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버렸지만,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인생 2회차, 나는 오늘을 삽니다.

by 나타샤


나는 암환자다.

그리고 이름을 바꿨다.


기억은 흐려지고, 감정은 선명하게 남은 순간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돌이켜보면, 세상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옛말이 맞는 것 같다.

한순간에 든든한 장녀였던 나는 세상에서 가장 여린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고, 몸 안에 암세포가 있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갑자기 밀려오는 공포와 싸우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


검사결과를 듣고 제일 먼저 소식을 알린 사람은 둘째 동생이었다. 동생의 첫마디는 '언니 불쌍해서 어떻게 해......' 하며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지금도 선명한 그 울음소리는 전화기 너머에서 아마도 입을 틀어막고 흐느끼는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죽는 건가?',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거지?', '왜 하필 나일까?'....

온갖 생각들로 머리를 가득 채우는 동안 선명하게 들었던

감정은 억울함이었다.


억울했다. 너무 억울해서 가슴을 치고 통곡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 병이었다.

주변에 암환자를 본 적도 없었고, 암이라는 단어를 들으며 살아본 기억도 없었다.


물론 내가 언제든 암환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그렇게 나는 순식간에 암환자가 되었다.

하늘이 나를 버리는 순간이었다.



진단을 받은 병원에서 5년간 치료를 위한 산정특례 등록을 했다. 산정특례... 국가에 등록된 암환자란 건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참 별 제도가 다 있구나 하며 신기해하는 마음보다 내가 왜 이딴 걸 등록해야 하는 거지 진짜 인생 거지 같네 같은 마음뿐이었다. 물론 글을 쓰는 지금은 감사한 제도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온 세상이 나를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억울함과 공허함, 슬픔과 무상, 비참함 같은 단어들로 표현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종래에는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만이 가득해졌다.


대학병원을 예약하고, 치료계획을 위해 진료를 봤다. 그 순간 내 옆에는 보호자로 엄마가 손을 꼭 잡고 앉아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3년간 매번 병원에는 엄마와 동행중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가고 싶지 않은 그곳을 항상 유치원 가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가듯 어르고 달래서 손을 잡고 가는 우리엄마.


아프고 나서부터 나는 없던 눈물도 마르지 않을 만큼 흘렸는데, 엄마는 한 번도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시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걱정하지 마'라고 말씀해 주신다.


세상에 신이 모두를 돌볼 수 없어서 엄마를 보내주신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가장 행복해질 순간 처절하게 나를 벼랑 밖으로 밀어 버린 하늘이, 엄마라는 세상에 가장 따뜻한 선물을 주셨다. 엄마는 늘 같은 말로 나를 보듬어 주신다.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내 딸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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