어진다. 조금이라도 바늘이 '노화' 쪽으로 기울면, 사람들은 불안해하며 피부과로, 헬스장으로 달려간다.


왜 이렇게 '젊음'에 대해 찬미하게 되는 걸까?


100세 시대라면서, 정작 우리는 외모와 체력을 평생 유지해야 한다고 세뇌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복근을 만들고, 결점 없는 피부를 가지려 애쓰는 동안, 정작 우리가 갖춰야 할 내면의 근육과 사유의 깊이는 점점 얇아지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젊음에 집착하는 네 가지 이유



1. '젊음'이 곧 '능력'이자 '생존'인 사회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변화 속도가 빠르고 경쟁이 치열하다. 이건 내가 외항사에서 근무하다 보니 더더욱 뼈저리게 느낀다.

이런 사회에서 노화는 곧 도태를 의미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젊음은 에너지, 습득력, 유연함으로 읽히지만 늙음은 둔화, 고집, 비효율이라는 키워드로 낙인찍혀버린다.

자기 관리라는 명분하에 외모는 단순히 타고난 것이 아니라 성실함의 척도로 평가받고 동안을 유지하면 능력 있는 사람으로 대우받는다. 즉, 동안도 하나의 스펙이 되어버린 것이다.



2. '꼰대'가 되기 싫은 공포 (세대 단절의 두려움)


한국 사회에는 '꼰대'라는 단어가 주는 강력한 낙인효과가 있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 자체가 '말이 안 통하며 권위적인 사람'이라는 프레임과 연결될까 봐, 모두가 무의식 속에서 두려워한다. 젊은 트렌드를 따라가고 어려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은 젊은 세대와 섞이고 싶고, '아직 현역이다', '나는 꽉 막히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인정 욕구의 발현이 아닐까.

트렌드에서 밀려날 것 같은 소외감. 바로 그 도태에 대한 공포가 무의식에 깔려 있다.




3. 비교 문화와 획일화된 미적 기준


한국은 눈치에 매우 민감한 '고맥락 사회'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사회를 피곤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남들만큼은 해야 한다]라는 평균주의가 강하다는 의미다. 인생의 경로 (취업, 결혼, 출산)에 정답이 있고 맞는 시기가 있다고 믿는 것처럼, 외모에도 정답이 정해져 있다. 동안, 결점 없는 피부, 날씬함. 이 기준에서 벗어나 늙어가는 모습을 그냥 두는 것은 관리 소홀로 간주된다. 남들도 다 리프팅하고, 다이어트하니까 나만 안 하면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감이 우리를 옭아맨다.



4. 나이 듦에 대한 철학의 부재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에 대한 롤모델이나 사회적 존경이 부족하다.

유럽이나 서구권에서는 주름이나 흰머리를 그 사람의 연륜과 매력으로 바라보는 Silver Fox 같은 개념이 긍정적으로 소비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노인은 주로 '부양받아야 할 대상' 혹은 '빈곤하고 고집 센 존재'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멋진 어른'의 이미지가 부족하니,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회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Silver Fox : 직역 시 은빛 여우, 나이가 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 매력적이고 세련되어 보이는 사람을 의미. 즉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한 매력의 한 층위)



그럼에도

물론, 이러한 사회 현상을 무조건 적으로 비난하고 나쁘다고 보면 안 된다.

대한민국이 K-뷰티로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리고 있고, 외국인 관광객들이 K-뷰티를 경험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고, 국가 이미지 면에서도 좋은 결과를 내고 있으니 이 현상을 무조건 나쁘다고 치부할 수 없다. 또한 외모를 가꾸고 운동을 함으로써 건강을 지키고 자존감을 올릴 수 있다면, 나는 이러한 트렌드가 충분히 좋은 현상이라고 본다.




문제는 맹목성이다.

내가 진짜 좋아서 젊음을 쫓아가는 건지. 아니면 그것을 쫓으면서 동시에 허망함이 밀려오는 건지. 아니면 그냥 노화라는 것 자체가 싫은 건지.

자신에 대한 고찰이 먼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맹목적으로 젊어지고 싶고, 평생 어린아이로만 남고 싶다면 그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다시 와인 이야기로 돌아가자.

좋은 와인은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무조건 완성되는 게 아니다. 적절한 환경에서, 자기만의 속도로 변해왔기 때문에 비로소 깊어지는 것이다.


나는 서른을 넘기면서 처음으로 늙는다는 감각을 느꼈다.

소화력도 예전 같지 않다. 퇴근 후 게임을 켜도 두 시간을 못 버틴다. 20대 중반에는 거뜬히 하던 운동이 지금은 버겁다. 나이 앞자리가 3으로 바뀌었을 뿐인데, 야속하게도 몸은 정직하게 달라졌다.

나보다 윗세대 분들이 읽으면 '아직 젊은데 무슨…' 하며 웃어넘기실지도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40대 되면 어찌될지 조금은 걱정이다.


솔직히, 아직 답은 모르겠다. 다만 이 사회의 젊음에 대한 집착이 언젠가는 바뀌어야 할 숙제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변화는 거창한 데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각자가 거울 앞에서 "이대로도 괜찮다"고 한번 말해보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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