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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나 Oct 30. 2023

03. 엄마가 사기를 당했어.

적은 금액은 아니야

엄마의 사기 피해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가슴이 떨리고잠이 오질 않았다. 나도 이런데 엄마는 오죽할까 싶어 내색을 하진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아침 출근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렇지 않게 통화를 할 뿐.

그런데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휴대폰 너머의 엄마목소리는 떨림이 느껴졌다.

엄마가 많이 힘들어하는구나,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많이 힘들구나.

이렇게만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를 위로하고 진정시키기 위해 이런 말들만 했다.

엄마, 그냥 없던 돈으로 치자.

엄마, 내가 교통사고로 사람을 쳐서 당장 내가 감옥에 가게 생겼는데 그 돈을 내 합의금으로 썼다고 치자.

엄마, 돈으로도 해결 못하는 일이 세상에 너무 많은데 그걸 해결했다고 치자.


주말이 돼서 엄마를 찾아가야지 라는 생각과 함께 그냥 잊어버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주말 아침, 계획된 주말 일정을 처리하고 저녁쯤 친정에 내려가볼 생각이었는데 이모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많이 힘들어한다. 네가 좀 일찍 내려오면 어떻겠니, 지금 너네 엄마 주방에 서있지도 못한다."


순간 다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엄마의 힘듦이 나도 느껴지긴 했는데 이 정도라니.엄마가 더 힘들어하는 이유중 하나는 이 사실을 아빠는 모른다는 거였다.

최대한 아빠에게 알리지 않고 내색하지 않고 견디고 넘어가려 했지만 나이 든 엄마는 혼자 끙끙 앓다 병이 났고 쉽게 넘기지 못했다. 그 힘듦과 고통을 가까이 사는 언니인 이모에게 달려가서 털어놓고 토로하고 왔다고 했다. 엄마가 이모와 가까이 살아서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다.


평소처럼 아빠에게 따듯한 밥을 지어주고 반찬을 해주고 싶은데 지금 엄마는 그것도 못하는 상태라고 했다.

불과 일주일 사이에.

6월 말 종일 흐린 날의 토요일이었다.

남편과 아이와 동행할 상황은 아니라 혼자 친정에 가는기차에 탔다. 많이 떨렸다. 내가 내려가서 아빠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엄마는 지금 어떤 상태일지, 기운이 없을 테니 병원부터 모시고 가서 영양제를 맞혀드려야 하나?

한 성격 하는 아빠에게 어디부터 얘길 해야 하며 그랬을 때 아빠의 반응은 어떨까.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손이 떨렸다.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혼자 감당할 자신이 없어 주말이라 본가에 내려가고 있는 남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어디야? 나 지금 내려가는데 카페에서 나 좀 만나고 집에 들어가."

"왜? 갑자기 누나를 카페에서 왜 만나?"

"할 얘기 있어, 엄마 얘기야."

"엄마가 왜? 엄마 아파? 암이 재발한 거야?"

"아냐 그런 거, 돈 문제야. 엄마가 사기를 당했어."

"뭐? 난 또 뭐라고, 됐어 엄마 아픈 거만 아니면.

얼마를 사기당한 건데, 내가 엄마한테 그 돈 준다고 해"


순간, '어쭈 내 동생 좀 멋있네.'라는 생각도 스쳤다. 근데 네가 엄마한테 당장 내줄 수 있는 액수가 아니란다.



통화는 간단히 끝냈고 친정 동네에 도착해 카페에서 동생을 먼저 만났다. 통화할 때는 되게 쿨한 척했지만 동생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엄마가 어떤 일을 겪었고 그래서 지금 상태가 어떤지 얘기해 줬다. 예상대로 동생은 한숨도 쉬고 기가 막힌 지 쉽게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그냥 들어도 다단계 폰지 사기인데 엄마는 왜 그런 걸 자기한테 까지 물어보지도 않았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아빠에게는 자기가 다 얘기하겠다고 했다.

누나는 집에 가자마자 엄마 데리고 병원 가서 영양제 맞게 해서 엄마 기운 좀 차리게 해 주라고. 동생이 아빠에게 전달할 시나리오 각본은 이랬다.


사기를 당한 금액은 대부분 아들 돈 임. 그래서 엄마가 미안해서 병이 난 상황.

엄마는 잘 몰라서 자기한테 물어봤는데 아들인 본인이괜찮은 투자 같다고 해서 투자를 했음.

엄마는 아무 죄가 없으니 아빠는 엄마한테 그 어떤 잔소리도 하지 말 것.


가뜩이나 아무것도 몰랐던 아빠를 거짓말로 이해시키기로 합을 짜고 동생과 둘이 집으로 향했다. 결혼한 이후 친정집 방문은 늘 남편과 아이와 함께였는데 동생과단둘이 차를 타고 가는 그 길이 어색하고 이상했다. 잠깐 십여 년 전 결혼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고 동생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온갖 감정이 휘몰아 치는 사이 친정 집에 도착했다. 아빠는 거실에서 혼자 TV를 보고 있었고 내가 혼자 내려왔다고 하니 의아해했다. 엄마가 몸이 좀 안좋다고 힘들다고 해서 내려왔다고 했다. 아빠는 아니 저 사람은 아프면 나한테 얘길 해서 병원을 가자고 하지 왜 너까지 내려오게 했냐며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이었다. 대충 둘러대고 안방 문을 열었다.


“엄마, 나 왔어. 괜찮아?”


엄마는 하나도 괜찮아 보이지 않았고 눈동자는 풀려 있었으며 팔을 축 늘어뜨리고 누워만 있었다. 내가 왔다는데 미동도 하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생각보다 엄마 눈빛이 너무 이상하고 생소해서 당황스러웠다. 엄마를 일으켜 세웠다. 병원에 가서 수액 좀 맞고 오자고 했다. 엄마는 겨우 내 부축을 받고 거실로 나와 현관문을 지났고 엄마 차에 올라탔다. 운전대는 내가 잡았다. 거실을 빠져 나오는 사이 아빠가 진짜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랑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는병원은 안가도 된다고 교회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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