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직장인의 식생활 라이프에 즐거움을 불어넣어 준 존재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원치 않는 무급 휴가가 길어졌고, 통장은 얇아지는데 시간만 넘쳐나는 아이러니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유튜브를 뒤적거리던 그 시기, 뜬금없이 내 인생에 '와인'이라는 녀석이 들어왔다.
계기는 아주 사소하면서도 강렬했다. 평소 재밌게 보던 유튜브 채널 '입질의 추억'에서 김지민 작가님이 회를 드시는 장면이었다. 붉은색 와인을 잔에 따르길래 '회에 레드 와인? 이제 맞는 건가?'라고 생각하던 찰나, 그분께서 말씀했다.
"오크 숙성을 하지 않은 피노 누아는 회와도 아주 잘 어울립니다."
잔잔하게 웃으시면서 말씀하시는 그 한마디가 왜 그리도 멋있어 보였는지 모르겠다. 소주나 청하가 아닌, 투명하게 빛나는 붉은 와인과 회의 조합. 그 장면은 내 머릿속에 있던 고정관념에 작은 균열을 만들었다.
동기부여는 또 있었다. 당시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와이프는 와인을 참 좋아했다. 데이트할 때 백화점이나 마트를 가면 와인 코너를 서성이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점원의 설명에만 의존해 고개를 끄덕거리는 수동적인 소비자일 뿐이었다.
'도움 없이 셀프로 와인을 골라보고 싶다.'
그렇게 시작된 나만의 '와인 독학'은 생각보다 깊어졌다. 유튜브 영상들을 통해서 품종을 외우고, 산지와 맛의 특징을 메모했다. 덕분에 지금은 누구의 도움 없이도 내 취향에 맞는, 그리고 그날의 안주에 딱 맞는 와인 한 병 정도는 셀프로 골라낼 수 있게 되었다.
이곳은 내가 그동안 공부하고 경험한, 그리고 앞으로 알아갈 와인 지식들을 정리하는 공간이다.
미리 고백하자면 나는 소믈리에 자격증도 없고, 와인 업계 종사자도 아니다. 그저 월급날을 기다리는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다. 그래서 이곳에는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와인 이야기는 거의 없다. 아니, 못 쓴다.
유튜브나 블로그를 보면 "가성비 데일리 와인 추천"이라며 3~5만 원짜리 와인을 소개하곤 한다. 솔직히 나는 그 글들을 볼 때마다 괴리감을 느낀다. 그게 진짜 '데일리'가 맞나? 세상 물정이 그런 건지. 나에게 3만 원짜리 와인은 큰맘 먹고 손을 떨며 장바구니에 담는 '특식'이다.
나는 이 공간에서만큼은 나만의 솔직한 와인 이야기를 풀고 싶다. 마트 진열대 앞에서 3만 원짜리 와인을 들고 10분 넘게 고민하는 마음, 그리고 가끔은 큰맘 먹고 골라보는 5~7만 원짜리 와인과 1~2만 원대 저렴한 와인 한 병으로도 식탁이 얼마나 풍성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려 한다.
비싼 라벨이 아니어도 좋다. 전문 용어를 조금 틀려도 괜찮다. 소소한 월급쟁이가 곁들이는 즐거운 와인, 그 '진짜' 이야기를 이제 시작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