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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나 Nov 14. 2023

한국시리즈를 마치며

LG트윈스 팬 시점에서 끄적끄적

이 글은 야구를 사랑하는 한 엄마가 그저 아이와 직관을 즐기며 시즌을 마감하는 소회를 끄적거린(=비전문적인) 에세이 형식으로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야구, 그 공놀이가 뭐길래

이 팀의 오랜 팬이라 말하는 사람들은 보통 청룡 MBC 시절로 시작된다. 약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거다. 그런 팬들에 비하면 내 팬심의 역사는 짧은 편이다.


내가 응원하는 이 팀은 진짜 희한하다. 무슨 기록만 냈다 하면 10년만, 20년 만이라고 한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할 때까지 비슷한 기록이 없었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중간에 구단이 없어졌던 것도 아니다. 대체 20년 가까이 어디에 다녀온 팀인 걸까. 잠시 KBO에 속하지 않고 사회인 야구단으로 변신했던 것일까 하는 궁금증까지 생기는 지경이다.

그렇다. 난 엘지트윈스의 n연차 팬이다. 2023년 한 해 한화팬 제외하고 가장 행복했던 응원 인생을 보낸 팬 중 한 명이다.


이 팀의 팬이 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제법 자란 아이가 경기를 즐기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나이가 되었고 그 아이를 데리고 우리가 편히 다닐 수 있는 홈구장이 가깝기 때문이었다. 주말에 특별한 계획이 없을 때, 평일 경기가 보고 싶을 때, 경기가 길어져 늦게 끝나더라도 10여분 내 거리에 위치해 있는 홈구장 때문에 선택한 이유가 가장 크다.


한 팀을 응원하며 봄, 여름, 가을 그리고 초겨울까지 이어진 한국시리즈까지 일 년 가까이 함께 보냈다. 시즌이 끝났다는 것이 아직 믿기질 않는다. 다음 시즌이 시작될 때까지 내가 응원하는 이 팀에 어떤 변화의 바람이 휘몰아칠지 궁금해서 스포츠 뉴스 야구란에 기사가 올라올 때마다 빠짐없이 클릭해보고 있다.


심오하게 쓰자면 야구는 작은 부분부터 어느 하나 의미부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스포츠다. 개인의 경기가 팀의 경기가 되기도 하고 필드에서 뛰는 선수 말고도 경기를 운영하는 데스크의 역할도 막중한 스포츠이기도 하니 작은 것 하나에 많은 것이 달라진다. 그저 난 가벼운 시점에서 몇 글자 적어보자면,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는 실패와 기회의 공놀이.

보통 잘 치는 타자들의 성적이 3할 대다. 3할 대라는 건 10번의 공이 날아왔을 때 3번 정도 처낸다는 것이니까 나머지 7번은 실패인 것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의 4할대 타자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우수 선수들로 상대 투수가 두려워할 정도다. 한 경기에서 실패의 순간을 수 없이 맛보지만 그만큼 타자와 투수에게 기회도 계속 주어지는 스포츠다.



애정이라는 이유로 일희일비하는 본성.

야구를 평온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미 웹상에는 야구팬들이 늘 화나있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과 짤들이 떠돈다. 묵묵히 입 다물고 내 응원팀의 경기를 볼 수 있는 팬이 얼마나 될지 알고 싶다. 적어도 내 주변엔 없다. 심지어 아홉 살 된 우리 아들마저 야구 경기의 결과에 따라 이후 컨디션에 영향을 미친다.

응원 팀이 이긴 날에는 숙제도 더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하는 한편, 지는 경기를 보고 나면 아직 심약한 아이의 속상한 마음은 단시간에 추스러지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부모라도 그 마음을 어떻게 해줄 수 없으니 그저 즐기자고 말도 해보고 좀 더 자라면 즐기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9회 말 2 아웃 만루 상황에서 벌어지는 홈런과 적시타 한방으로 역전극이 펼쳐지는 감동의 순간도 아이가 직접 볼 수 있기에 이보다 매력적인 스포츠가 또 있을까 싶다.



경기장은 거대한 종교시설, 노래방 그 이상의 장소.

남들 시선을 의식지 않고 신나게 노래 부르며 흔들고 싶은가, 그렇다면 야구장에 가길 권한다.

각 구단은 구단의 응원가와 선수들의 응원가가 따로 있다. 멜론 차트 100위 곡 듣는 거 못지않게 들을만한 퀄리티의 곡들이 상당하며 특정 선수들의 응원가는 내 응원팀이 아니더라도 절로 흥얼거릴 정도로 중독성 강한 멜로디들도 많다. 게다가 우리 팀에게 강한 상대팀 타자의 응원가가 시작되면 내 심장도 같이 뛰기 시작한다.

야구 응원가, 무시할 거 못된다. "오오오오~ 엘지의 허도환 짝짝, 오오오오 엘지의 허도환 짝짝"

시즌 내내 입에서 떨어지지 않던 곡 중 하나이다. 기아의 소크라테스는 말해 뭐 할까.



또 다른 시작 스토브리그.

몇 년 전 드라마로 제작된 스토브리그가 진짜 야구를 바라보는 숨은 재미가 있는 기간이지 않을까 싶다. 자유 계약 상태가 된 선수들의 몸 값이 소 등급처럼 메겨지고 그들을 영입하고 지키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펼쳐지는 스토브리그. 특정 선수에 대해 충성 팬들은 내 최애 선수가 팀을 떠나면 한 없이 슬퍼하기도 하고 미련 없이 보내주기도 하며 애정하는 선수를 따라 팀을 갈아타기도 하는 운명적인(?) 기간이다. 한편 방출 선수도 쏟아져 나오는 슬픈 현실…




어제 한국시리즈 티브이 중계를 보며 우승이 확정되니 우리 집 아홉 살 엘린이는 눈물이 그렁그렁 했습니다. 이 어린이에게 넌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라고, 너처럼 어릴 때 우승을 보고 20년이 더 지나 아빠처럼 아저씨가 돼서 우승을 보는 팬들이 너무 많다고 하니 아이도 끄덕끄덕 합니다. 그리고 저를 안아주더니 엄마 야구 보게 해 줘서 고마워요. 빨리 봄 돼서 같이 야구장 가고 싶다!라고 고백합니다. 부지런히 숙제도 하고 공부하며 야구까지 챙겨 보느라 바쁘고 혼란스러운 한 해였을 텐데 내가 더 고마워, 우리 집 엘린이.


과거 한국 프로야구의 광팬이었던 가까운 지인은 우리 가족에게 뭐 하러 시간 낭비, 돈 낭비 하며 한국 야구를 보냐고 나무라기도 합니다. 그 시간에 잘 만들어진 야구 예능 최강야구나 보라며.

이렇게 야구에 등 돌린 과거 팬들도 조금씩 애증의 관심이 살아나면 좋겠습니다. 야구계에서 일어나는 각종 비리를 포함한 사건 사고도 줄어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프로 선수 중에는 아이들에게 영웅같은 선수도 많거든요. 이 아이들이 꼭 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이 아님에도요. 각 구단의 프로 선수들이 어렵고 좁은 관문을 뚫고 그 세계에 발을 들인 만큼 조금 더 책임 의식을 갖고 선수 생활을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의 예상으로 내년에는 구단별 경기 수준이 비슷하게 키가 맞춰질 것이라 예측합니다. 성적이 좋지 않았던 여러 구단이 칼을 뽑아 드는 쇄신에 나섰으니 말이죠. 정규 리그가 끝나기 무섭게 일찍이 감독을 경질하거나 코치진도 대거 교체하고 방출 선수 명단도 발표 했습니다. 이렇게 쇄신에 나선 구단이 적지 않으니 내년 정규 리그는 더 치열하고 풍성한 경기를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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